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 사람을 생각해 공간을 만드는 황두진 건축가를 만나다

황두진 건축가는 서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건축을 해나가는 건축가다. 또한 그는 『가장 도시적인 삶』, 『무지개떡 건축』 등의 책을 여럿 써내면서 작가로서의 정체성도 공고히 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황두진 건축사사무소에서 그를 만났다. 책장에 차곡히 쌓인 책들과 책장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을 적절히 배치한 사무실에서 그가 지닌 공간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리와 몸으로 배워나간 건축

황두진 건축가가 건축에 매료된 것은 학부 재학 시절부터다. 공과대학 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하게 된 그는 우연히 찾아간 건축학과 건물에서 건축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당시 그가 입학했던 공과대학은 계열별로 학생을 모집했기 때문에 진로 선택을 위해 교수님과 면담을 해야 했다. 교수님의 사무실을 찾아가던 중 건축학과 건물 벽에 걸린 도면과 모형을 본 그는 낯선 설렘을 느꼈다. 황두진 건축가는 “설레는 마음을 간직한 채 교수님과 면담하면서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라며 전공 선택의 계기가 너무도 우연적이라 남들에게 말하기 창피했을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그때 그가 건축학과 건물에서 느꼈던 설렘은 지금까지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그가 고된 작업을 이어가게 해주는 힘이 돼주고 있다. 

건축을 하기로 결심했지만, 학부 시절 그는 자신의 손으로 쓸모있는 물건을 만들어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당시 건축가는 무엇인가를 만드는 사람보다 도면을 그리는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할 때가 돼서야 공대생이라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학내의 공대 공작실을 알게 됐다”라며 “학교에서는 몸으로 하는 일보다 머리로 하는 일을 더 중시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만들어볼 기회가 없었다”라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그가 창작 활동을 본격적으로 경험한 것은 미국에서 유학하면서부터였다. 미국의 대학은 몸으로 부딪히며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경험을 중시했다. 그는 “몸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을 중시하는 문화 덕분에 한국 대학에서 느꼈던 갈증을 유학 시절에 해소했다”라고 회상했다.

황두진 건축가는 유학 이후 미국에 있는 김태수 건축사의 사무실에서 건축가의 자세를 익혔다. 당시 사무소가 있던 뉴잉글랜드 지역은 건축 기준이 엄격했기 때문에 그곳의 건축물은 이를 둘러싼 규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건축가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라며 “오히려 온갖 규제 속에서 건축가 자신이 목표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려 하는 집요한 태도를 배웠다”라고 말했다.

건축에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며

황두진 건축가는 기업 건축물에 사무실만 가득하고 아파트도 여러 세대의 주거 공간으로만 구성되는 등 용도가 단일한 우리나라의 건축물에 의문을 제기하며 2015년 ‘무지개떡 건축’이라는 새로운 건축 개념을 제시했다. 다양한 용도의 층이 하나의 건축물을 이루는 무지개떡 건축물은 수평적으로 확장돼온 서울의 밀도를 낮추기 위해 고안됐다. 

무지개떡 건축이 유효한 개념일지 알아보고자 그는 2002년 자신의 집과 사무실을 하나의 공간으로 합쳤다. 10년 넘게 그곳에서 생활하며 집과 사무실을 오가는 시간을 절약하자 그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누리기 어려운 여유시간이 생겼다. 그는 “건축으로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라며 “여태까지 우리는 동네에 문화 센터가 존재하는지 혹은 집의 평수가 넓은지와 같은 물질적인 기준만 고집해왔다”라고 지적했다. 무지개떡 건축의 목적은 이런 종래의 평가 기준을 허무는 데 있다. 일하는 공간과 생활하는 공간을 합쳐 사용자가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황두진 건축가는 무지개떡 건축물 개념을 활용해 배구단을 위한 건축물인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를 완성했다. 이 건축물에는 연습 공간과 숙식 공간이 함께 존재한다. 그는 “숙소와 합쳐진 훈련소 건축물은 선수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건축물 기획의 의도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처음부터 쉽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훈련 공간과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공간이 합쳐져 있는 건축물 구조는 선수들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선수들이 자신의 일상을 감시당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고려해 선수들의 숙소를 코트의 가장자리를 따라 배치하되 숙소와 코트가 철저히 분리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는 “코트의 주변에 다른 시설을 넣어도 된다는 것에서 착안해 선수들의 방을 설계했다”라며 “선수들의 피로감을 덜기 위해서 방을 밖을 향해 열려있도록 만들고 방에서 코트 소리가 차단되도록 했다”라고 설명했다. 숙소와 훈련소를 합친 건축물은 선수들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목적으로 한다. 훈련장과 숙소가 합쳐진다면선수들이 훈련장에서 숙소로 땀에 젖은 채로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오랜 시간 건축에 몰두한 황두진 건축가에게도 건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건축물에 대한 상상력은 사회의 규제나 다른 이들의 생각으로 인해 제약받기 쉽기 때문이다. 그는 “건축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을 표현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은 수단”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건축물을 구상하거나 계획할 때는 반드시 장기적으로 생각한다. 건축물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창작물인 동시에 그 인간보다 오랜 역사를 살아가는 인류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빨리 진행되는 현대 사회에서 긴 호흡으로 활동해야 하는 건축가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는 “건축가가 긴 호흡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가 필요하다”라면서도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긴 호흡의 창작과 짧은 호흡의 창작이 공존해야 한다”라고 건축의 다양성 역시 필요함을 지적했다.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는 선수들의 상황을 고려해 숙식 공간이 함께 존재하도록 고안됐다. 사진 제공: 박영채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는 선수들의 상황을 고려해 숙식 공간과 연습 공간이 함께 존재하도록 고안됐다. 사진 제공: 박영채

 

건축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황두진 건축가는 단지 건축에만 집중하지 않고, 건축과 다른 분야를 연결짓기도 한다. 그는 2017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 ‘음악과 건축의 동행’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음악에 맞게 공간을 재배치해보자는 취지의 이 프로젝트는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과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글쓰기 또한 그의 일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업 중 하나다. 그는 개인 홈페이지에 자신의 글을 모아두고 페이스북에 일기 삼아 글을 작성하기도 한다. 그는 “건축은 상황을 조직하는 분야기 때문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내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분야는 아니다”라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즐기는 인간으로서, 건축으로 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해소하고 싶었다”라고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건축주와 시공사, 사무실 직원 등과 함께 이견을 조율해가는 공동 작업인 건축과 달리 글쓰기는 혼자서도 가능하다. 그는 “건축은 때때로 버튼을 누를 때마다 오작동이 되는 리모컨으로 복잡한 일을 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라며 “이와 달리 내밀하게 진행되는 글쓰기는 그런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분야”라고 말했다. 자신을 작가로 소개하기도 하는 그에게 글쓰기는 취미를 넘어서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됐고, ̒작가̓는 그의 또 다른 정체성이 됐다. 

황두진 건축가는 자신이 앞으로 이루고 싶은 성취를 별과 별자리에 비유한다. 여태까지 그가 만들었던 건축물이 별이라면 궁극적인 그의 목표는 별들이 모여 만들어진 별자리다. 그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부합되는 성격을 가진 건물에 애착이 간다”라며 “이런 건물들이 일관성과 다양성을 이뤄 하나의 별자리로 거듭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직 별의 숫자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라며 “서로 다른 별들이 내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라고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건축을 시작한 그는 더 많은 사람을 위한 건축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순수한 시도를 계속해갈 것이다.

사진: 원가영 기자 irenber@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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