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학과 이주영 교수
의류학과 이주영 교수

2019년 9월 2일 아침 9시, ‘의복과 건강’ 첫 수업이었다. 유해 환경에 노출된 작업자용 호흡기 보호구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슬라이드와 함께 국내 질식재해 발생현황을 소개했다. 질식재해의 경우 재해자의 절반 이상이 사망으로 이어진다. 일반 사고성 재해의 사망 비율이 약 1~2%인 것을 감안하면 질식재해는 어떤 재해보다도 예방을 위한 사전 안전조치가 필수적이다. 비록 한 장의 슬라이드지만 이를 처음 접한 학생들의 얼굴에 피할 수 있었던 안타까운 죽음들에 대한 당황과 애도가 비쳤다. 

일주일이 지난 9월 10일, 영덕오징어가공업체에서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 네 명이 지하 탱크에서 모두 질식으로 사망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먼저 들어가 청소하던 한 명이 쓰러진 것을 목격하고 이를 구하기 위해 따라 들어간 세 명 모두 질식해 사망한 사건이었다. 안전장치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작업장에서 일어난 ‘인재’였다. 우리는 지난 수년 동안 작업자들을 위한 스마트웨어와 센서 시스템을 연구하면서 왜 질식 사망을 예방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솔루션조차 제안하지 못했던 것일까. 

일본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내던 시절, 소방관들의 안전 및 건강 증진을 위한 연구들을 수행했다. 2008년 한 학회장에 초청된 일본 소방청 소속 박사의 발표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우리는 소방관의 공무 중 사망자 수 0명이라는 1차 목표를 달성했다. 이제 부상자 수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 소방관들의 심리적 손상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를 다음 단계 목표로 나아가겠다.” 사망자 0명이라니... 정말 그의 슬라이드는 1998년 사망자 0명을 시작으로 2001년 0명, 2004년 0명을 보여줬으며, 간혹 1~2명의 사망자가 보고된 해에는 돌발 고위험 상황에서 피할 수 없었던 폭발 사고가 있었다. 그러나 2012년 서울대로 임용된 후 접한 우리나라 소방관들의 사상자 통계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었다. 다행히 현재 사망자 수는 10여 년 전에 비해 줄었으나, 지난 5년 (2013-2018년) 동안 총 16명의 소방관들이 공무 중 사망했다는 통계는 아직도 그의 발표를 생각나게 한다. 우리에게 사망자 0명은 그저 꿈인 것일까.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분주했다. 얼마 전 선정된 국방부 연구과제의 착수 발표회가 예정됐기 때문이다. 국방연구원, 국방기술품질원, 육군군참부, 육군종합군수학교 등에서 전력지원체계 피복류 담당 군사전문위원들이 함께 모였고, 군복 성능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우리 팀의 발표를 경청했다. 우리의 발표에 대한 그들의 질문과 눈빛에서는 군 장병들에게 국가의 위상에 맞는 군복을 보급하고 싶은 마음, 과학적인 평가를 통해 군복에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싶은 희망과 함께 국방부에서도 체계적인 자체 연구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점 등이 전달됐다. 

우리나라에는 재난안전보호구를 객관적으로 시험평가할 수 있는 만족할 만한 시스템이 아직 없다. 국방부에도 소방청에도 아직 갖춰져 있지 않다. 다행히 서울대학교 의류학과에는 퇴임하신 은사님들과 현 교수님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재난안전보호구 개발 및 성능평가를 위한 기초 단계의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나아가 이제 곧 시작하는 시흥캠퍼스에 ‘재난안전보호구 시험인증센터’라는 연구시설이 단계별로 들어설 예정이다. 당장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도 ‘사망자 0명’을 꿈꾸며 솔루션을 제공할 채비를 하고 있다. 

비단 재난안전과 같은 전장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저출산/고령/아동교육/가족해체/소비자/먹거리/급식 문제 등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사회 문제들이 생활과학자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50주년을 맞아 21세기에 직면한 다양한 사회문제들에 대한 생활과학 솔루션이 제공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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