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학과 석사수료 조영인
사회복지학과 석사수료 조영인

어느 날 한 지인이 나에게 물었다. 만약 지금 내가 처한 환경이 알고 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수월한, 소위 말하는 ‘인생 난이도’가 낮은 환경인데, 내가 나약해서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면 어쩌죠?

사회복지학을 모르는 사람들은 사회복지학을 ‘그냥 좋은 일’을 하는 학문이구나 여긴다. 사실 사회복지학은 사회의 넓은 영역, 어쩌면 거의 모든 영역을 다루고 있다. 사회복지 정책의 국가 단위 비교라는 거대담론부터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아주 미시적인 담론까지. 거대담론 스펙트럼의 그 어딘가에서 저 질문에 답을 하자면, 나는 사회불평등과 기득권층의 부정부패 등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내가 『대학신문』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정신건강사회복지 영역 중 아주 미시적인 측면에서의 이야기다. 정신건강사회복지에 대한 식견이 짧은 한 개인의 의견에 불과하니 편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고민이 있을 것이다. 등록금과 생활비 걱정 없이 넉넉하게 살면서 학점도 스펙도 어마어마한 우리 과 친구, 뭐든지 다 알고 있을 것만 같은 우리 교수님, 말 한마디로 비행기를 회항시킨 그분, 심지어 모든 정치인들이 꿈꾸는 자리에 있는 대통령까지. ‘내가 보기에 저자들의 권능은 하늘을 뚫는데, 도대체 뭐가 힘들다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회복지에서 말하는 항상성(homeostasis)의 개념을 이에 적용해 생각해보자. 한 개인의 신체와 정신이 안녕한 상태(well-being)를 이룰 때, 사회복지학에서는 ‘항상성이 잘 유지된 상태’라고 말한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저 사람들도 어쩌면 항상성이 깨졌기 때문에 주관적으로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지인의 물음에 답을 하자면 ‘당신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당신 세계의 항상성이 깨졌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인간은 다양한 인생사적 이유로 스트레스에 취약한 특징을 가지거나,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어떤 것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트리거(trigger)가 될 수 있다. 즉, 누군가가 ‘약해서’ 정신건강이 나쁘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우울이나 무기력함을 느끼는 데 영향을 미친 복잡한 요인들 간의 상호작용을 단순히 ‘네가 약해서’라고 간편하게 ‘퉁치듯’ 설명해버리는 것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히려 스트레스에 취약한 특징, 트리거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항상성이 깨졌다고 해석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 학내에서는 동아리 언론과 학교 측의 노력으로 휠체어 이용자의 접근성이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 배리어 프리(barrier-free)하지 않은 환경이 아닌 휠체어를 이용하는 개인의 잘못으로 ‘퉁쳐’버렸다면, 관악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엄도 지켜지지 않는 야만적인 공간이 돼버리지 않았을까?

이제 이 이야기를 여러분 스스로에게 적용해보자. 내가 부러워하는 A라는 사람은 결국 ‘나의 눈으로 바라본 A의 세계’다. A의 눈으로 바라본 A의 진짜 세계는 내가 본 A의 세계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세계는 어떨까, 내 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눈으로 나의 세계를 정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모두는 ‘나는 나의 세계를 나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정신적 안녕을 위해, 다시 말해 나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래서 나는?’ ‘그래서 이게 나한테는 어떤 의미지?’와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해보길 바란다. 다른 사람에게는 좋으나 나에겐 하등 도움 되는 것이 없는 환경이라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사회복지학에서 말하는 ‘생존자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우리는 이 거칠고 야만적인 세상에서 꿋꿋하게 잘 살아가고 있고 잘 살아내고 있다. 그런 기특한 우리를 괴롭히는 것, 즉 우리 세계의 항상성을 깨뜨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 상황에서 내가 당장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흔히 불안이나 우울, 걱정이 오히려 증폭될 수도 있다. 다음은 위와 같은 고민을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불안과 우울, 걱정을 덜어줄 수 있는 사고과정의 한 예시다. 

 

① 이 고민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아니오: 종결, 예: ②번 문항으로)

② 내가 지금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것들이 정말 걱정할 만한 것인지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가?

(아니오: 종결, 예: ②-1 문항으로)

②-1 걱정할 만한 것이라는 확신이 100%인가? 

(아니오: 종결, 예: ②-2 문항으로)

②-2 어떤 증거가 있는지 생각해보자. 우려하던 일이 발생하면 큰일이 일어나는가?

(아니오: ‘생각보다 큰일은 아니므로, 별일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넘기기

예: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받아들이되, 해결방법은 무엇인가?)

 

위의 간단한 과정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가진 걱정과 불안, 우울에 대해 차분히 생각하도록 도울 것이다. 타인과 잘 지내는 법도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는 평생 나와 함께할 ‘나’와 잘 지내는 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나를 나로 살아가게 하는 법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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