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두 단어를 혼용하고 있지만 다소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법적으로 사용하는 공식용어는 ‘청각 장애인’이지만 수어가 제1언어인 청각 장애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농인’이라 정의하는 경우가 많다. 청각 장애인의 소통 방법의 하나인 수어는 손을 이용해 소통하는 방법으로, 「한국수화언어법」에 의해 농인들의 고유한 언어로서 국어와 동등한 지위를 가진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구화’는 상대방의 입 모양을 통해 말을 이해하고(독화), 훈련을 통해 습득한 음성언어로 말하는(발화) 의사소통 방법이다. 이외에도 문자언어로 소통하는 ‘필담’이나 시청각 장애인이 수어를 손으로 만져서 소통하는 방법인 ‘촉수화’ 등이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진행한 ‘2017년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청각 장애인 비율은 0.65%다. 이는 전체 인구 중 약 30만 명에 해당하는 비율로 적지 않은 인구다. 청각 장애인의 권리는 잘 지켜지고 있는지, 『대학신문』이 서울대 학내 구성원으로서의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그들의 학습권은 보장되는가

서울대는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 따라 학생처 산하 기구로 장애학생지원센터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학기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10명 남짓한 청각 장애인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이에 장애학생지원센터는 주로 전문 속기사를 지원하고 있으며 부족한 인력은 속기 또는 대필 도우미를 모집해 충원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학내 구성원들의 장애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장애학생지원센터에는 분당 1,200~1,500타의 속도를 가진 전문 속기사 세 명이 소속돼 있어 학생들이 신청하는 수업 중 일부에 문자 통역을 지원하고 있다. 전문 인력 부족으로 인해 지원받지 못하는 수업의 경우 근로장학생의 형태로 속기 또는 대필 도우미 학생을 모집한다. 또한 '대학영어 1'과 같이 기초교육원에서 진행하는 영어 교양 수업의 경우 교수와 일대일로 수업을 진행하는 등 청각 장애인 학생의 원활한 학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문속기사가 이용하는 속기 전용 키보드의 모습이다.
전문속기사가 이용하는 속기 전용 키보드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지원 서비스들은 아직 매우 불안정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인력 부족이다. 청각 장애인 학생들이 원활하게 수업을 듣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전문 속기사를 지원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인력 문제로 인해 한 학생당 두세 과목 이상 지원하기 힘들다. 그 외의 수업은 혼자 듣거나 도우미 학생과 함께 수강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도 학술대회나 조별 과제와 같이 정규 수업이 아닌 때에는 문자 통역이나 대필 서비스가 지원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청각 장애인 학생 A씨는 “조별 과제 때 계속 (설명을) 부탁하기 미안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도 어물쩍 넘어가는 일이 자주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대에 재학 중인 청각 장애인 학생들은 구화를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수업을 들을 때 수업자료와 함께 교수님의 입 모양, 문자 통역 중인 화면까지 번갈아 봐야 한다. 청각 장애인 학생 B씨는 “수업 중 말이 점점 빨라지거나 수업 자료를 올려주지 않으시는 경우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 힘들다”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에 장애학생지원센터는 학생들이 수강 신청한 과목의 담당 교수에게 안내 메일을 발송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학생에 대한 배려를 당부하는 말과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지원 가능한 기기들에 대한 설명이 담긴 강제력이 없는 내용에 불과해 실효성을 지적받고 있다.

속기 또는 대필 도우미와 관련된 기준 및 교육 미흡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는 도우미를 모집할 때 일정 수준 이상의 타자 속도와 성적을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에는 ‘영어를 잘하는 학생’이라는 조건을 추가로 달고 있다. 하지만 지원한 학생이 조건을 만족하는지 따로 검증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청각 장애인 학생 A씨는 “도우미 학생의 속기 속도가 너무 느려 다른 학생으로 바뀐 적이 있다”라며 자신의 경험을 말했다. 이에 대해 장애학생지원센터 임희진 전문위원은 “도우미를 자원하는 학생이 적어 기준을 강화하거나 검증과정을 따로 가지기 어렵다”라고 해명했다. 검증 기준의 부실보다는 인력이 부족한 것이 더욱 문제라는 이야기다. 한편 장애학생 도우미 학생들의 경우 한 번의 예비교육을 통해 유의사항을 전달받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진희 속기사는 “도우미로 선발된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장애 유형이나 정도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생활권은 보장되는가

청각장애는 수업 시간 이외에도 생활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줘 학생들이 거주하는 기숙사 등에 이를 위한 지원 시설이 있기 마련이다. 실제로 관악학생생활관(관악사)의 경우 학생의 장애 유형이나 정도와 상관없이 장애학생 전용실에 거주할 수 있도록 우선선발하고 있다. 청각 장애인이 거주하는 방에는 초인종 소리를 빛으로 바꿔주는 경광등이나 진동으로 바꿔주는 진동 매트를 설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관악사 시설실의 한 직원은 “몇 년 전에 지원시설을 기숙사에 설치한 기록이 있다”라며 “학생이 관련 시설을 요청하면 설치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원 시설에 대한 안내와 공지사항 전달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숙사 거주 경험이 있는 청각 장애인 학생 C씨는 “우선선발 외에 청각 장애인을 위한 지원이 있는지 몰랐다”라며 지원사항에 대한 안내가 부족한 점을 지적했다. 또한 C씨는 “화재훈련과 같이 안내방송을 통해 전달되는 공지가 따로 카톡으로 전달되지 않아 난감한 적도 있다”라며 학생 안내에 유의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안내와 관련된 문제는 기숙사 밖에서도 계속된다. 지하철이나 노선버스 같은 대중교통은 안내음과 내부에 설치된 전광판을 통해 정류소의 위치를 알린다. 이때 청인은 정보를 모두 이용해 위치를 파악할 수 있지만 청각 장애인은 전광판의 알림에 의존하게 된다. 하지만 학교에 들어오는 노선 버스 중 일부는 전광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심지어 교내 순환 셔틀버스의 내부에는 위치를 알릴 수 있는 전광판이 없다. 안내음을 듣기 힘든 청각 장애인들은 바깥 풍경만으로 위치를 파악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사람이 많으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청각 장애인 학생 D씨는 “사람이 많은 등하교 시간에는 종종 내릴 곳을 놓친다”라며 “전광판이 빨리 설치된다면 학교생활이 조금 더 편해질 것 같다”라고 말했다.

노선버스에 정류장 위치를 안내하는 전광판이 설치된 모습(좌)과 교내 순환셔틀버스에 전광판이 설치되지 않은 모습(우).
노선버스에 정류장 위치를 안내하는 전광판이 설치된 모습(좌)과 교내 순환셔틀버스에 전광판이 설치되지 않은 모습(우).

이 밖에 교내의 문화시설에도 청각 장애인을 위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대 미술관 MoA(151동)나 박물관(74동)의 도슨트 투어에서는 청각 장애인 학생을 위해 따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청각 장애인 학생 D씨는 “MoA에 갔을 때 추가적인 설명을 듣고 싶었으나 소책자에도 설명이 부족했고 따로 설명을 들을 방법이 없어 아쉬웠다”라고 말했다. 현재는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소개해 주는 외부 기관을 통해 개인적으로 문자 통역을 신청해야 한다. 해설을 필요로 하는 주체가 통역해 줄 사람을 직접 구하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다. 중앙도서관에서 매주 진행하는 ‘시네마스토리’도 청각 장애인을 향한 배려가 부족하다. 외국 영화의 경우 자막이 달리지만 한국 영화의 경우 자막이 달리지 않아 청각 장애인들은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해 미술관 측에서는 청각 장애인을 위해 별도로 준비하는 서비스는 없으며 현재까지 요청된 적이 없어 지원을 고려해보지 않았다고 밝혔다. 중앙도서관도 작년 10월 인권영화제 기간에 배리어프리 자막을 지원한 이후 추가적인 지원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밝혀 아쉬움을 남겼다.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청각 장애인 학생들이 서울대 학생으로서 정당하게 누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사안은 전문 속기사 인력의 확충이다.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박원진 이사장은 “학생들의 대필은 조사를 잘못 쓰는 경우가 많아 불확실한 정보 전달이나 필요한 정보의 누락이 발생하기 쉽다”라며 전문 자격이 있는 속기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전문 인력 확충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우미 학생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박진희 속기사는 “조사 작성에 유의해야 한다는 점이나 상용어구 등록 방법과 같은 내용은 따로 교육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라고 말했다. 대필 도우미에 따라 영어표현 그대로 대필을 작성하기도 하고 내용을 해석해서 한글로 작성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청각 장애인 학생들에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박원진 이사장은 “가능하면 청각 장애인 학생이 원하는 방법에 최대한 맞춰 지원하는 것이 좋다”라며 학생 개개인에 맞춘 도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학내 구성원들이 청각 장애인과 소통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제대로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구화학교 이영주 교감은 “목소리를 크게 하는 것보다 입 모양을 명확히 보이게 하고 천천히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가능하면 천천히, 정면을 바라본 채 말하는 것은 작은 변화일 수 있지만 청각 장애인 학생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교수자에게도 노력이 요구된다. 청각 장애인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인 버클리대 정은경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생은 “문자 통역과 실제 발화 사이에 시차가 있기 때문에 ‘이거’ ‘저거’와 같은 지시어 사용은 줄여야 한다”라며 교수들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은경 박사과정생은 “수업자료 업로드나 학생들의 요청사항에 대한 검토는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청각 장애인 학생을 위한 다양한 학내 지원 방안의 마련도 요구된다. 교내 순환 셔틀버스의 전광판이나 기숙사의 경광등은 한 번의 설치만으로 더 많은 학생들의 편의를 높일 수 있는 시설이기에 빠른 설치가 곧 해결책이다. 한편 기숙사에서 청각 장애인 학생의 거주 여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문제 또한 빠른 개선이 필요하다. 박원진 이사장은 “거주자가 요청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먼저 지원 가능한 시설에 대해 공지사항을 따로 전달하는 등의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라며 지원시설이 갖춰져 있음에도 제대로 제공 받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한편 문화시설에도 최소한의 지원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많다. 서울수어전문교육원 이미혜 강사는 “청각 장애인들은 이미 사회에서 많은 문화적 박탈을 겪고 있다”라며 “(전문가를) 상시 배치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청각 장애인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은 마련해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학생들 역시 전시 해설가의 설명 전문이 아니더라도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자료집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지원을 요청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청각 장애인을 하나의 언어적 소수 민족으로 인정하기 위해 이들을 ‘Deaf’라는 고유명사로 표기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는 그들의 제1언어가 음성언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차별 없이 받아들이려는 노력이다. 이미혜 강사는 “음성 언어로 소통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우리나라의 사회 분위기 때문에 청각 장애인들이 어쩔 수 없이 음성언어를 배우는 것 같다”라며 “이는 청각 장애인들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배려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배려와 동정은 구분돼야 한다. 박진희 속기사는 “청각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부탁한다고 동정의 시선으로 보지는 말아달라”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어려운 상황이기에 도와야한다는 시선보다는 청각 장애인들이 온전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요구된다.

삽화: 홍해인 기자 hsea9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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