과거와 화해하고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과거와 화해하고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 양수연 기자
  • 승인 2019.09.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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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서평 | 기억과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 토니 모리슨의 작품세계를 돌아보다

인간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것이 차별과 배제, 억압의 고통스러운 기억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난 8월 세상을 떠난 199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토니 모리슨은 스스로의 정체성이기도 한 흑인 그리고 여성의 역사 속 집단기억을 풀어냈던 소설가다. 그는 아픈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했던 이들의 시간을 끈질기게 탐구했다. 모리슨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기억은 정면으로 부딪혀 돌파해내기 전까지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19~20세기 흑인들의 삶과 기억의 문제를 다루는 그의 대표작 『빌러비드(Beloved)』(1987)와 『재즈(Jazz)』(1992)는 미국사회에 발생했던 실제 사건들을 바탕으로 쌓아올린 이야기다. 특정한 역사를 공유하는 인물들이 두 서사의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모리슨은 소설의 영역을 그에 국한하지 않고 인간 내면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것과 화해를 시도하는 보편의 문제로까지 확장해나갔다. 

◇차마 기억할 수조차 없었던 이야기=1865년 미국 남북전쟁이 북부의 승리로 종결돼 노예제가 사라지기 이전까지 흑인은 오직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의 주인이 될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갔다. 『빌러비드』에는 노예제 폐지를 전후한 시기 흑인들의 삶과 기억이 담겨있다. 작품 표면에 흐르는 시간은 1873~4년이지만, 주인공 세서를 포함한 흑인 노예들은 현재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며 ‘스위트홈’이라는 농장에서 노예생활을 했던 과거의 시간으로 거듭 소환된다. 스위트홈에서 그들은 그저 농장주의 재산에 불과했으며, 스스로의 행위를 선택할 수 없는 부자유한 삶을 살았다. 비교적 너그러운 편이었던 가너 부부가 죽고 ‘학교 선생’이 그들의 주인이 된 이후, 스위트홈에는 차별과 폭력이 만연했으며 여성노예는 성적 착취를 당하기도 했다. 언젠가 학생들을 가르치며 “세서의 인간적 특성과 동물적 특성을 구별해 공책에 적도록 했던” 학교 선생은 세서가 백인들에게 강간당하던 순간에도 그 모습을 관찰해 기록하고 있었다. 결국 세서는 목숨을 걸고서 자식들을 데리고 스위트홈을 탈출한다. 

그러나 학교 선생은 도망친 노예를 잡겠다며 다시 세서 가족을 찾아온다. 이제껏 노예로 살며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들마저 부정당해왔음에도, 세서는 모성을 지닌 어머니로서 노예제로 인해 비극이 대물림되는 것만은 결코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는 학교 선생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자식들을 보내기 위해 결국 제 손으로 톱을 들어 첫째 딸 빌러비드의 목을 긋는다. 이 장면은 1865년에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던 마거릿 가너라는 흑인 노예의 실화를 바탕에 두고 있다.

세서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제대로 회상하거나 다른 이에게 들려주지 못한다. 너무나도 참혹했던 시간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 기억을 억압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침묵은 결코 안식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세서는 “알고 싶지도,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라고 말하지만 이미 “과거로 꽉 차있어 내일을 계획하기는커녕 상상해볼 여지가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빌러비드』의 첫 장면에는 때때로 죽은 딸 빌러비드의 유령이 출몰하는 124번지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세서에게 “미래란 과거의 접근을 힘겹게 막아내는 것”일 뿐이었다. 세서의 삶을 통해 모리슨은 어떻게 고통스러운 과거의 기억과 화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제시하고자 했다.

◇과거와 눈을 맞추고 새로운 시간을 살아내기 위해=정체된 시간 속에 갇혀있었던 124번지는 두 명의 손님이 방문한 이후 변화를 맞는다. 먼저 세서와 스위트홈에서 노예생활을 함께했던 폴 디가 찾아온다. 스스로 ‘남성다움’을 자부하는 그는 세서와 공유하고 있는 부분적인 기억을 보듬으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124번지에 또다시 유령의 기운이 서리자 그는 호통을 쳐 이를 쫓아냈으며, 세서와 그의 둘째 딸 덴버를 데리고 서커스를 보러가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세서와 마찬가지로 폴 디 역시 가장 끔찍했던 본인의 과거까지는 보살피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124번지에 당도했을 무렵 이 세상 그 무엇도 그의 기억을 꾹꾹 눌러 담았던 담배 깡통의 뚜껑을 열 수 없었다”라는 대목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 빌러비드의 환생처럼 보이는 여자가 세서를 찾아와 놀랍게도 스스로를 빌러비드라 소개한다. 그는 세서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의 사랑을 요구했다. 폴 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서는 돌아온 빌러비드에게 죽은 딸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모성애를 쏟아 부으며 점차 스스로를 잃어갔다. 빌러비드는 마치 과거에 자신이 받았던 상처를 보상받으려는 것처럼, 세서를 원망하면서도 그가 폴 디와 덴버를 제치고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하길 바랐다. 이는 미해결된 과거의 기억이 현재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폴 디는 세서가 딸을 살해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과거의 문제를 회피하려 했던 폴 디는 결국 빌러비드가 세서를 차지하도록 둔 채 124번지를 떠났다. 

이들의 삶을 수렁에서 건져낼 수 있었던 열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마음에 상처를 입고 124번지에 고립돼 있던 덴버는 소설 후반부에 이르러 용기를 내 집밖으로 나선다. 그는 식량을 얻기 위해 공동체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시작으로 점차 세상을 향해 걸어 나왔다. 세서는 끔찍했던 비극을 상기시키는 순간이 찾아오자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빌러비드를 지켜냈다. 이 소식을 들은 폴 디는 그제서야 세서가 겪어온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무엇이 됐든, 이들은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그 의미를 견뎌냈다. 마침내 빌러비드는 자취를 감춘다. 모리슨은 “이것은 전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작품의 막을 내린다. 어쩌면 빌러비드는 남은 이들이 새로운 시간을 살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잊히게 하기 위해’ 나타났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혼돈의 시기를 살아낸 방식=『빌러비드』의 시간 이후, 노예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꿈꿨던 다음 세대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을까? 『재즈』는 20세기 초 도시로 진출한 흑인들이 그곳에서 자유로운 삶을 상상하고 꾸려나갔던 흔적을 담고 있다. 이들에게 도시는 어두웠던 과거를 벗어나 “항상 자신의 참모습이라고 믿어왔던 것에 더 가까워진 기분”을 선사하는 공간이었다. 주인공 바이올렛과 조 부부 역시 새로운 공간에서 능동적인 삶이 펼쳐지기를 기대하며 도시에 입성했다.

그렇지만 다양한 욕망이 분출되고 수많은 이야기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과거의 그늘이 현재를 삼키는 일이 반복됐다.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던 상처를 품고 있던 조는 외도 상대였던 도카스의 사랑이 떠나자 그를 살해하는 극단적인 사건을 일으켰다. 흰 피부와 금발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던 바이올렛은 조금 더 흰 피부의 흑인이었던 도카스에게 비정상적인 집착과 질투의 감정을 느끼다 끝내 그의 장례식장에서 송곳을 휘둘렀다. 도시에서 20년을 보내는 동안 바이올렛과 조는 여전히 사람들의 의식 속에 떠다니는 인종차별 및 어머니와 관련된 트라우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치 “바늘을 붙들고 있는 대를 들어 올릴 수 없어 혹사당하는 레코드”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어설픈 모습만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재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서술자를 포함한 여러 인물의 관점에서 변주된 서사를 바탕으로 바이올렛과 조의 이야기를 확장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마치 재즈의 즉흥연주처럼 조금씩 스스로를 새롭게 변화시킨다. 재즈 음악을 만드는 다양한 악기들이 자유롭게 순서를 바꿔가며 자신의 멜로디를 주장해나가듯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자신의 선택에 대해 생각하고, 필연적으로 진행돼왔던 것처럼 보이는 삶의 너머를 엿보는 것이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뒤 다시 함께 생활하는 바이올렛과 조의 모습에서는 더 이상 “지나간 과거와 미래의 당위 사이에 붙들린 존재”를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독창적이고 변화무쌍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그것이 바로 자유와 억압이 등을 맞대고 있는 현실 속을 살아간 이들이 혼돈의 시기를 이겨낸 ‘재즈의 방식’이었다.

토니 모리슨의 작품세계는 노예제의 역사에 얽힌 고통스러운 기억으로부터 출발했다. 그의 소설은 과거의 어두운 통로를 지나 내일로 향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품어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었음을 일러준다. 이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가르침이다. 마음 속 깊숙한 곳을 두드리며 진실을 요청하는 모리슨의 문장은 아픔을 딛고 자유로운 인간이 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따뜻한 눈길로 보듬고 있다.

빌러비드

토니 모리슨

최인자 옮김

476쪽

문학동네

 

 

 

재즈

토니 모리슨

최인자 옮김

376쪽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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