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사랑받는 사람들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영화로 사랑받는 사람들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 장한이 기자
  • 승인 2019.11.10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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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한국 영화 100주년 기념 광화문 광장 행사 현장을 들여다보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영화 〈타짜〉 중에서)

이 짧은 대사만 읽고도 영화의 장면이 떠오르고 다음 대사가 입속에 맴돈다. 그만큼 영화는 한국인의 일상 속에 녹아있다.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개봉한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를 시작으로 성장한 한국 영화는 100년이 지난 현재 매년 총 관객 2억 명을 동원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에서는 한국인의 곁에서 100년을 함께한 한국 영화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달 26일(토)과 27일에 진행된 광화문 광장 행사와 〈의리적 구토〉를 재해석한 연극 〈의리적 구투〉를 소개한다.

 

광장으로 나온 영화

매년 10월 27일 영화의 날 행사를 준비해온 한국영화인총연합회와 한국영화감독협회,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여러 단체가 모여 한국 영화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추진위원회(추진위)를 지난해 10월 25일 발족했다. 올해 7월부터 추진위는 영상분과, 학술분과, 기획·홍보분과, 그리고 전시·공연·행사분과로 나뉘어 기념사업을 담당해왔다.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이자 추진위 전시·공연·행사분과 위원장을 맡은 양윤호 감독은 “우리 분과에서는 출사 영화제 행사를 지원하거나 전시를 담당하지만 이번에는 그중에서도 광화문 광장 행사에 가장 힘을 실었다”라고 설명했다. 

기존 영화의 날 행사가 실내에서 진행된 것과 달리 2019년 영화의 날 행사는 지난달 26일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이틀간 진행됐다. 그동안 한국 영화를 사랑해준 관객들에게 열려있는 행사를 만들기 위해서다. 양윤호 감독은 “날씨 변수가 우려됐음에도 광화문 광장에서 행사를 진행한 이유는 한국 영화 100주년 행사가 영화인들만의 기념식이 아닌 관객들과 함께 즐기는 행사가 되길 바랐기 때문”이라며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체험할 수 있는 영화 촬영 재현 프로그램과 한국 영화 100주년을 되새기는 전시, 음악회를 준비했다”라고 말했다. 

행사가 진행된 광화문 광장은 생생한 영화 촬영 현장 재현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사전 신청한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을 배경으로 영화 〈히말라야〉와 〈부산행〉 속 주인공이 돼 연기를 펼쳤다. 영화 촬영 현장 재현 프로그램을 총괄한 남진아 감독은 “일일 배우가 된 시민들은 광화문 지하도 입구를 배경으로 좀비와의 추격전을 벌이고 경복궁이 보이는 잔디밭을 배경으로 좀비가 된 후의 이야기를 연기했으며, 〈히말라야〉를 연기하는 시민들은 휘날리는 인공 눈을 맞으며 촬영하기도 했다”라며 평소와는 달랐던 광화문 광장의 모습을 묘사했다.

영화 촬영 현장 재현 프로그램은 시민들이 스태프와 소통하며 영화 촬영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실제 영화 촬영장을 연상시키는 많은 수의 스태프와 촬영하는 동안 진행된 연기 지도는 현장감을 더했다. 남진아 감독은 “이 프로그램에는 촬영팀 70여 명, 현장 요원 10여 명, 좀비 배우 20여 명 등의 스태프들이 참여했고 촬영할 때에는 각 컷의 배우 위치 안내와 더불어 연기 지도도 이뤄졌다”라고 말했다. 또한 촬영 시작 전 진행된 특수 분장과 촬영 이후의 CG 작업은 영상의 완성도를 높였다. 양윤호 감독은 “참여자들에게 영상 완성본을 제공했다”라며 “촬영 장비를 모두 준비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참여자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라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은 역사와 추억을 싣고

광화문 행사는 시민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한국 영화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한국 영화를 떠올렸을 때 빼놓을 수 없는 OST(Original Sound Track)에 관한 행사가 눈에 띄었다. 관객이 뽑은 한국 영화 최고의 OST가 행사 부스의 헤드셋을 통해 흘러나왔으며, 영화의 날 저녁에는 성악가와 가수가 부르는 OST를 감상할 수 있는 음악회가 진행됐다. 음악회를 찾은 관객 김영순 씨는 “이번 연도가 한국 영화 100주년인 것을 몰랐지만 광화문 행사를 통해 알게 됐다”라며 “음악회에서 추억의 OST를 들을 수 있어 뜻깊었다”라고 말했다. 

음악회는 한국 영화 ‘100년의 시간’ ‘100년의 사랑’ ‘100년의 사람’ ‘100년의 미래’라는 주제에 따라 진행됐다. 각 주제가 시작될 때마다 감독 100인이 준비하는 100초 영화 프로젝트 ‘100×100’에서 나온 단편영화 중 주제에 맞는 영화 한 편이 상영된 후 다양한 OST 공연이 이어졌다. 그중 ‘100년의 사랑’에서는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남녀의 사랑을 다루기 위해 가수 임재현 씨가 〈건축학개론〉 OST인 ‘기억의 습작’을 노래했고, 애국심을 표현했던 영화 〈아리랑〉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 국악인 이봉근 씨가 OST ‘아리랑’을 부르기도 했다.

한편 광화문 광장 행사에서는 한국 영화 100년의 역사를 되짚으며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를 재현하는 기념식이 진행되기도 했다. 기념식에서는 연극을 공연하다 무대에서 직접 보여주기 어려운 장면에 이르면 촬영한 영화를 상영하던 과거와 같은 형태의 연쇄극을 그대로 재현했다. 양윤호 감독은 “한국 영화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10분가량의 짧은 쇼케이스를 준비한 것”이라며 “소리가 없는 무성영화에 모든 배우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변사, 그리고 영상 앞에서 진행되는 연극을 결합해 시민들에게 선보였다”라고 설명했다.

 

최초의 영화, 연극으로 재해석되다

“단성사주 박승필이 오륙천원의 많은 돈을 들여서 우리 조선에서는 처음 되는 활동사진 연쇄극을 영사한다. 처음 박을 것은 의리적 구토라는 각본을 박을 것인데 장소는 명월관 지점, 청량리 홍릉 부근, 장충단, 한강철교 등이더라”(‘활동연쇄극 영사, 오는 7일부터’, 「매일신보」, 1919년 10월 8일 자)

이때까지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는 짧은 신문 기사에서만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영화 100주년을 맞아 영화 〈의리적 구토〉를 재해석한 연극 〈의리적 구투〉가 막을 올렸다. 연극을 연출한 전훈 감독은 “광화문 쇼케이스에서 선보인 10분 연쇄극은 영화가 상영될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해 재밌었지만 관객들이 영화 〈의리적 구토〉를 완성된 형태의 극으로도 접할 수 있기를 바랐다”라며 연극을 연출한 이유를 밝혔다.

원작 영화 〈의리적 구토〉의 줄거리와 같이, 연극은 명문 가문의 아들 송산과 가문의 재산을 노리는 송산의 계모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송산의 계모는 살인청부업자에게 돈을 쥐어주며 송산을 위협하라고 명령하는 동시에 미국 유학을 다녀온 변호사에게는 송산의 아버지가 죽을 시 모든 재산이 자신에게 오도록 문서 작업을 의뢰한다. 이를 알게 된 송산과 송산의 친구들은 계모와 맞서 싸우게 된다.

연극은 이러한 권선징악형 토대를 그대로 두면서도 전해져오는 기존 영화 줄거리 속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역사적인 요소를 가미해 긴장감을 더했다. 송산과 송산의 친구들이 독립운동 자금을 보태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것, 송산이 술을 마신 장소와 독립선언서를 읽은 장소를 동일하게 두는 것 등의 장치가 연극 곳곳에 숨어있다. 전훈 감독은 “대중들이 잘 모르는 3·1운동 이후의 에피소드를 연극에 더해 사실주의 희곡으로 재탄생시켰다”라고 설명했다.

관객들은 연극을 보며 권선징악에 통쾌해하면서도 일제에 나라를 뺏긴 당시의 설움을 느끼기도 했다. 관객 김용학 씨는 “인간의 이율배반적 태도, 진실된 사랑과 권선징악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상해 임시정부로 독립 자금을 전달하기 위한 긴박한 장면을 볼 때는 그 당시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게 됐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전훈 감독은 “신파극 형태의 기존 영화를 모티브로 하기 때문에 너무 가벼운 코미디로 다뤄질 수 있다는 점과 역사적 의미를 담는 과정에서 극이 자칫 무거워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를 지양하려 했다”라고 말했다.

 

“2012년에도 누군가 태어나고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할까요?” (100×100 프로젝트 영화 〈1902-2002〉 중에서)

추진위 공동위원장 장미희 배우는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을 사랑했고,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때로는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온 한국 영화가 또 다른 100년이 지나고도 이어지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영화인들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 영화계는 과거의 100년을 넘어 새로운 미래를 그리기 위해 다시 출발점에 섰다.

 

사진: 원가영 기자 irenber@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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