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 인문대 문예창작동아리 ‘창문’ 단편소설 기고

 

첫사랑을 다시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것도 집으로 향하는 마을버스에서.

그 때 나는 가까운 번화가에서 마카롱을 한가득 사가는 길이었고 그야말로 후줄근한 옷차림에 모자를 푹 눌러쓴 채였다. 정윤과 눈을 마주치고 그 눈이 그녀의 것임을 상기한 뒤, 나의 행색을 확인하고서 고개를 드니 그녀는 이미 정류장에 내린 후였다.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기도 잠시, 버스는 부지런히 그곳으로부터 멀어져갔다.

퇴근한 엄마와 함께 식사를 하던 중 내가 물었다.

엄마, 정윤이 기억 나?

그 목사네 딸?

응, 마을버스에서 마주쳤거든.

걔네 집 케냐에서 돌아온 모양이던데. 안 그래도 옆집 아줌마가 그 얘기하더라.

그래?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하며 밥을 한 술 떠먹었다. 그러는 동안 머릿속은 지난날의 일들을 집요하게 끄집어내 재생하고 있었다.

정윤을 처음 봤던 것은 친구의 손에 이끌려 다니기 시작한 교회에서였다. 동네에서 제법 큰 교회였던 그곳은 중학교 시절 동네의, 혹은 학교의 몰랐던 친구들을 만나는 좋은 경로였다. 자연히 청소년부는 신앙보다는 나처럼 또래를 사귀는 데 혈안이 된 사춘기의 학생들로 버글거렸다.

정윤은 찬송가를 부를 때마다 앞에서 피아노를 쳤다. 듣기로는 우리와 동갑이며 같은 학교에 다니고, 교회 담임목사의 외동딸이라고 했다. 그렇기는 해도 예배 후 진행되는 주일학교 반이 달랐기 때문에 우리 간에는 친해질 접점이 없었다. 어차피 다른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굳이 그러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교회를 다닌 지 몇 달이 지나서였다. 친구들과 매점에 다녀오다가 학교 복도에서 정윤을 발견했다. 어. 나도 모르게 외마디가 튀어나갔다. 그 소리에 나를 돌아본 정윤은 웬 모르는 애가 자기를 보며 서 있으니 이상하다 여겼는지 잠시 눈길을 주다 제 갈 길을 갔다. 옆에 있던 친구가 물었다.

왜 그래?

어…… 아니, 착각했나 봐. 가자.

얼굴이 홧홧해짐을 느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무안하기도 했을 뿐더러 정윤이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데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다.

그 주 안식일에 찬송가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오던 정윤과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그녀가 어, 소리를 냈다.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여태 꽁해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나에게 이건 일종의 기 싸움 비슷한 거였다. 그런데 정윤이 다음 찰나 눈꼬리를 휘며 환하게 웃었다. 반가운 친구에게 인사를 하듯. 그 바람에 오기로 단단하게 뭉쳐져 있던 앙금은 그만 흐물흐물하게 무너져 내렸다.

예배가 끝나자 정윤이 내게 다가왔다.

선생님한테 네 이름 물어봤어. 나는 오정윤이야. 너 전승희 맞지?

응.

발랄하게 묻는 정윤과 달리 나는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땐 미안했어. 내가 사람 얼굴을 잘 못 알아보거든.

정윤아! 대답을 하려는데 뒤쪽에서 정윤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윤의 주일학교 선생님이었다. 가야겠다. 중얼거리며 정윤이 몸을 돌렸다.

학교에서 보면 인사하자. 갈게!

확실히 그녀의 웃음에는 무언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런 게 아니라면 그렇게 온 가슴이 이유 모를 뿌듯함으로 부풀어 오를 리 없었다. 넋이 나간 채 가만히 앉아 있는 나를 본 선생님이 감탄했다. 이렇게나 집중을 하다니, 비로소 우리 승희의 영혼이 성령으로 충만해졌구나. 진지한 선생님의 대사에 친구들이 키득거렸지만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네에, 하고 웃어보였다.

정윤과 학교나 교회를 오가며 인사하는 사이가 되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관계 속에서 인사만 주고받던 어느 날이었다. 장염으로 교회를 빠지고 난 뒤 한결 나아진 상태로 등교하는데, 교실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정윤이 보였다. 안녕. 내 인사에 고개를 든 정윤이 다짜고짜 물었다.

어제 왜 안 왔어?

나 장염 걸려서.

이런 게 목사 딸의 교인관리인가, 생각하는데 정윤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말도 없이 안 나왔길래 걱정했어.

아…… 고마워.

생각해보니까 네 번호가 없더라고.

정윤이 내민 핸드폰에 내 번호를 찍어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고개를 내려 번호를 저장하는 정윤을 바라보는데 어쩐지 지금이 용기를 내야 할 때라는 강한 확신이 솟아올랐다. 누군가 시위를 당긴 것처럼 내 입에서 질문이 튀어나갔다.

오늘 뭐 해?

고개를 든 정윤이 곧 예의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아무 것도 안 해.

그날 이후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집도 가까워 같이 등하교를 하게 되었고 학원에 가지 않는 날이면 하굣길에 꼭 분식집에 들렀다. 같이 있지 않은 때에도 계속해서 메신저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엄연히 따지면 우리는 종일 붙어 있는 셈이었다. 정윤의 부모님이 초대해주시고부터는 서로의 집에서 묵는 일도 잦아졌다. 그 해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에도 나는 어김없이 정윤의 집으로 향했다. 매트리스 위에 나란히 누워 쉼 없이 수다를 떨던 우리는 겨우 잠을 청했다.

정신없이 자던 중 요의가 들어 눈을 떴다. 고개를 돌리자 나를 바라보던 정윤과 눈이 마주쳤다. 흠칫 놀란 정윤이 반대편으로 돌아누웠다. 잠긴 목소리로 내가 물었다. 왜? 어둠속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냥.

화장실에 다녀오니 정윤은 그새 잠이 들어 있었다.

정윤아, 자?

공연히 물으며 그녀 쪽을 향해 누웠다. 갑자기 움직인 탓인지 심장이 콩콩 뛰었다. 색색거리며 자는 정윤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평소에는 유심히 보지 못했던 이목구비를 뜯어보다가, 정윤이 왜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생각하다가 나도 어느 샌가 잠이 들었다.

8월이 되자 어김없이 여름성경학교가 다가왔다. 이상했던 밤 이후로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행동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무엇인가 말해야 한다는 것은 눈치 채고 있었지만 그게 무엇일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라 대신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하는 쪽을 택했던 것이었다. 하루 프로그램이 끝나고 취침시간이 되자 모두들 일제히 교회 강당에 이부자리를 펴 잠자리에 들었다. 잠에 쉽게 드는 아이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 편에 속했던 터라 뒤척거리던 끝에 결국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정윤이 보이지 않았다.

나가보니 정윤은 교회 뒤편 난간에 앉아있었다. 내가 그녀 옆에 앉으며 물었다.

왜 여기 있어?

잠이 안 와서. 너는?

너 따라 왔어.

사실 나도 너 기다렸어.

키득거리다가 대화가 이어졌다. 오늘 너무 지루하지 않았어? 맞아, 게임도 별로 재미없었어. 내년에도 올 거야? 그 물음에 갑자기 정윤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순식간에 조용해진 사위에 당황하며 정윤이 말문을 열기를 기다렸다. 귀뚜라미 소리가 귓가를 울린 지 한참 만에 던져진 정윤의 말은 이랬다.

좋아한다는 게 뭘까?

글쎄, 계속 보고 싶고, 보고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런 거 아닐까?

나는 티브이나 인터넷에서 본 대로 아무렇게나 지껄이고는 되물었다.

왜, 좋아하는 사람 있어?

정윤이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날 밤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으로. 아무리 어리대도 그 의미를 못 알아챌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그녀의 볼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순간이었지만 촉감이 생생하게 입가에 머물렀다. 잠시간 굳어 있던 정윤이 이내 답이라도 하듯 내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 달 말에, 목사님 가족은 선교를 떠났다.

정윤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바로 다음날의 일이었다. 그녀는 주변을 수소문해 내 번호를 알아냈다며 동네에서 밥 한 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응했고 만남은 바로 그날 저녁에 이루어졌다.

정윤은 먼저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잘 지내는지, 학교는 어떤지 같은 진부한 말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으니 오래지 않아 각자 시킨 덮밥이 나왔다. 첫 술을 뜨며 정윤이 물었다.

교회 아직 다녀?

아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정윤이 고개를 끄덕이다 말을 이었다.

나, 케냐에서 많은 걸 보고 느꼈어. 맨손으로 교회당을 짓는 사람들, 그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들, 아무리 멀어도 개의치 않고 매일매일 예배에, 수업에 출석하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놀랍게도 신앙 아래서 이루어지고 있었어. 그래서 나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어.

뜬금없는 소리에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정윤은 시선을 피하기라도 하듯 그릇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너도 잊어줬으면 좋겠어.

뭘?

다. 우리가 했던 말, 행동, 다.

테이블 위로 적막이 흘렀다.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해 입만 뻐끔거리다가 겨우 내뱉었다.

그 얘기하려고…… 오늘 만나자고 한 거구나.

아니.

갑자기 정윤이 고개를 숙였다. 눈을 꼭 감고서 어깨를 바르르 떨던 그녀는 나와 눈을 맞추며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부모님한테 들켰어. 한국 온 것도 그것 때문이고.

‘뭘’ 들켰다는 건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녀의 말이 이어지기만을 기다렸다.

내가 아는 부모님은 보수적인 분들이시니까, 솔직히 두 손 들고 ‘반대’하실 줄 알았어. 그래서 처음에는 반항심이 더 컸고. 그런데 이런 식으로는…….

정윤은 부모님이 그녀를 훈계하는 대신 당신들끼리 모든 충격을 떠안은 채 괴로워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며칠 전에는 어머니가 숨겨놓은 다량의 수면제를 발견했다고. 차라리 방에 가뒀다면 이렇게 혼란스럽진 않았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정윤의 표정은 참담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그렇다고 네가…….

모르겠어, 나도.

듣기 싫다는 듯 정윤이 마른세수를 했다. 손가락 끝으로 드러난 두 눈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러다 어제 너를 다시 본 거야. 난 너무 당황스러워서…… 제발 다 잊어달라고 말하려고…….

정윤아.

미안해. 너무 미안한데…… 너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울먹이는 그녀에게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없었다. 이렇게 나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괴로울 테니까.

먼저 일어날게.

반도 넘게 남은 덮밥을 그대로 두고 식당을 나섰다. 한 번쯤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무시하며 걸음을 옮기는 동안 그녀의 마지막 말이 유령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설령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정윤이 이후로 자신을 모른 채 살아갈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었다.

역 앞 종점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그대로 집을 향해 올라갔다. 익숙한 풍경이 차창을 타고 지나갔고 나는 그 여름을, 그녀를, 우리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방학이 끝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점심을 먹고서 오후 수업을 들으러 계단을 다급히 뛰어 내려가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유유히 걸어오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고 이는 적중했다. 그녀가 계단까지 올라와 말을 걸었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잠시 시간 괜찮으시면…….

수업에 늦어서요, 죄송합니다.

바쁘신가 봐요. 잠깐이면 되는데.

죄송합니다.

혹시 하나님 믿으시나요?

두 번이나 내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무례한 전도에 짜증이 치솟아 계단을 내려가는 속도를 높이니 그녀도 빠르게 다리를 움직여가며 쉬지 않고 말을 붙였다.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그에 섞여들었다.

예수님 아시죠. 우리가 지금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도 다 예수님 덕분이거든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우리 죄를 모두 사해 주신 거예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을 흘려보내며 시간을 확인했다. 수업까지는 2분이 채 남지 않아 있었다. 강의동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시간 안에 갈 수 있느냐 물으면 그건 또 아니었다. 개강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지각이라니. 이런 때 누군가가 끊임없이 귀에 대고 떠드는 걸 참고 있기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예수님을 믿으셔야 해요. 그래야 나중에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실 수 있어요.

그분이 레즈비언의 죄도 사해 주셨나요?

네?

레즈비언도 하나님 믿을 수 있냐고요.

아아, 우리 자매님이…….

이런 경우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표나게 당황한 그녀가 잠시 말을 멈췄다.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걸음을 늦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내 손을 덥석 그러쥐며 말문을 열었다.

자매님,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신 모습 그대로를 따라야…….

숨이 턱 막혔다. 저런 말을 듣는 것은 여기까지로 족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눈앞에 보이는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곧장 화장실에 들어와 설마 여기까지 따라오려나 싶어 문을 바라보았지만 다행히 별다른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안도감에 다리가 풀릴 것만 같아 칸 하나에 들어가 변기 위에 앉았다. 그대로 양 무릎을 짚고서 바닥을 바라보다가 결국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수업엔 이미 지각이었고 나는 너무 우울한 나머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삽화: 송채은 기자 panma200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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