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말 그대로 정치적 블랙홀에 빠졌다. 조국 장관이 국무위원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부터 임명, 그리고 검찰개혁에 나서고 있는 이 순간까지 조국 장관 일가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검찰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을 통해 공표되고 있고, 이는 다시 국민의 정치적 대립을 극명하게 가르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급기야 검찰개혁을 앞세운 대규모 촛불집회가 대검찰청 앞에서 열리더니 조국 장관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퇴진을 주장하는 집회가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어느 입장이 정당한가를 떠나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를 양극으로 하는 정치적 갈등이 짧은 시간에 해결될 리 만무하다. 이 와중에 시급하게 풀어내야 할 산적한 사회정치적 문제들이 가려진 채 잊히고 있다. 무엇보다 입법을 기다리는 사회개혁 과제들에 대해 국회는 조속한 처리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는 국정에 주권자 의사를 반영하는 스피커인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조율해 다양한 의견을 하나의 법 조항으로 갈무리하는 실무자며, 국가의 미래와 현재를 아우르는 구조적 문제를 입법 과정을 통해 해결하는 국민주권실현의 대리인이어야 한다. 그런데 국회는 그런 대리인으로서의 입법 실무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는가. 아니, 수행하고 있는가? 회기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국회에서 입법과 관련된 논의가 전혀 진전되고 있지 않은 ‘입법 공백’이 우려되는 현실이 놀랍다. 도대체 국회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한 정치를 벌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사실 국회에는 지난 회기 동안 전 국민의 관심을 받고 처리를 기다리는 법안이 쌓여 있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사립학교법·유아교육법·학교급식법 개정안」(유치원 3법)은 교육위원회에 배정된 180일, 법제사법위원회에 배정된 90일 동안 별다른 심사도 이뤄지지 못한 채 묶여있다. 올해 말일까지 개정 입법이 안 되면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에 따라 효력을 잃는 「병역법」과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또한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최근 국무회의가 의결한 ILO(국제노동기구) 핵심 협약 3건의 국회 비준 또한 한국 사회의 미래를 구조적으로 변화시킬 중요한 사안이다. 여느 때보다도 시급한 현안이 산적한 국회가 공전한다면 사회 갈등이 제도권 내에서 해소될 수 있으리라는 국민의 믿음이 해체돼 국가의 전제 조건을 흔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격렬한 정치적 대립이 이어지면서 국가 차원의 그 어떤 생산적 논의도 한 발짝 나아가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어찌 보면 사안에 따라 정치적 긴장과 갈등이 생기고, 이 과정에서 시민의 사회정치적 학습이 이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치적 갈등이 사회 전반의 문제 해결을 위한 통로와 실무적 활동을 모두 가로막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에 국회는 국민의 대리자적 지위를 다시 한번 상기하고, 국민 개개인의 개혁적 요구가 담긴 입법 사안들을 처리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적어도 국회의 이념적 대립으로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세대가 딛고 올라설 사회적 사다리를 걷어차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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