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을 넘어 한국 외교의 미래를 모색하다
한일 갈등을 넘어 한국 외교의 미래를 모색하다
  • 박재우 기자
  • 승인 2019.09.2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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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행사 | 스누코아&정치외교학부 자치회 주최, 장부승 교수 초청강연회: 한일관계, 해법은? - 능동형 자주국가와 민주적 엘리티즘의 비전

지난 7월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한 후 한일 갈등이 심화된 지도 벌써 세 달이 흘렀다. 여전히 한일 갈등을 해결할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나 세 달이라는 시간은 한일 양국이 그동안 어떻게 갈등을 관리했고, 그것이 적절했는지를 평가할 만한 충분한 기회를 제공했다. 

한일 갈등을 둘러싼 한국 외교의 현황과 과제를 돌아보고자 지난 27일(금) 체육문화교육연구동(71-1동)에서 강연회가 개최됐다. 이날 강연회에서는 장부승 교수(관서외국어대 국제관계학과)가 연사로 나섰다. 장 교수는 15년간 외교관으로 활동했으며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에서 비교외교정책을 전공한 국제관계 전문가다.

‘한일관계’라는 잘못된 문제 설정

우리가 특정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해결책이 옳고 그름을 떠나 잘못된 문제 설정 자체가 문제 해결에 더 큰 어려움을 유발하기도 한다. 문제 설정이 잘못되면 아무리 최선의 해결책을 세워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장부승 교수는 한일관계를 분석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가 그릇된 질문으로 한일관계를 다루고 있지는 않은가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장 교수는 “강연 요청을 받을 때마다 ‘한일관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요구받는다”라며 “사실 한일관계라는 양자 관계에 대한 과몰입이 한국의 종합적인 외교 운영을 방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외교에서는 거시적인 국가의 핵심 목표가 정해져야 특정 국가와의 관계 설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는 정부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가 불분명하다. 장 교수는 “솔직히 정부가 이번 한일 갈등에서 쟁취하려는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라며 “대법원의 판결만 근거로 내세울 것이 아니라 정부가 한일관계의 갈등 양상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는지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달성코자 하는 장·단기 목표가 화이트리스트 삭제 조치의 원상 복귀인지, 한일청구권협정의 개정 혹은 재협상인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일관계에서는 역사 문제와 민족주의적 정서가 매번 유연한 대안 모색을 막아왔다. 장부승 교수는 “전략적 필요에 따라 얼마나 유연하게 행동하는지가 외교의 승패를 가른다”라며 “한일관계가 선과 악의 문제로 치환됨에 따라 우리는 스스로의 전략적 선택에 제약을 가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관점의 외교 접근이란

장부승 교수는 이번 한일 외교전이 비단 문재인 정부뿐 아니라 대한민국 외교정책 방향의 문제점을 드러낸다고 설명한다. 장 교수는 특별히 두 가지 문제를 꼬집으며 각각의 문제를 뒤집어 볼 때 대안을 모색할 실마리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첫 번째 문제점은, 외교를 보편적 가치가 아닌 민족의 특수한 경험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옛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지에 국가 차원의 사과와 배상을 인정한 사례는 거의 없다. 19세기 말 벨기에 레오폴드 2세의 가혹한 콩고 지배, 1904~1907년 독일 제국의 나미비아 학살, 1950년대 영국의 케냐 마우마우 봉기 탄압 등이 대표적 사례다. 장부승 교수는 “우리는 그동안 반(反)군국주의라는 기치를 내걸고 일본에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다”라며 “우리가 정말로 반군국주의라는 가치를 중시한다면 다른 국가가 겪은 비슷한 성질의 피해에 대해서도 비슷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반제국주의, 약자에 대한 보호 등 보편주의적 가치관에 입각한 외교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른바 ‘위안부’, 강제징용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편협하다. 장부승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전쟁 도중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온갖 난관을 겪었다”라며 “이는 지금도 사회적 약자가 전쟁터에서 겪고 있는 고통과 본질상 크게 다르지 않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징용 문제 역시 노동자 보호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함도에서는 조선인뿐 아니라 중국인과 일본인도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장 교수는 “한국 정부가 다른 비슷한 문제에는 침묵하고 자국과 관련된 사례에만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을 다른 국가도 모를 리 없다”라며 “한국이 보편적 가치관에 근거해 역사 문제에 접근할 때 세계도 우리의 고통에 동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문제는 외교를 국가가 아닌 민족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것이다. 우리는 헌법상 규정된 ‘한반도 통일국가 건설’이라는 민족주의적 이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말해 실재하지 않으며, 현실에서는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움직일 뿐이다. 그렇다 보니 한국의 외교활동에서 ‘민족’의 이상과 ‘국가’의 이익이 상충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일본에 대한 한국 사회의 ‘민족적’ 감정과 동시에 일본과의 경제 및 안보 협력은 필요하다는 ‘국가적’ 여론이 병존할 수 있는 까닭이다. 문제는 외교가 ‘민족’의 이익에 과도하게 치우칠 때 현실 ‘국가’의 이익이 심각히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장 교수는 “민족의 이상과는 별개로, 국가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인지 냉철히 파악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강대국을 꿈꿔야 할 때

결국 한일 갈등의 해법은 향후 한국 외교 전체의 새로운 방향 설정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이 대목에서 장부승 교수는 ‘능동형 국가’(proactive state)라는 방향을 제시했다. 장 교수는 “능동형 국가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역량을 갖고 있으며, 장기적 관점에서 국익을 독자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나라”라고 정의했다. 능동형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역량, 일관된 가치 설정, 유연한 대응 등이 필요하다.

장 교수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걸프전을 예시로 삼았다. 당시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던 영국 대처 총리는 내각에 강력한 대응 조치를 주문했다. 이는 미국의 대응보다도 빨라, 도리어 영국이 미국을 이끄는 모양새를 띄기도 했다.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프랑스군의 유일한 항공모함인 샤를드골함을 중동으로 급파했다. 이는 걸프전 대응에서 프랑스가 주도권을 쥐려는 조치였다. 반대로 한국의 노태우 정부와 일본의 도시키 내각은 미국의 요구가 있을 때까지 기다림을 선택했다. 

이처럼 특정 가치나 목적 없이 소극적인 태도로 외교에 일관할 경우, 자신이 위치한 지역 이외의 외교 사안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지고 노골적으로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게 된다. 장부승 교수는 “국제사회에서 능동적으로 나서지 않을 때, 외교는 국지적이고 몰가치적이며 패배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동아시아를 넘어선 외교는 투자 유치를 위한 ‘비즈니스’로만 여기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물론 국제사회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경제와 안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역량을 갖춰야 한다. 장 교수는 “우리의 물적 기반은 이미 강대국에 근접해 있다”라며 “문제는 더 높은 단계를 지향하지 않고 있는 우리의 사고와 태도에 있다”라고 지적했다. 요컨대 한국이 제 몸집에 맞는 ‘강대국’이 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장부승 교수는 강연 말미에 이르러 능동형 자주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국내 정치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외정책은 국내 정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장부승 교수는 “대외정책의 목표와 필요에 따라 국내 정치의 활동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라며 “다른 선진국의 역사를 보면 국제관계의 시각에서 국내 정치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국제파’ 정치인이 점진적으로 증가했다”라고 말했다. 이번 한일 갈등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외교적 과제가 남아있음을 보여줬다. 보편성에 기초한 외교, 국제정치의 관점에서 보는 국내 정치가 어느 때보다 강조돼야 할 이유다.

 

사진: 손유빈 기자 yu_bin0726@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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