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연 학술부장
이승연 학술부장

의식하지 못한 채 무엇인가에 몰두하던 나는 아마 종종 화난 표정을 짓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미건조하고 불퉁해 보이는 표정일 것 같기는 하다. 어려서부터 이 생각을 자주 해왔지만 내 표정을 직접 보는 경우는 드물기에 이 일을 크게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 전 사진을 찍다가 다시 한번 이에 대해 생각했다. 분명 카메라를 보고 신경 써서 웃는다고 웃었는데, 찍힌 사진을 보니 아무리 봐도 어딘가 뚱하고 초점이 흐린 것 같은 표정 같았다. 그런 내 표정을 물끄러미 보다가 내가 바라봤던 타인의 표정을 다시금 떠올렸다. 나와 마주하며 웃어주던 미소, 홀로 무엇인가를 고심하며 찡그린 콧잔등, 지루함을 느끼고 늘어진 눈매. 생각해 보면, 누군가를 향해 호의 가득한 표정을 지어준다는 것은 꽤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의식적으로 표정을 갈무리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나 보다.

새까만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그 위에 계속 어떤 색의 물감을 덧칠한다.

되새겨보면 어려서부터 나는 표정이 적은 편이었다. 이는 어린 시절 나의 사진첩을 넘겨 보면서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표정이 풍부한 여동생과 달리, 옆에 서 있던 나는 아이답지 않은 건조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감정이나 속마음을 표현하는 일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무표정한 나를 보고 내게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꽤 어려운 일일 수 있겠다고 종종 생각했다.

고등학생 시절, 문예 창작 클러스터 활동을 하며 「그림자의 표정」이라는 단편 소설을 작성했다. 당시에는 그 소설이 퍽 마음에 들어 종종 꺼내 보며 즐거워했다. 물론 지금 보면 문장이나 구성이 너무나도 엉성해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없을 만큼 민망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수년이 지나 다시 그 글을 읽어보니, 그때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내 모습을 이제는 조금 더 선명하게 어림해 보게 됐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채 그 감정을 자신의 인형에 투영하던 인물. 그의 뒤에 숨겨진 내면의 표정과 감정을 짚어낸 주인공. 이들의 서사 어딘가에는 나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묻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편이다. 그 누구에게도 솔직한 날것의 감정을 드러낸 적은 극히 드물었을 것이다.

“그래봤자 당신의 감정들은 없어지지 않아요. 오히려 당신의 안에서 더욱 커지기만 하죠.”

선생님을 꿈꾸는 사범대생으로서, 교사가 된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떠올려보는 것들이 있다. 마음속 깊은 곳에 감정들을 쌓아두고 이를 꺼내는 일에 서툰 아이와 마주하는 것. 그런 상황에서 나는 그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을까. 입시나 성적 등 결과에만 매몰된 요즘의 교육 현장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보살펴 줄 수 있는 교사를 만나는 일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선생님이라면, 적어도 아이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 정도는 포착해 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 학생이 품은 내면의 응어리를 모두 풀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학생이 겪고 있는 고통을 인지조차 하지 못한다면 나는 교사로서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부끄러운 교사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감정을 다루는 일에 조금은 익숙해지고자 한다. 그러려면 나는 먼저 나 자신의 마음부터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하지 않을까.

“그냥 솔직해지세요. 애써 숨길 필요 없어요. 당신이 솔직해야, 당신들의 인형도 솔직해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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