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기생충〉에 대해 이동진 평론가는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라고 평했다. 대중은 친숙하지 않은 ‘명징’과 ‘직조’라는 단어에 의문을 제기하며 평론의 현학성을 지적했다. 일명 ‘명징사태’로 불렸던 이 상황은 영화 평론이 대중에게서 멀어지면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대학신문』은 영화 평론이 어떻게 변화해 왔으며 대중과 신매체가 만든 변화 속에서 평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다뤄 보고자 한다.

 

 

1.0 ★☆☆☆ 유구한 평론: 문화를 생산하며

창작과 평론은 미지의 영화 세계를 함께 넓혀간다. 감독의 손을 벗어난 영화는 평론을 통해 그 의미가 재구성된다. 영화감독은 평론가의 물음 속에서 자신의 작품을 총체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관객은 새로운 시각으로 영화를 볼 기회를 얻는다. 영화 평론이 다른 창작물과 동일하게 문화 ‘생산’의 영역에 속하는 이유다. 원용진 교수(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는 “작가는 작품에 깊은 뜻을 담고 평론은 그 뜻을 해석해주는 것이 작가와 평론의 존재론적 분담”이라며 작품과 평론의 유기적 관계를 설명했다.

영화 평론의 위상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영화 문화가 각광 받는 시기로 평가 받는 1990년대에는 해외 영화가 국내로 대거 들어왔다. 1987년 제도적 민주화 이후 대중의 관심은 사회적 아젠다를 반영한 문화 생활로 옮겨 갔다. 정민아 평론가는 “당시 대중은 문학을 과거의 산물처럼 생각했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만화는 학술적 분석을 하기엔 가벼운 대상으로 여겼다”라며 대중이 여러 문화 산물 중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이야기했다. 1990년대 후반 영화 평론가는 작품 간 차별점을 발견하는 역할을 수행했고 대중은 영화의 홍수 속에서 영화 감상을 위해 전문적인 평론을 찾아 나섰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영화 평론은 새로운 흐름을 맞이했다. 영화는 거대한 자본과 결합했으며 점차 이들은 예술의 영역에서 멀어졌다. 상업화된 영화를 낯설어했던 당시의 평론가는 자신의 평론을 대중의 것과 차별화하기에 급급했다. 이에 이들은 단순한 장면도 복잡한 언어로 해석하고 영화 속 이데올로기를 찾아내는데 몰두했다. 이처럼 평론이 고급화를 추구하면서 영화 평론의 생산자와 수용자는 뚜렷하게 구분되기 시작했다. 원용진 교수는 “영화 평론가는 수용자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었고 영화 생산자보다도 우위에 섰다”라며 “대중은 간혹 벌어지는 평론가 간 설전을 바라보는 구경꾼에 불과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평론은 문화 생산 영역으로 간주되며 창작에 가까운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일부 대중은 현학적인 평론 언어에 실망을 드러냈다. 원용진 교수는 “수사적이고 현학적인 평론의 언어가 평론의 전문성을 높였다기보다는 폐쇄성을 키웠다”라며 “고급화된 비평 언어가 자살의 언어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영화 평론계는 다시 한번 전환기를 맞고 있다. 2000년대 이전 평론가는 영화가 공식적으로 상영되기 전에 그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평을 쓸 수 있었다. 이들은 관객보다 우선적으로 평론을 위한 ‘공간’과 ‘시간’을 부여받으면서 독점적 지위를 누린 것이다. 이후 평론가의 평론은 생산과 유통 과정이 폐쇄적인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공개됐다. 그러나 오늘날 평론가와 일반 관객이 동시에 영화를 접할 수 있게 하는 ‘동시 상영’이 시행되고 ‘넷플릭스’나 ‘왓챠 플레이’ 등 다시 보기가 가능한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평론가의 시공간적 우월성은 사라졌다. 심영섭 평론가는 “지금은 정식으로 등단하지 않은 이들의 평론도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이들이 직접 시사회에 참여하기도 한다”라며 “과거 평론의 권위를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냈다면 현재는 둘 다 사라진 것”이라고 달라진 평론 문화를 설명했다. 과거 수용자로만 간주되던 대중은 고급화된 평론과 권위 있는 생산자에 의해 위축돼 있었다. 그러나 변화한 매체 환경 속에서 이들은 더는 수용자의 지위에 머물지 않게 됐다. 유지나 교수(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는 “최근 대중은 저널리즘 평론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평론에 비견할 만한 평론을 하고 있다”라고 평론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이처럼 한때 생산자의 지위를 누리기까지 했던 기성 평론은 주체적 대중의 등장과 매체의 발달로 그 권위를 잃어가고 있다.

2.0 ★★☆☆ 방황하는 평론: 대중에게서 멀어지며

영화 평론계의 층은 좁고 영화 평론을 위한 지면도 한정돼 있다. 평론을 할 수 있는 지면이 줄어드는 만큼 신문사나 잡지사는 새로운 평론가를 찾아 나서지 않는다. 정민아 평론가는 “우리나라의 미디어 환경은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만을 집중적으로 찾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평론 지면은 독점되기 쉽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마찬가지로 전문적으로 평론을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이를 대중적으로 해설해 주는 사람은 소수로 국한된다”라며 “이는 또다시 소수의 평론가만이 평론 지면을 맡게 되는 계기”라고 부연했다. 이들이 충분한 지면을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는 지면을 통한 평론이 소수의 예술 영화에 관한 평에 치중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을 만들어 낸다. 정민아 평론가는 “평론가는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대중의 무의식적 욕망을 집약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한정된 지면에선 이런 작품을 평할 수 없다”라며 “대중적으로 흥행한 영화에 대한 평이 부족한 것은 그들이 지면을 통해 말할 수 있는 여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면의 부족을 지적했다.

영화와 그 평론에 대한 연구 기반이 약하다는 것 역시 문제로 언급된다. 영화학이 국내에 정착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국내 대학에 연극영화과가 생긴 것은 약 60년 전 일이지만 체계적인 영화 연구가 이뤄진 것은 90년대 후반 즈음이다. 이에 국내에는 영화 연구서나 관련 저작이 부족할뿐더러 영화 잡지의 수도 적다. 예컨대 2000년대 전후로 등장한 월간 평론잡지 〈키노〉나 주간지 〈필름2.0〉, 〈무비위크〉는 당시 영화 담론을 앞다퉈 만들어 냈지만 결국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폐간됐다. 유지나 교수는 “초기의 영화학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배우나 스타를 상품화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라며 “1990년대 초에 들어와서야 영상을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1세대가 등장했다”라고 설명했다. 아직 깊이 있는 평론을 위한 영화 연구 기반이 마련되지 못한 것이다.

영화를 바라보는 대중의 태도가 변하면서 기성 평론이 외면받기도 했다. 과거에 직접 영화를 찾아 나서야 했던 사람들에게 영화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대중화가 이뤄진 지금은 누구나 영화를 일상의 오락거리로 즐긴다. 심영섭 평론가는 “영화가 대중화되기 전에는 사람들이 직접 프랑스 문화원에 찾아가야만 영화를 볼 수 있었다”라며 “이들에게 영화는 새로운 문화적 체험인 동시에 선망의 대상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영화가 대중화됨에 따라 영화사적인 의미에 집중하는 기성 평론은 재미와 감동을 기준으로 영화를 보는 대중의 평론과의 괴리가 생겼다. 대중은 줄거리 위주로 작품을 이해하는 것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허남웅 평론가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은 스트레스 해소와 같은 개인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영화를 관람한다”라며 “문화를 바라보는 세대 차로 인해 평론이 대중과 멀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영화의 이면에 존재하는 내용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실관계까지만 바라보고자 하는 관객 문화가 생긴 것 같다”라고 부연했다.

영화계가 속도전이 된 것도 대중이 기성 평론을 멀리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과거와 달리 영화 배급사는 관객의 한 줄 평이나 줄거리가 요약된 예고 영상으로 대중의 관심을 끈다. 긴 시간 동안 고심해서 쓰인 기성 평론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실제 영화 전문 사이트 ‘맥스무비’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선 영화 선택 시 관객에게는 관객 평가가 51.5%, 네티즌 평가가 37.8%, 영화 평론가 평가가 6.3%, 영화 기자 평가가 2.4%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관객과 네티즌이 영화에 대한 주된 담론을 만드는 것이다. 심영섭 평론가는 “현대 대중은 영화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보다 누군가가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즉각적으로 해결해주길 바란다”라며 “영화에 관한 생각을 지연하길 원치 않는 대중의 특성에 발맞춰 평론 문화가 변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별점은 속도가 중요해진 영화 산업 시장의 결과물이다. 영화는 네이버 평점이나 ‘로튼 토마토’ 지수 등의 별점으로 수치화되고 대중은 문자 언어보다 극명하게 영화에 대한 평을 보여주는 별점을 찾는다.

취향의 우열이 사라진 동시에 다양한 평론 매체가 등장한 것도 영화 평론 문화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 과거에는 전문적인 평론가가 작성한 평론만이 확고한 생산의 위치를 차지하곤 했다. 그러나 누구나 글을 쓰고 담론을 발표할 수 있는 창구가 등장하면서 자연스레 생산과 수용의 경계는 허물어졌다. 원용진 교수는 “지금은 누구도 개인의 취향을 건드리지 못하는 시대”라며 “평론의 전문성보다 평론가의 순발력이나 개성이 존중받는 시기가 찾아온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은 자신의 취향과 대비되는 기성 평론을 외면하고 자신의 취향을 주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유지나 교수는 “영화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이라며 “사람들은 자신의 담론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청각적 매체들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라고 굳건했던 기성 평론의 경계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3.0 ★★★☆ 확장되는 평론: 그 경계가 허물어지며

지면에 국한됐던 영화 평론의 무대는 점차 넓어지고 있다. 영화관에서 이뤄지는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평론가가 대중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 관객과의 대화는 국내에 소개되지 않던 고전 영화나 예술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 보관소인 시네마테크에서 시작됐다. 이후 여러 영화를 동시에 상영하는 멀티플렉스에서 이 문화를 이어받아 현재 관객과의 대화는 영화관에서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허남웅 평론가는 “지면을 통한 평론은 글로 하는 평론이지만 관객과의 대화는 말로 하는 평론에 가깝다”라며 달라진 영화 평론 문화를 소개했다. 이는 평론과 대중 사이의 거리를 줄이려는 시도기도 하다. 실제 관객과의 대화에 여러 번 참여해본 김태현 씨(22)는 “관객과의 대화 프로그램은 대중이 평론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평론이 대중에게 직접 찾아가는 문화”라며 “최근 영화계는 영화 관련 굿즈를 판매하거나 관객을 위해 찾아가는 평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수의 평론가만이 프로그램의 해설을 독점하는 상황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허남웅 평론가는 “소수의 평론가가 관객과의 대화 프로그램을 도맡고 있어 그들의 시각만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것이 평론의 정답처럼 느껴질 위험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영화 평론의 수용자로 여겨지던 대중은 블로그나 유튜브, 팟캐스트 등의 새로운 공간에서 평론의 주체로 등장했다. 이들은 다른 매체에 비해 비교적 접근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쌍방향의 소통을 선호하는 대중에게 친숙하게 느껴진다. 최근 등장한 유튜브 영화 채널은 단순히 내용을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해설해주고 독자에게 영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새로운 영화 평론 문화로 평가받는다. 영화 평론 채널 ‘지무비’ 운영자는 “대부분의 영화 채널은 관객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솔직한 평을 한다”라며 “사람들이 글로는 쉽게 연상하지 못했던 부분을 영상을 통해 이해하기도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그는 “유튜브 채널의 특성상 평론에 대한 공감이나 반박이 즉각적으로 일어난다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영상 평론은 글로 된 평론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평가받을 정도로 전망이 밝다. 기존의 영화 평론은 글에 의한 영상의 해석이었지만 새로운 영화 평론은 영상을 통한 영상의 해석이기 때문이다. 영상은 종합 영상 매체인 영화를 가장 정확히 분석할 수 있는 도구다. 심영섭 평론가는 “영상 매체인 영화를 글로 평하는 기성 평론가는 한계가 있었다”라며 “영상에 기반을 둔 평론가는 영화감독과 진검승부가 가능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Every Frame a Painting’을 비롯한 유튜브 채널은 영상을 통해 영화 속 카메라의 흐름이나 장면을 연출하는 방법, 영화 장면 속 공간 구성 등을 알려준다. 작품 속 미학적 표현이나 영화적 메커니즘은 글로는 복잡한 설명이 요구되지만 영상은 이를 가시화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대중이 쉽게 영화를 이해하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4.0 ★★★★ 나아가는 평론: 새로운 모습으로 역할을 수행하며

영화 평론은 단지 영화의 가치를 평하는 기능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작품의 영화사적 의미를 찾아내는 역할을 한다. 허남웅 평론가는 “유튜브 영화 채널과 같은 개인적 평론 창구의 등장은 영화에 대한 분석을 남과 공유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라며 “현대에도 평론의 필요성이 남아있음을 증명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지금껏 영화 평론은 영화 산업의 주류적 흐름에 대항하는 작품에도 가치를 부여하고 긴 영화사 속에서 작품 각각의 의미를 조명해 왔다. 정민아 평론가는 “지금 영화가 상품으로만 소비되고 있지만 평론에는 100년의 한국 영화 역사에서 영화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학술적으로 재정립시킬 수 있는 힘이 내재해 있다”라고 말했다. 일부 사람들은 평론의 몰락을 이야기하지만 평론의 존재 이유는 여전히 명확한 것이다.

하지만 평론의 생산자로 새롭게 등장한 대중은 아직 이들만의 영역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서로 구별되는 개성을 갖지 못한 상태다. 심영섭 평론가는 “좋은 평론은 똑같은 내용을 다루더라도 평론가만의 고유성이 있는 평론”이라며 “지금의 대중 평론은 기삿거리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이들 중 개성을 가진 평은 드물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화에 대해 빠르게 비평을 시작하는 문화가 생겨난 만큼 즉각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평론을 할 수 있다면 평론계가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대중 평론은 영화라는 대중 예술 매체를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못하고 단순히 소재로만 차용하려는 시도에 그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허남웅 평론가는 “지금의 대중 평론은 이야기를 이미지로 옮기는 영화의 메커니즘보다는 영화 줄거리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와 같이 대중 평론은 발전 가능성은 크지만 아직은 한계가 있다. 기성 평론이 대중 평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함께 평론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다. 

평론을 둘러싼 환경이 변화해 온 만큼 영화 평론가는 새로운 매체를 활용한 평론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이를 통해 기성 평론은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대중 평론과 더불어 깊이 있는 평론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아직 유튜브나 팟캐스트에 존재하는 평론 채널 중 영화의 메커니즘을 평하는 전문적인 평론 채널의 수는 적으며 ‘관객과의 대화’ 프로그램 또한 예술 영화에 한해서만 진행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누구나 영화에 대한 담론을 형성할 수 있다. 평론가가 평론을 위한 지면만을 기다리는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나 언제든 대중과의 소통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김혜리 평론가의 팟캐스트 채널 ‘김혜리의 필름클럽’, 이동진 평론가와 김중혁 소설가가 함께하는 유튜브 채널 ‘영화당’, 씨네 21의 유튜브 채널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 각각은 채널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사람들이 평소에 관심이 없던 영화에도 주목할 수 있도록 돕는 평론 고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들은 고립된 채 평론에 대한 담론을 일방적으로 만들어 내기보다 대중과 온·오프라인으로 소통한다. 평론가에게는 대중의 피드백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평론 문화가 변화한 만큼 영화 평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은 계속 필요하다. 특히 평론계가 성숙한 평론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영화감독과 평론가 간의 유의미한 교류가 있어야 한다. 심영섭 평론가는 “영화 평론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한국 영화계 내에서의 흥미로운 논쟁과 상이한 역할을 가진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라며 “예컨대 문제적 감독과 작가주의적으로 이 감독을 옹호하는 일부의 평론가, 이들과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가진 여성주의 평론가가 만난다면 생산적인 논쟁이 이뤄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영화 평론은 지금 전환점에 서 있다. 평론 자체에 대한 꾸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원용진 교수는 “평론은 그 존재 이유가 분명하지만 평론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없다”라며 “평론의 역할과 평론가의 자격은 무엇이며 평론의 경합이 벌어질 장소는 어디인지 등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영화 평론의 권위는 누가 만드는 것인지, 즉 평론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이제까지 평론이 현학적이라며 외면하는 대중과 평론가 사이의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기성 평론의 소외에 대한 책임을 묻기보다는 영화 평론 문화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원용진 교수는 “현학적인 평론이 등장했다 하더라도 일시적으로 이를 조롱하는 일을 넘어서는 생산적인 담론이 없다면 평론의 위축은 계속되고 창작에도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평론계의 미래를 진단했다. 앞으로 영화 평론이 새로운 평론 문화의 흐름을 따라 영화사의 발전을 도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삽화: 홍해인 기자 hsea97@snu.ac.kr

레이아웃: 황지연 기자 ellie051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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