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 윤영호 교수
의학과 윤영호 교수

한국 사회는 산업화, 민주화, 사회보장제도 등 여러 분야에서 급성장을 해 왔다. 선진국의 길에 들어서면서 환경, 초고령화, 건강, 경제, 고용, 사회 갈등 등 해결해야 할 여러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 정부와 비영리 단체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문제 해결에 기업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지난달 다이먼·베이조스·쿡 등 181명의 미국 CEO들이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을 통해 주주들의 이익 창출만이 아니라 근로자, 납품업체, 소비자, 지역사회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다하겠다는 '기업의 목적'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자성과 변화의 목소리가 담겼다. 반가운 일이다. ‘CSR 2.0’을 제시한 웨인 비저가 주장했듯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은 기업의 자선과 전략적 목적 차원을 넘어 시스템적인 차원으로 들어서고 있음을 시사한다.

일부 한국 기업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가치’ 국제표준을 구축하기 위해 비영리법인 ‘Value Balancing Alliance’를 개소하기로 했다. 바스프 등 글로벌 7개 업체가 동참한다. OECD, EU 집행위원회도 참여하며 영국 옥스퍼드 대학, 미국 하버드 대학교수들을 중심으로 연구 컨소시엄도 구성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사회공헌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 사회공헌사무국을 사회공헌단으로 격상하고, 안규리 교수(의학과)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한국의 기업도 여러 분야별 다양한 사회적 공헌활동을 통해 사회적 책무를 담당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자선과 홍보 차원의 사회공헌활동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울대를 비롯한 국내 대학은 한국의 민주화와 인재 양성과 함께 철강, 조선, 건축, 자동차, 반도체, 항공 분야에서 한국의 산업화에 크게 기여해 왔다. 그러나 최근 국민들을 불안하게 해 왔던 메르스, 미세먼지, 초고령화, 저출산, 자살, 웰다잉, 청소년 비만, 취업문제, 노동자 사고, 불형평성, 북한 관계, 일본 경제전쟁 등에 대해선 뚜렷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물론 대학 자체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마이클 포터는 공유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 CSV)을 제시했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가치를 구현할 때 경제적 가치도 생긴다는 것이다. 공유가치 창출을 추구하는 기업만 살아남을 것이며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들 것이라 했다. 대학은 기업이 공유가치 창출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협력할 필요가 있다. 지식공동체로서 관련 분야의 선도 기업과 사회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해야 한다. 이를 검증하며 사업화할 수 있는 전략도 세워야 한다. 대학과 기업이 함께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해야 한다. 2013년, 서울대는 사회공헌활동에 대한 교육 및 훈련, 연구 및 국가 정책 자문 등을 통해 ‘사회적 책임성과 혁신적 전문성을 토대로 지속적으로 협력’하기 위한 글로벌 사회공헌단도 만들었다. 2017년에 ‘사회공헌 교수협의회’도 발족해 사업 내용을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해서 기업들과도 손잡았다. 지난해 9월 서울대 그린바이오 과학기술연구원이 SK이노베이션 기술혁신연구원과 함께 강원지역 중소기업 기술사업화와 바이오매스 전문 인력 양성교육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다. 또한, 최근 서울대 의대가 중앙일보플러스와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건강문화’를 공동추진하기로 했다. 이런 노력은 사회적 책임에 위한 몸부림이다. 그러나 사회에 대한 대학의 책무는 끝이 없다. 이와 같은 노력이 이벤트성이 아니라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5년 아니 10년의 장기적인 비전으로 끊임없이 지속돼야 한다. 다양한 기관들로 확대되고 많은 협력이 만들어져야 한다. 여러 단과대학이 함께 하면 더욱 좋겠다. 사회공헌에 목말라하는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들이 수익 창출을 넘어 구체적인 행동과 투자를 통해 근로자, 소비자,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기를 기대한다. 이는 우리 기업들의 성공과 국민의 미래를 위한 유일한 길일 것이다. 지속가능한 경제적 가치도 함께 창출할 수 있는 창의적인 해결방안을 대학이 찾아줘야 한다. 이는 국민, 기업과 함께 시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동반자로서 대학이 마땅히 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다.

윤영호 교수

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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