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열린 날, 하늘이 무너졌다는 사람들
하늘이 열린 날, 하늘이 무너졌다는 사람들
  • 정인화 기자
  • 승인 2019.10.0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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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 개천절, 조국 법무부 장관 규탄 시위를 가다

태풍이 지나간 무더운 날, 서울 곳곳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규탄하는 여러 집회가 열렸다. 집회의 성격과 참여 집단은 다양했지만 조국 장관과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동일했다. 이에 『대학신문』은 지난 3일(목) 광화문에서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범보수 단체들이 주최한 집회와 각 대학 촛불집회 추진위원회가 모여서 만든 ‘전국대학생연합’(전대연)이 마로니에 공원에서 주최한 집회를 찾아갔다.

누란(累卵)의 위기, 우국(憂國)하는 사람들

개천절을 맞아 서울 시내에 열린 집회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정확한 인원 추산을 두고 정치적 공방이 오갔지만 광화문 일대가 집회 참여자로 가득 찬 건 사실이다. 본격적인 집회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광화문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열기로 들끓었다. 대부분 중장년층인 참여자들은 한 손에는 태극기 혹은 성조기를, 다른 손에는 ‘문재인 퇴진 조국 규탄’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절박함과 흥겨움이 동시에 묻어나왔다.

 

집회에서는 조국 장관과 그를 임명한 문재인 대통령을 규탄하는 외침뿐 아니라 현 정권의 경제·사회·외교 정책과 이념 성향에 대한 거센 비판이 이어졌다. 자신을 ‘다섯 아이 애국 엄마’라 소개한 김수진 연사는 “살림 외에 관심이 없던 나도 문 정권이 들어선 후 경제와 사회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느꼈다”라며 주 52시간 근무제를 비롯한 정부의 정책 전반을 힐책했다. 이념적성향에 대한 원색적 비난도 쏟아졌다. 연사들과 집회 참여자들은 현 정권을 ‘사회주의자’ ‘빨갱이’로 지칭하며 공산주의로부터의 위국(衛國)을 외쳤다. 연사로 나선 학생 권형빈 씨(부산대)는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지적하며 “아예 북한에 남으로 내려오라고 레드카펫이라도 깔아주지 그러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화문 집회에는 ‘서울대학교 촛불집회 추진위원회’(추진위)도 참여했다. 추진위는 서울대 총학생회가 더는 촛불집회를 주최하지 않겠다고 밝힌 이후 일부 학생들이 4차 촛불집회를 개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 단체다. 이들은 전대연에 소속돼 같은 날 6시에 마로니에 공원의 촛불집회를 주최할 계획이었지만 결국 광화문에서 집회를 따로 열기로 결정했다. 전대연과 분리된 이유를 묻자 김근태 추진위원장(재료공학부 박사과정·16)은 “외부적으로 분열되는 모습으로 비칠까 조심스럽다”라며 말을 아끼면서도 “외치는 목소리는 다르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는 “광화문 집회에 참여하는 데 특정 집회나 정당에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는 없다”라며 위정자의 위선을 바로잡는 ‘대의’에 힘을 실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서울대 재학생, 졸업생들의 참여를 본 광화문 집회 참가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서울대 깃발을 발견한 사람들은 박수를 치거나 함성을 지르며 “이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추진위를 북돋웠다. 김소영 씨(45)는 서울대 추진위원회의 광화문 집회 참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학생들이 언론의 가짜 뉴스에 속기보다는 현장에 나와 다른 세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봤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청년이다, 순수성을 주장하는 사람들

광화문 집회가 끝난 저녁,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전대연이 주최한 촛불집회가 열렸다. 상당수의 청년과 중장년층이 마로니에 공원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모이자 주최 측은 차선 하나를 추가로 사용해 집회를 진행하기로 결정했으며, 집회 도중 참여자가 5,000명이 넘었다고 알렸다. 주최 측은 “청년이여 조국을 개혁하라”라는 슬로건을 걸어 조국 퇴진을 주장했고 참여자들은 “자진해서 사퇴하라” “금수저는 격려장학” “조국위한 조국사퇴” 등의 구호를 외치며 자리를 지켰다. 사람들이 LED 촛불을 들고 ‘민중의 노래’(영화 〈레미제라블〉 OST)를 열창하는 모습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냈던 촛불시위를 연상케 했다.

전국대학연합이 마로니에 공원에서 주최한 집회의 참여자는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됐다.
전국대학연합이 마로니에 공원에서 주최한 집회의 참여자는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됐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이념적 정체성을 비판한 광화문 집회와 달리 전대연 촛불집회의 초점은 조국 장관 인사 문제로 좁혀졌다. 전대연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조국 법무부 장관과 그 일가가 연루된 수많은 비상식적 행태에 경악하고 있음에도 조국 장관은 국민들에게 어떠한 진심 어린 사죄나 사퇴 의지, 충실히 수사를 받을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라며 조국 장관이 하루빨리 법무부 장관직을 내려놓고 수사에 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임명을 두고 “국민에 맞서는 오만과 독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하며 국민적 분노와 사회적 혼란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연사들과 참여자들의 의견도 주최 측과 비슷했다. 연사 A씨는 “다른 정당에는 엄격하던 잣대가 한없이 너그러워졌다”라고 지탄했다.

전대연 촛불집회는 앞선 광화문 집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레크리에이션 시간에는 잠시 분위기가 달아올랐지만 전체적으로 엄중한 자세를 유지하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청년들은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제창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침묵을 지켰고 각 대학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깃발식’이 진행될 때 주최 측 진행요원이 “엄숙하게, 줄 맞춰서”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참여자는 집회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지만 “낮의 광화문 집회가 훨씬 흥분된 분위기였다”라는 B씨처럼 아쉬움을 보인 참여자도 있었다.

한 지붕 두 가족, 그들의 미묘한 동거

광화문과 마로니에 공원 집회 모두 정부의 조국 장관 임명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냈지만 구체적인 메시지나 집회의 방향성, 분위기는 달랐다. 자유한국당을 주축으로 다양한 정치 집단, 종교 집단이 참여한 광화문 집회의 메시지는 조국 장관 파면을 넘어 문재인 정권 퇴진과 좌파 정치인 청산까지 아울렀다. 반면 전대연은 어떠한 정당이나 정치단체와도 무관한 학생이 주축이 된 집회라 강조하고 집회의 성격이 특정 정권에 대한 지지나 반대로 연결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연사 C씨는 “나는 진보도 보수도 아닌 중도다”라고 밝히며 전대연 촛불집회의 메시지가 정치적 성향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했고,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단상에 오르려 하자 일부 참가자가 거부해 하 의원이 퇴장하는 일도 있었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이상민 씨(26)는 “어떤 집회든 정치권의 논리에 휘말리기 싫어한다”라며 “집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참여자의 노력”이라고 말했다.

전대연 촛불집회가 청년들의 집회를 기획했음에도 구성원의 연령대는 광화문 집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광화문 집회에서 권현빈 연사가 “오늘 저녁 여섯 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해달라”라고 호소하는 등 집회 곳곳에서 마로니에 공원으로 가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결과다. 그로 인해 전대연 촛불집회는 상당수의 광화문 집회 참여자를 포함한 중장년층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학생들이 주축이 됐고 어른들이 서포트해주는 형태”라는 이상민 씨의 말처럼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했지만, 황고운 씨(24)는 “대학로에서 하는 집회라 대학생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아 아쉬웠다”라며 청년들의 뜻을 대표하기 위해서는 집회에 20대가 많이 모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질적인 구성으로 인해 집회에 참여하는 자세에 있어서 청년층과 중장년층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드러나기도 했다. 청년들은 대체로 마스크나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등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렸으며 본 집회 이후 행진 참여에 상대적으로 미온한 반응이었다. 반면 중장년층은 집회 중간중간 계속 구호를 외치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행진이 결국 부결되자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편 두 집회 모두 문제가 되는 발언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 김수진 연사는 청와대가 조국을 파면하지 않는 이유가 “받아먹은 콩고물이 많기 때문”이라는 증명되지 않는 사실을 논했고, 자유한국당 이학재 의원은 “문재인을 둘러싼 쓰레기 같은 패거리를 싹 쓸어내야 한다”라며 과격한 발언을 늘어놓았다. 결은 다르지만 전대연 촛불집회에서도 논란의 소지가 있는 발언이 흘러나왔다. 부산대 학생이라 밝힌 연사 D씨는 자신이 집회에 연사로 참여하는 것을 애인이 꺼렸다며 “여자친구가 무서워서 하고 싶은 말 못 하면 그게 남자냐”라고 외쳤다. 집회를 진행한 주최 측 사회자가 본 집회에서 부를 노래를 가르치던 중 참여자의 반응이 미비하자 “본 집회에서는 저보다 상큼한 여성분이 부를 테니까”라며 호응을 요구한 일도 있었다. 이와 관련한 해명을 요구하자 전대연 측은 “드릴 의견이 없다”라고 답했다.

사진: 윤희주 기자 yjfrog0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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