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학과 구인회 교수

 

일 년여 앞으로 다가온 미국의 대통령선거 후보 경쟁을 둘러싼 소식들이 국내에도 전해지고 있다. 민주당 후보경선에 나선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이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로 올라선 것이 크게 보도됐다. 그녀는 수백억대의 자산을 가진 슈퍼리치들에게 2~3%대의 부유세를 부과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보수진영으로부터 반자본주의자라는 공격을 받았다. 앤드루 양이라는 아시아계 후보는 미국의 모든 성인에게 월 100만대의 기본소득을 제공하겠다는 공약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막대한 소득을 올리면서도 세금은 거의 내지 않는 거대 자본으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이면 실현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나라 미국의 대통령 후보들이 사회주의 정당의 후보들이 내세울 만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는 것만으로 흥밋거리를 제공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불평등이 갈수록 극심해지는 미국 사회의 심각한 현실이 놓여있다.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의 연구에 따르면, 최근 미국의 상위 10% 부유층이 차지하는 소득은 미국인 전체 소득의 50%에 육박할 정도다. 그동안 가장 불평등이 극심했던 시대로 알려져 있던 20세기 초보다 더 상황이 악화됐다. 칼 마르크스는 19세기 중반의 유럽 상황을 지켜보면서 자본주의 양극화론을 전파했는데, 피케티는 21세기 선진산업사회를 분석하면서 세습자본주의가 등장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양극화 추세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실 2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서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런 성공에는 1950년대에 농지개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지주에 집중된 자산이 평등하게 재분배된 것이 주효했다. 이로 인해 한국은 지주로의 자산집중이 유지된 남미국가들과는 출발선을 달리하게 됐다. 평등한 자산 재분배는 교육의 대중적 확산으로 이어졌다. 이때 농사짓고 소 키워 자녀에게 대학 교육을 시킨다는 우골탑의 신화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잘 교육받은 세대들은 1960년대 이후 산업화로 만들어진 고용 기회에도 널리 참여하게 되면서 소득도 고르게 향상됐다. 자산과 소득, 교육의 세 가지 축으로 이뤄진 평등화 체제는 1990년대를 거치면서 그 효력을 잃게 됐다. 2000년대 들어 소득 양극화가 사회적 쟁점으로 등장하더니 이내 교육을 통한 불평등의 세습 문제가 불거지고 여기에 자산 불평등이 더해지면서 완전히 새로운 분배체제가 등장했다. 이제 우리나라 국민들의 전체 소득에서 상위층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유럽국가보다 훨씬 높아졌고 미국에 접근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불평등은 더 악성이다. 선진 산업 국가들의 불평등이 주로 상위층의 소득과 부의 증가 때문에 나타났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저소득층의 지위 하락, 빈곤 증가와 맞물려 불평등 악화가 진행됐다. 우리나라에는 복지국가의 사회안전망 기능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탓이다. 사회안전망의 기능부전 증상은 노인 빈곤 증가로부터 나타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복지국가는 노인에 대한 연금제도를 갖추는 것으로부터 발전했다. 20여 년의 노력을 거치면서 1970년대 전후로는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했다. 산업화 시기 경제성장 우선주의에 사로잡힌 우리나라는 복지확충 요구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1997~1998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복지확대를 위한 노력을 때늦게 시작했다. 1999년 제정된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은 그 시발점을 알리는 큰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우리 시민들도 빈곤을 벗어난 최저 생활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게 됐다. 이제 법 제정 이후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OECD 보고서는 우리의 사회권 보장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보고서는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45%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이보다 덜 알려져 있지만 크게 대비를 이루는 사실도 알려준다. 노인을 제외한 근로 연령대 인구집단의 빈곤율을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들보다 나쁘지 않다는 점이다.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극심한 곤궁으로 추락하는 우리 사회, 극심한 노인 빈곤은 그 단면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능력 있는 자들만 살 수 있는 각자도생의 나라, 이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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