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대학원 석사과정 김은하
간호대학원 석사과정 김은하

파랑은 3원색의 하나로 470nm 부근의 스펙트럼 파장을 가지는 색이다. 최근에는 균형과 조화의 색으로 전 세계적으로 선호도가 높은 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12세기 초까지는 파랑에 대한 태도는 부정적이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파랑을 기피했으며 미개하고 세련되지 못한 색으로 인식했다. 심지어 무지개에도 파랑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12세기 후반이 돼서야 파랑은 우아하고 귀족적이며 신성한 색으로 여겨졌고, 낭만의 상징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정신과 간호사로서 일하면서 나는 정신장애인이 12세기 이전의 파랑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다. 나를 소개할 때 정신과 간호사라고 하면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어휴, 무섭지 않으세요?”였다. 굳어진 표정에서 나오는 그들의 눈빛에서 두려움, 공포가 단숨에 엄습해 오곤 했다. 처음에는 “같은 사람인데 왜 무섭다고 생각하세요?”라고 쏘아붙이거나 반박했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환자들이 사실은 착해요. 치료를 잘 받으면 위험하지 않아요”라며 질문한 그들을 위로해 주곤 한다.

2018년 12월,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의 사망으로 조현병 환자에 대한 공포가 전국적으로 증폭됐다. ‘조현병’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범죄’가 포함돼 있으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예비 범죄인이라는 반사회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건강과 치유를 촉진하는 돌봄관계를 제공하는 간호사로서 최근의 사회 현상은 통탄스럽다.

정신장애인은 망상, 환각 등 다양한 증상으로 인해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전쟁과 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환자들이 느끼는 고통 중 많이 언급하는 요소는 사회적 낙인으로 인한 부정적 대우와 차별이다. 눈물 가득 고인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내가 뭘 그리 잘못했나요? 소리(환청)가 엄마를 해칠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었어요. 제가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게 아니잖아요”라고 외치는 진심 어린 환자의 말을 들으면, 나는 항상 정말 미안하고 사과하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다. 입원한 환자들의 대부분은 주변에 장기 해외여행을 갔다고 하거나, 큰 수술로 병원에 입원했으니 당분간 연락이 안 될 것이라며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숨길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정신과 병동에 입원했다는 사실을 알리자 파혼당한 20대 조울증 여성의 절망감, 정신과 약을 먹는다며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는 남학생의 눈물은 정신장애인들에게는 흔한 일이다. 입원,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자는 그나마 다행이다. 치료 사각지대에 있는 수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시작하지도 못한 채, 상태가 더 악화되지만 가정에서 침묵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다. 

정신질환은 완치가 어려우며 하루아침에 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이며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이들이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고 나면 사회에 복귀도 충분히 가능하다. 정신장애인들이 전문적인 도움을 즉시 받을 수 있는 시스템 구축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신장애인이 사회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인식의 변화가 우선되지 않으면 훌륭한 시스템이 있어도 이용하기 어렵다. 정신장애인은 사회에서 추방해야 하며 마치 전염병을 가진 것처럼 사회적 격리가 필요한 대상으로 취급되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정신질환은 누구나 겪을 수 있으며, 예고 없이 나에게 혹은 가족에게 갑자기 찾아온다. 실제로 우리가 접하는 범죄들은 5% 정도가 정신건강이 범죄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정신장애인이 적절한 시기에 적합한 치료를 제공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회복 관점의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들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치우친 현상의 균형을 위해서는 사회적 낙인을 감소시키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우리의 문화와 태도를 살펴 접근이 용이한 매체를 통해 정신장애인에 대한 긍정적 경험을 자주 접하도록 기회를 늘리고, 정신장애인과의 직접적 접촉을 통해 이들이 위험하지 않다는 인식이 자리매김해야 한다. 

정신장애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파랑을 차갑고 냉정한 것으로만 보지 말고, 색에 대한 다른 감각을 느껴보자. 한국 사회에서 파랑을 따스하고 포근하게 바라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김은하

간호대학원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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