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가 할퀴고 간 상처에 온 국민이 함께 앓고 있다. 이런 때에 가장 가증스럽게 보이는 존재는 이 재난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었다고 둘러대는 고위 공무원들의 변명이다. 백성들의 안위보다는 자신의 골프 약속이 더 중요했던 이런 사람들에게 정다산의 『목민심서』를 들이댄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그런데 현재 우리 관악에는 그리고 우리나라 각 대학에는, 태풍 ‘매미’의 상흔처럼 그렇게 크게 눈에 띄진 않지만 그에 못지 않게 아픈 상처, 곪아터지기 직전의 해묵은 상처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 문제이다. 국내·외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학문후속세대가 대학에서 주 3시간 짜리 강좌 하나를 얻기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상황이지만, 일단 한 강좌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 보수가 극빈자 수준이다. 이 쥐꼬리만한 강사료도 그나마 방학 때에는 한푼도 없으니, 대학 시간강사는 기나긴 방학 기간 동안에는 단식 고행이라도 하라는 의미인가.


자신의 학문을 이어갈 후진들이 이런 극빈자의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무신경하게 자신의 연구와 강의에만 전념하고 있는 이 땅의 교수들도 시간강사들의 눈에는 무책임하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다. 최소한, 후진들의 어려운 사정을 못 본 척 외면하고 있는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이라는 평판만은 면할 길이 없을 것 같다.

시간강사 처우는 정부의 안이한 의식을 대변…교수들이 나서야

하기야 강사료를 올리고 시간강사들에게도 연구비 혜택을 주어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을 보장해 주는 일은 국가가 해야 할 책무이다. 그러나 전체 국민의 삶을 위해 이상적으로 사고하고 ‘인간적인 얼굴’의 사회를 실현하려는 민주정부라는 실체가 과연 있기나 한 것인가. 혹은 이 실체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계산하고 안배하는, 권력과 자본에 민감한 관료집단이 있을 뿐인가. 시간강사들이 고통스러워 하고 심지어는 자살로써 항변할 때마다 우리 교수들은 이런 못 믿을 집단에게 우리의 학문 후속세대를 보살펴 주도록 누차 애원하고 간청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메아리 없는 간구에 그치고 있다.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모든 불요불급한 대학재원을 총동원하여 특히 생활이 어려운 인문·사회계 시간강사들의 방학 중 생활보조비 및 연구비를 마련하고 그것으로도 재원이 부족할 때에는 우리 대학인 자신들의 박봉을 일부 반납하면서까지라도 이 명백한 부조리와 불의를 지속시켜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안이한 사고에 함몰된 정치 및 관료 집단에게 뚜렷이 보여주어야 한다. 가장 이상에 불타야 하고 앞으로 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 인재들이 극도의 생활고에 시달리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이런 시스템이 ‘국가’라면, 우리는 분연히 이런 시스템에 맞서야 한다. 시간강사들의 궁핍한 삶에 그들의 후견인인 교수들이 관심을 쏟고 도와주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나서야 한단 말인가.


바라건대, 교수들의 수장인 총장, 그리고 교수협의회장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부디 앞장서기 바란다. 또한, 전국의 모든 보직 교수와 평교수들도 이제 한 목소리를 내어 우리 시대 대학인들의 이 해묵은 숙제를 해결하는 데 진력함으로써, 지금까지 후진들에게 지은 무관심과 냉담의 죄업을 씻어야 할 것이다.


안삼환
인문대 교수·독어독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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