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트! 대학원생 놀리지 말거라. 그들은 그냥 잘못된 선택을 한 것뿐이야”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에 나오는 대사다. 이러한 대사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매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대학원에 입학한다. 2019년에도 서울대 대학원에 2,674명이나 입학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선택은 모두 잘못된 것일까. 대학원은 과연 안 좋은 것일까, 그곳을 다니는 대학원생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증을 품고 『대학신문』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매일 해도 질리지 않는 게임처럼, 6년째 하는 연구가 재밌어요“

A씨는 물리·천문학부 석·박사통합과정 6년 차다. 학부 시절부터 10년째 서울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그는 전문연구요원으로 대학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중이다. 학부 졸업 이후 대학원을 다니며 6년째 오전 9시에 출근해 6시 이후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그는 여러 자연 과학 분야 중에도 특히 이론을 다루는 분야의 연구실에 다니고 있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학문의 특성상 퇴근 이후에도, 주말에도 연구는 계속된다. 같은 장소에서 수년간 반복되는 생활이 지겹지 않냐 묻는 기자의 질문에 “게임은 매일 해도 재밌잖아요. 저한테 연구는 그런거예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연구하는 학자가 되고 싶었다던 A씨에게 이번 학기는 연구실에서의 마지막 생활이다. 박사과정 졸업 이후 한 대기업에 취업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박사과정 중에 학자로서 한계를 느낀 A씨에게는 우울증이 찾아왔었다고 털어놨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포기하기까지 반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말한다. 이후 A씨는 나름의 즐거움을 찾았다. “요즘엔 내가 재밌는 연구만 해요”라며 논문과 연구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고 이야기했다.

 

“후회한 적 많죠, 엄마한테 돈 빌릴 때요“

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 4번째 학기에 접어든 B씨는 한창 논문 준비로 바쁘다. 프로젝트도 하나 맡고 있고, 수업도 하나 듣고 있어 더더욱 그렇다. 필수 이수학점을 다 채워 더 이상 강의를 듣지 않아도 되지만 등록금이 아깝다며 논문 쓰느라 바쁜 와중에도 수업을 꼭 챙겨 듣는 B씨다. 인문·사회계열 연구실은 독서실과 같은 분위기라고 말하는 B씨는 오전 9시부터 연구실에서 공부하고 밤 9시 즈음 귀가한다. 요즘 B씨는 해이해져서 종종 아침 10시에 공부하러 나가는 날도 있다고 말한다. B씨는 “그런 날은 조금 더 늦게까지 공부하고 귀가한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온종일 학교에 있는 만큼, B씨는 점심과 저녁 식사를 학교에서 해결한다. 마침 연구실 바로 근처에 학생 식당이 있는 것이 B씨에게는 소소한 행복이다.

B씨는 국가연구계획 및 각종 연구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해 설문조사 진행, 설문 결과 분석 또는 인터뷰 진행과 같은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번다. 학내에서 일하거나 과외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빠듯해 어머니에게 용돈을 빌릴 때가 있다. B씨가 대학원 진학을 후회하는 순간이다.

 

“아, 나는 불평불만 하지 말아야겠다“

C씨는 기계항공공학부 석·박사통합과정 2년 차다. 전문연구요원에 지원하기 위해 그는 요즘 열심히 공부하며 학점을 관리하는 중이다. C씨는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기계항공공학부로 진학했다. 그러나 입학할 때 같은 꿈을 꿨던 사람들은 대부분 꿈과는 관련 없는 분야에 취업했다. “고생하는 대학원생 선배님들이 연구실에서 뛰쳐나와 술을 먹으며 한탄하는 목소리도 참 많이 들었어요”라고 말하는 C씨는 여전히 입학 당시의 꿈을 놓지 않았다.

C씨는 다소 표현이 과격한 지도교수를 힘들어 하는 다른 연구실 대학원생들이 안타깝다. 그럴 때마다 C씨는 “그래도 우리 교수님은 좋은 분이시구나, 불평불만 하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다행히 C씨의 지도교수는 그를 생활적인 측면에서 크게 제약하지 않는다. 오히려 C씨에게 가장 큰 고민은 부족한 잔고와 입에 맞지 않는 학식 메뉴다. “앞으로 수년간 윗공대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데 주변 식당이 입에 안 맞아 걱정이에요”라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C씨다.

 

“고달프지만 모든 건 저의 선택이고, 책임져야죠“

D씨는 농생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갓 돌이 지난 아이의 엄마다. 그는 육아 휴학을 따로 하지 않고 학업을 계속 이어나가는 중이다. 육아 휴학 이후 학교로 돌아오지 않거나 그러지 못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분명 육아와 학업의 병행은 쉬운 일이 아니다. D씨는 “출산 일주일 전에도 실험 자료를 수집하러 산을 오르기도 했어요”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을 책임질 뿐이라며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미래를 위해 대학원을 다니는 것도, 학교에 다니며 아이를 낳은 것도 본인의 선택이기에 어떠한 어려움도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는 D씨다. 다행히 지도교수는 아이가 있는 D씨를 배려해 탄력적인 출퇴근을 허락 해준다. 다른 대학원생들은 매일 오전 9시 반에 출근해 일을 나눠서 하지만 D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출근해 새벽까지 일을 몰아서 하고 퇴근한다.

D씨 부부는 모두 대학원생이다. 이 부부는 연구실 교수가 주는 월급으로 생활하는데, 이는 베이비시터 급여를 주기에도 빠듯하다. D씨는 학내 어린이집에 0세 반이 개설되거나, 하루 네 시간 정도라도 아이를 잠깐씩 맡길 수 있는 시스템이 생기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면 부모 대학원생들이 마음 편히 수업이라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농생대 수유실은 건물 1층 여학생 휴게실 내부에 있어서 아이가 보채면 쉬고 있는 학생들에게 미안했다”라며 D씨는 수유실조차 마음 편히 사용할 수 없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나는 맘인스누(Mom in SNU)"

아이 둘이 있는 E씨는 디자인학부 박사과정 수료생이다. 수료 이후에는 박사 논문을 준비했으나 요즘은 잠시 쉬는 중이다. 디자인학부의 대학원 생활은 공대 대학원 생활과 비슷할 것이라고 E씨는 말한다. 석사 때는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 디자인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밤 10시 넘어 퇴근했다고 한다. 사실 E씨는 석사 시절 유산한 적이 있다. 임신 사실을 끝까지 주변에 비밀로 하다가 결국 과로로 인해 유산했다고 한다. 일하는 것이 좋았던 그는 임신 사실을 밝히면 프로젝트에서 배제되는 등 불이익을 받을까 무서웠다. E씨는 다시 임신했을 때는 바로 연구실 사람들에게 알렸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출산 이후에도 힘든 일은 이어졌다. 육아하며 공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E씨는 대학원총학생회(원총) 산하 기구인 ‘맘인스누(Mom in SNU)’의 회원이다. ‘맘인스누’는 공부하며 아이를 기르는 부모 학생 모임이다. 현재 회원은 약 300명 정도며 주 활동 인원은 100명 정도다. E씨는 이러한 모임에서 일상에서 생기는 육아와 학업에 관한 고민을 나누고 고민 해결을 위해 힘쓰고 있다.

 

다소 원론적인 경제 문제 해결책

물리·천문학부 대학원생 A씨는 강의연구지원장학금을 받고 대학원에 다녔기 때문에 다른 대학원생들보다 금전적으로 괜찮은 상황이었다. 학내에는 대학원생이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은 크게 소득분위와 성적을 고려해 주는 학비감면장학금과 교수 1인당 한명을 교수 재량으로 선정해 주는 강의연구지원장학금이 있다. 강의 연구지원장학금은 등록금과 매월 20~3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지원하는 제도다. 반면 기계항공공학부 C씨가 학교에서 받는 돈은 연구실 교수님이 달마다 주시는 80~100만 원이 전부다. 학교에서 온종일 생활을 해야 하다 보니 따로 돈을 벌 시간을 내기 힘들지만, 주로 주말을 활용해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과외를 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다. C씨는 360만 원 가량의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로 해결했다며 등록금이 조금이라도 줄었으면 좋겠다고 성토했다. 연구실 인건비와 과외로 버는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다가도 가끔 돈이 부족할 때 C씨는 사회복지학과 B씨처럼 이번 한 번만 도와달라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곤 한다.

2016년에 진행된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인권실태 및 교육연구환경 조사’에서 대학원생이 학위 과정을 관두는 주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66.3%의 대학원생이 ‘경제적 어려움’이라고 답했다. 안상훈 교수(사회복지학과)는 “다소 원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강의 연구지원장학금 수혜 학생의 수를 늘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대학원생의 수가 여전히 상당하기 때문이다.

 

교수에게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선물하는 대학원생이 더는 없으려면

C씨는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가는 학생이 담당 교수님과의 마지막 면담에서 『카네기 인간관계론』 책을 선물하며 “교수님 성격 좀 고치십시오” 하고 나간 사례를 들었다고 말한다. 강의 시간에 “이렇게까지 설명했는데 이해를 못 해? 나가 죽어” “내 설명이 이해가 안 되면 벽에 머리를 쾅 하고 박아”와 같은 식으로 막말을 서슴없이 하는 교수도 있는데, 본인 연구실 소속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할지 C씨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고 한다. 물론 C씨가 만나본 교수 중에는 학생들 의견을 존중해주는 좋은 교수들도 많다. 모든 학생에게 존댓말을 쓰는 교수도 있다고 한다.

원총 이우창 고등교육 전문위원(영어영문학과 박사과정 수료)은 “교수가 대학원생의 졸업 심사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갑을관계가 형성되고, 이러한 상황에서 인권 사각지대가 형성된다”라고 주장했다. 교수와의 관계는 취업할 때도, 학계에서도 이어지기 때문에 학생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2016년에 진행한 대학원생 인권실태 및 교육연구환경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대 대학원생들이 바라보는 인권상황에 관해, ‘매우 열악하다’ 또는 ‘열악한 편이다’라고 평가한 응답자가 34.6%로 ‘좋은 편이다’ 또는 ‘매우 좋다’고 평가한 응답자보다 11.5%p높았다. 문제 되는 인권침해 유형에 관해 사생활에의 과도한 간섭, 노동 또는 기타 대가의 직·간접적 요청이 있었다는 응답도 광범위하게 나타났고, 성희롱·성폭력의 유형마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언어적 성희롱과 지속적 괴롭힘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대학원생은 인권침해에 대해 직접 문제를 제기하지 못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대학원생이 의지할 곳은 인권침해에 대한 학교의 징계뿐이다. 앞의 조사에서 68.9%의 대학원생 응답자가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징계 및 제재에 대해 찬성할 정도다. 학교 차원에서 인권 규범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응답도 60.5%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안상훈 교수는 “교수와 대학원생들의 연구 교육과정에서 상호 간 잘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대학원생들의 권익이나 인권이 잘 지켜지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우창 위원은 “조사 후 3년이 지난 요즘에서야 그런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라며 “대학원생 인권 규범 제도화와 대학원생에 대한 교수자들의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곧 대학원을 떠날 A씨, 열심히 논문 준비 중인 B씨,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C씨,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뿐이라는 D씨, 딸 둘을 키우며 박사과정을 수료한 E씨를 만나봤지만, 이들 외에도 대학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각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몇 년째 먹는 학식에 대한 설렘이 사라졌다고 투덜대고, 결혼은 왜 했을까 토로하는 이들은 분명 각자의 어려움들이 많지만 본인 분야에 대한 열정만큼은 잃지 않고있다. 본인 연구 이야기만 나오면 진지해지는 모습이 빛나는 대학원생들. 그 열정과 꿈을 지켜주기 위해 더욱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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