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청와대 국민청원, 그 후 ② 음주운전 처벌 강화 청원

청와대 국민청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야심 차게 내놓은 공약으로, 국민과 청와대의 직접적인 소통창구이자 여론이 형성되는 공론장의 역할을 해왔다. 그간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수많은 청원이 올라왔고, 일부는 ‘20만 명 동의’라는 조건을 충족해 청와대의 답변을 받았다. 이에 『대학신문』은 그중 전 국민의 관심을 받은 청원 세 개를 선정해 기사로 다룬다. 청원의 배경과 청와대의 답변을 분석하고 청원으로 촉발된 변화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짚었다.

살인미수와 다를 바 없다

지난해 10월 2일 국민청원 게시판에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친구 인생이 박살났습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음주운전 사고로 대학생 윤창호 씨가 뇌사 상태에 빠지자 그의 친구들이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청원을 올린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간 음주운전에 관대했다는 문제의식은 ‘음주운전은 살인행위’라는 구호가 돼 여론을 움직였고, 결국 40만 명이 넘는 동의가 모였다. 청원에 참여한 박재웅 씨(언론정보학과·14)는 “음주운전에 대한 죗값을 크게 묻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진 데 시민들의 책임도 있다”라며 “늦었지만 이렇게나마 법제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참여 이유를 이야기했다.

이 청원은 국민청원 시행 이래 처음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답변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청원 이후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음주운전은 실수가 아니라 살인행위이자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과 교육 강화를 지시했다. 박상기 당시 법무부장관은 “상습 음주운전이나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구속 수사를 진행하고 양형 기준 내 최고형을 구형하겠다”라며 처벌 강화를 약속하고 “해외 선진국의 입법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국회 논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라고 밝혔다.

국민의 목소리, 현실을 바꾸다

국민적 공분은 청원에서 비롯한 최초의 입법을 이뤄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돼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된 것이다. 법안은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낸 경우 법정형을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서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으로,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서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량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소위 ‘윤창호법’이라 불린 이 법의 시행으로 음주운전 적발 건수는 눈에 띌 정도로 감소했다. 故 윤창호 씨의 친구들과 법안을 발의한 하태경 의원은 “1월부터 5월까지의 음주운전 적발 건수가 작년보다 27.3% 감소했다”라고 밝혔다.

지난 6월 24일부터 음주운전 적발기준을 강화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 세칭 ‘제2윤창호법’ 또한 시행됐다. 이 법안은 면허정지 기준을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에서 ‘0.03% 이상’으로, 면허취소 기준을 ‘0.1% 이상’에서 ‘0.08% 이상’으로 높이고, 2회 이상 면허 취소 시 3년 동안 재취득 제한을 둬 기존보다 엄격한 규율을 적용한다. 하태경 의원은 “법이 개정되면 소주 한 잔만 마셔도 적발되기 때문에 음주운전은 아예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라고 개정의 의미를 설명했다.

0.03%, 너무 가혹한가

일각에서는 음주운전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과도하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전날 밤 술을 마시고 아침에 운전대를 잡았을 때 혈중알코올농도가 0.03%를 초과해 적발되는 ‘숙취 운전’에 대한 것이다. 30대 회사원 이모 씨는 “국회의원들과 전문가들이 현실을 너무 모른다”라며 “모든 회사원들이 회식 다음날 대중교통으로 쉽게 출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경찰청 교통안전과 호욱진 경정은 “대중교통을 이용한 출근이 불편한 것은 인정하지만, 안전한 운전문화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유성호 교수(의학과) 또한 “0.03%라는 기준을 적용한 처벌이 가혹하다는 비판에는 충분히 공감한다”라면서도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음주운전에 관대해 많은 희생이 있었기에 법을 엄격하게 적용해서라도 음주운전의 뿌리를 완전히 뽑을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0.02%를 기준으로 하는 스웨덴과 같이 한국보다 법이 엄격한 국가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승재현 연구위원은 “음주 다음 날 자가용을 이용하지 못해서 생기는 불편함보다는 음주운전이 적발됐을 때 받는 불이익이 훨씬 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라며 ‘숙취 운전’을 경계할 것을 당부했다.

0.03%라는 절대적인 기준 대신 미국처럼 운전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일자 걷기 테스트’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있다. 이는 운전자가 직선 위를 비틀거리지 않고 일자로 걷지 못하면 음주운전으로 판단하는 방식이다. 유성호 교수는 “운전능력을 측정하는 데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방안이라는 것은 맞다”라고 동의하면서도 “미국에서는 이 방식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한국에서는 동일한 알코올 농도 수치를 보인 사람에 대한 조치가 다르다면 사회적 갈등이 생길 위험이 크다”라고 우려했다.

대한민국은 ‘음주운전 불감증’으로 인해 지금껏 무고한 사람들의 수많은 희생을 치렀다.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처벌 강화와 더불어 국민들의 인식을 환기해 음주운전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야 한다. 사회적 논의와 제도 개선을 통해 도로 위의 ‘묻지 마 살인’이 일어나지 않는 내일을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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