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부터 한 달에 한 번 삭발하기 시작했다. 삭발한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이 웬일이냐고 물으면 “그냥 여름이고 해서 시원하게 밀었어요”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이렇게 머리를 밀게 된 것은 탈모 때문이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30대 초반 남성이 탈모 증상을 가진 채로 살아가기는 참 힘들다. 어느 시절이나 ‘탈모인’은 희화화되기 마련이었지만 남을 조롱하는 것에 있어서는 이상할 정도로 비상한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그 표현들이 더 다양해지고 적나라해졌다. 사실 나도 이런 세태에 대해 뭐라고 말할 처지는 아니다. 인터넷상에서 소위 탈모 개그나 드립을 보고 나조차 폭소를 터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어디 가서 이야기하다 그런 화제가 나왔을 때 나 때문에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더해 몇 년 전까지 탈모에 좋다는 각종 음식이나 약을 권하던 엄마도 가발을 맞추라고 나에게 압박을 주기 시작했다. 가발과 삭발, 결국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이 두 가지였고 “그래도 아직 가발은 아니지”라는 마지막 자존심에 나는 삭발을 택했다.

그런데 요즘 나처럼 삭발하시는 분들이 많다. 자유한국당의 삭발 릴레이 이야기다. 황교안 대표를 비롯해 많은 한국당 소속 의원 및 원외 인사들은 최근 조국 장관 임명에 대한 항의 표시로 연이어 삭발하고 있다. 조국 장관 임명에 대한 여론이 차마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현 상황에 대한 항의는 여론을 대변해야 할 제1야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방식이 삭발이라는 점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보통 삭발 투쟁에는 처절함과 절박함이 느껴지지만, 한국당의 그것에는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이 말한다. 삭발 투쟁에 절박함이 느껴지는 건 삭발이라는 행위 자체가 처절하기 때문이 아니라 삭발을 하는 사람들이 그것 말고는 항의할 수단이 없거나 여론에 호소하기 위해선 머리카락 말곤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조국 장관 임명에 대한 여론이 나쁜데도 한국당의 삭발 릴레이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회의원 의석을 110여 석이나 가진 거대정당이 정권을 비판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회 밖을 나와 삭발하는 것을 택하는 것이 과연 최선인가? 그리고 그들이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정녕 머리카락뿐인가? 한국당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번 국민의 지지를 받고 싶다면 내려놓아야 할 것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그들이 그동안 공고하게 쌓아온 기득권이다.

삭발하기 시작하고 3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 나는 만족하며 생활하고 있다. 미용실에 가서 “그냥 탭 빼고 밀어주세요”라고 말할 때 살짝 보이는 미용사의 애처로운 시선과 삭발 후 모자를 쓸 때 느껴지는 두피와 모자가 직접 맞닿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감각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더는 머리카락에 신경을 써도 되지 않는다는 점,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전에 느끼지 못했던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 같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삭발은 탈모에 대한 해결책이 된 것 같다. 하지만 한국당 사람들은 삭발하고도 만족하지 못할 것 같다. 한국당이 생각한 대로 여론의 반응이 따라오지 않자 당내에서도 삭발을 자제해야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고 한다. 개인적 신념 때문이건 공천 때문이건 괜히 먼저 삭발한 사람들만 애석하게 됐다. 뭐 어쩌겠는가. 기왕 이렇게 된 것 나처럼 머리카락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해보시길 바란다.

 

여동하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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