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11일(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데 이어 18일에는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했다. 이러한 정부의 대응은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문제 판결 이후 일본 정부의 계속된 경제보복에 대항해 불가피하게 이뤄지고 있다. 또한 정부는 한일 간 군사정보 교류의 종료 결정에 이르기까지 일본 정부의 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즉자적인 대응만으로는 한일관계의 개선이 이뤄질 수 없다. 한일 양국 정부 사이에 의견의 공유점을 찾기보다는 평행선만을 달리면서 갈등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학신문』 1991호 해외취재(2019년 9월 9일 자)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한국과 일본 사회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른 인식을 갖고 있다. 일본에서는 정부뿐 아니라 국민들까지도 이번 사태의 책임이 한일관계의 합의를 지키지 않는 한국 정부에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잘못된 인식과 책임없는 자세를 한일관계 악화의 가장 근본적인 요인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양국의 인식차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 사회는 이러한 차이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한다. 1905년과 1910년의 한일 간 조약에 대해 서로 다르게 인식했으면서 왜 1965년 한일협정에서는 이를 미봉하고 넘어갔어야 했는가? 한국 정부는 두 조약이 그 자체로서 무효라고 생각하고, 일본 정부는 당시에는 합법적이었지만 1945년 시점에서 무효가 된 것이라 말하는 큰 해석 차이에도 불구하고 애매한 내용으로 합의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서로 달리 인식하면서도 2015년에 왜 이 문제에 대한 무리한 합의를 이끌어냈을까? 그저 당시의 상황에서 불가피했던 것일까? 

특정한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인식을 갖고 있는 두 당사자가 그 문제에 대해 합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합의한다 해도 이후 더 큰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의견이 다른 문제를 합의하면서 1965년과 2015년 조약에 ‘최종적’이라는 표현과 ‘불가역적’이라는 문구를 포함시켰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국가 간의 조약에서 어떠한 조약도 시대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 내용이 수정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일까? 

시간이 걸려도 양국 정부와 시민 사회는 이런 인식차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정부도 솔직해져야 한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이 있다면, 조약에서도 이러한 불일치를 명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앞으로 노력하고 지원할 것이라고 적시하면 된다.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앞으로 한일관계는 작금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한일 간 인식 차이가 깊어지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친 양국의 대중 매체 역시 보다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서로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신중한 보도 자세를 취해야 한다. 감정적 대응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를 바라보고 이성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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