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어야 할 극장은 아직 묶여 있다
열려있어야 할 극장은 아직 묶여 있다
  • 장한이 기자
  • 승인 2019.09.22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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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남산예술센터의 과거와 현재를 둘러싼 논란을 짚어보다

근현대식 극장 중 한국 근현대사의 반세기 이상을 함께한 극장, 다양한 창작극과 실험적인 연극이 무대에 올려진 극장. 남산예술센터는 이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극장이다. 하지만 이렇듯 연극사적인 의미와 연극인들에게 열려있는 창작 공공극장으로서의 의미가 깊은 남산예술센터는 지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남산예술센터를 둘러싼 논쟁은 무엇이며,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남산예술센터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관한 논쟁이 뜨겁다. 극작가 유치진은 1962년 서울예술대의 전신인 한국연극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때 남산예술센터의 소유권을 받은 서울예술대가 앞으로도 극장을 소유해야 한다는 입장과 공공극장으로서 사회로 환원돼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하는 것이다. 2009년 이후부터 10년간은 서울예술대가 서울시에 남산예술센터를 임대해 서울문화재단이 극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 서울예술대가 임대차 계약 해지를 통보하며 남산예술센터는 내년부터 공공극장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됐다. 

남산예술센터는 논란 속에서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1962년부터 2008년까지 현 서울예술대가 극장의 직접적인 운영권을 가졌던 시기에는 ‘드라마센터’라는 이름이 쓰였고, 서울문화재단이 운영을 시작한 2009년 이후부터는 ‘남산예술센터’라고 불렸다. 남산예술센터 우연 극장장(49)은 “현재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라는 명칭은 극장이 지닌 두 개의 정체성, 혹은 이중성을 상징하기도 한다”라며 “‘드라마센터의 역사성 및 공공성 회복 논의’라는 연극사적 과제의 중요성을 결과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이름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실질적인 극장의 사용 주체인 현장 예술인과 관객의 요구가 담긴 공론의 장 속에서 미래의 방향과 운영모델이 결정돼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연극인들은 남산예술센터를 사회로 환원하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은 남산예술센터가 편법으로 사유화된 장소라고 주장한다. 현재 남산예술센터가 자리 잡고 있는 터가 과거 조선총독부 구청사 자리로, 국유재산이었음에도 이를 개인이 샀다는 점과 이후 극장을 서울예술대로 넘겨준 방식이 석연찮다는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조시현 연구위원(55)은 책 『유치진과 드라마센터』에서 “한때나마 일제 식민지배의 본당이었고, 국유재산으로 간주됐던 예장동 8번지에 식민지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채로 극장이 들어선 것”이라며 남산예술센터가 위치한 곳의 사유화가 잘못됐음을 설명했다. 또한 그는 “국세청은 건물이 지어지고 17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학교법인에 매도증서와 부동산등기를 위한 위임장을 교부했고 그 과정에서 계약당사자 유치진이 아닌 유지재단이 학교법인에 땅을 넘겨준 것”이라며 위법하게 등기서류를 교부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 서울예술대 측의 답변은 연락이 닿지 않아 들을 수 없었다.

연극인들은 작년 4월 1일 ‘공공극장으로서의 드라마센터 정상화를 위한 연극인 비상대책회의’(공공정비)를 출범했다. 공공정비에 참여한 한국연극평론가협회 김미도 회장(55)은 “공공정비는 공공재로서의 드라마센터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라며 “세 번의 공개토론회를 진행하는 동안 500명 넘는 연극인들이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라고 말했다. 그는 “유치진 선생이 연극계에 공헌한 것에 대해서는 폄하할 생각이 없으나 이제는 연극계를 위해 남산예술센터를 사회에 효율적으로 환원할 방안을 찾아 나가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남산예술센터를 둘러싼 논쟁은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초 조직 개편으로 남산예술센터가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본부 산하 극장운영팀에 배치되면서 극장의 독립성 문제가 대두됐다. 우연 극장장은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극장 본부가 서울문화재단 직원과 현장 연극인 간의 협의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지역문화본부 산하에 배치되면서 연극인들이 극장의 독립성과 자율성 침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남산예술센터는 그동안 전문적인 창작연극 제작극장으로서 정체성을 쌓아왔다”라며 “제작극장으로서의 정체성을 행정적 권한으로 특정한 정책적 목표나 필요에 의해 변화시켜선 안 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공공극장 운영 방안에 대한 효과적인 논의를 위해 현장에 있는 연극인들과 서울문화재단의 극장운영팀장, 인사 담당 직원 등의 실무 책임자들은 ‘공공극장 운영 TFT’(TFT)를 꾸렸다. 오는 30일(월)에는 TFT가 발제하는 공청회가 진행된다. 공청회의 발제를 맡은 TFT 책임연구원 이양구 작가(44)는 “공청회에서 TFT의 진행 경과와 공공극장 운영 사례를 설명할 것”이라며 “아르코 예술 극장에 대해 논의하던 당시에 검토되던 개방직 예술감독제안, 개방직 극장장안 등도 소개하고 이외의 여러 안도 발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문화재단은 이 공청회에서 수렴한 의견을 반영해 새롭게 조직을 개편할 예정이다. TFT가 처음 구성될 당시 서울문화재단이 조직 개편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양구 작가는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을 취합해 최종적으로 서울문화재단에 전달할 것”이라며 “연극인들과 서울문화재단 실무 책임자가 함께 만든 방안인 만큼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이견 없이 조직 개편이 이뤄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극인들은 남산예술센터에 대한 논의의 장을 넓히기 위해 연극이라는 수단을 선택했다. 남산예술센터에서는 18일부터 29일까지 공공극장의 정상화를 위한 내용을 담아 원작을 새롭게 각색한 〈오만한 후손들〉을 공연한다. 연극에서는 1962년 남산예술센터 개막 공연이었던 연극 〈햄릿〉과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현실로 돌아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연이어 배치했다. 극이 진행될수록 점차 연극 〈햄릿〉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어긋난 시간을 쌓아가는 극장’이라는 주제의식을 드러냈다.

“올해나 내년까지 하고 문을 닫는대.”

“우리가 여기서 하는 게 마지막 공연이라며?”

〈햄릿〉의 첫 번째 장면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온 배우들이 남산예술센터 임대차계약 해지 소식을 들으며 본격적으로 극이 시작됐다. 극에서 배우들은 남산예술센터에 얽힌 과거를 재밌게 풀어냈고 극 중 배우들이 서로 대화하는 장면은 남산예술센터를 바라보는 여러 관점과 논쟁의 쟁점을 짚었다. 〈오만한 후손들〉은 남산예술센터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과 ‘이음매에서 빠져나온 뒤틀린 시간’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오만한 후손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남산예술센터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했다. 관람객 이미현 씨(25)는 “개인적으로 남산예술센터에 대한 서울예술대의 입장과 연극인의 입장을 조금 알고 연극을 접했다”라며 “공연을 보고 나니 뉴스에서 접한 것 이상으로 상황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이 문제에 대해 더 알아보게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편 21일 공연을 마친 후에는 김미도 평론가와 류주연 연출가가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통해 연극과 남산예술센터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남산예술센터가 공공극장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연극계에서는 끊임없는 논의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 앞으로 이 논의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현장에 있는 예술인과 극을 접하는 관객들의 지속적인 관심뿐만 아니라 서울예술대와 서울문화재단 측의 실효성 있는 남산예술센터 운영 방안 역시 필요해 보인다.

삽화: 김채영 기자 kcygag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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