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동향 | 성적 장학금 폐지의 선례를 검토하다

성적 장학금이 가계 곤란 장학금으로 전환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학생들로부터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중 하나는 성적 장학금 없이 소득분위만을 고려하는 장학금 제도에서 부작용이 발생하리라는 우려였다. 이에 『대학신문』은 성적 장학금 폐지 소식에 이어 제기된 문제를 살피고, 이미 성적 장학금을 폐지한 대학의 선례를 톺아봤다.

성적 장학금 폐지 돌풍

대부분의 국내 대학은 학업 성취가 우수한 학생에게 지급하는 장학금(성적 기반)과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지원하는 장학금 제도(필요 기반)를 함께 실시하고 있다. 반면 프린스턴대, 하버드대와 같은 미국의 유명 대학은 필요 기반 장학금만을 지급하고 있는데, 최근 국내 대학가에서도 성적 기반 장학금을 축소하고 필요 기반 장학금을 늘려나가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고려대는 2016년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성적 장학금을 폐지하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하는 ‘정의 장학금’을 중심으로 장학금 제도를 손질했다. 고려대에 이어 서강대도 지난해 1학기부터 성적 장학금을 폐지하고 가계 형편이 곤란한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다산 장학금’에 해당 예산을 전액 배정했다. 중앙대, 한양대, 이화여대 등에서도 성적 장학금의 비중을 줄이고 가계 곤란 장학금을 확대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대학가 전반의 흐름은 부와는 무관하게 동등한 교육 기회를 보장하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서강대 학생지원처 장학 담당자는 “부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는 시점에서 사회적 소외계층이 다른 이와 동등한 위치에서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개선책”이라고 장학금 개편의 취지를 설명했다.

학생들의 불만은

하지만 장학금 제도의 변화를 마주한 학생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성적 장학금이 폐지되면 학생들의 학업 의욕이 반감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의 한 이용자는 “성적 장학금이 폐지된다는 소식에 공부할 이유도 같이 폐지됐다”라며 학업의 사기가 떨어질 것이라는 글을 게시했다. 성적 장학금을 받던 중 장학금 제도가 개편됐다는 송모 씨(고려대 바이오의공학부·15)는 “높은 학점에 대한 유인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각 대학이 이런 우려를 지켜만 본 것은 아니다. 고려대는 가계 곤란 장학금인 정의 장학금과 함께 ‘진리 장학금’을 운영한다. 고려대 학생지원부 이장분 과장은 “학생이 스스로 도전하거나 체험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기획해 제안하면 심의를 통해 지원하는 진리 장학금을 두고 있다”라며 “이를 통해 학습 의욕의 저하를 보완할 수 있고 실제로 참여 중인 학생들의 만족도도 높다”라고 말했다. 서강대는 학업을 장려할 다른 유인을 마련했다. 서강대 장학 담당자는 “성적 우수자에게 상장을 수여하고 졸업증명서에 기재하게 하는 등의 방식을 시행한다”라며 “현 장학금 제도하에서 학업에 대한 동기부여가 미흡한 점을 보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성적 장학금 없이는 장학금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을 구제할 수 없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국가장학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득분위 9분위 이상의 학생들이 교내 장학금을 받을 기회가 축소됐다는 것이다. ‘에브리타임’의 한 이용자는 “여유로운 환경에서 지낸다고 경제적 부담을 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며 “학점이라도 잘 받아서 등록금 걱정을 덜었는데 다음 학기부터는 불가능해졌다”라고 씁쓸한 감상을 적었다. 실제로 고려대와 서강대에서 관련한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서강대 김형은 총학생회장(전자공학과·13)은 “특수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 장학금을 제외하면 9, 10분위의 학생들이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은 없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소득분위가 9분위라는 백모 씨(서강대 경제학과·15)는 “8분위 학생과 9분위 학생의 사정이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라며 “소득분위가 높아도 등록금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금액”이라고 말했다. 고려대는 “소득분위가 높거나 소득분위로는 확인이 힘든 사유가 있는 학생들도 정의 장학금을 신청해 수령할 수 있다”라는 이장분 과장의 말처럼 보완책을 두고 있다. 하지만 「고대신문」에 따르면 앞선 경우의 신청자는 신청서에 향후 학업계획과 가정경제 상황 등을 상세하게 작성해야 해 학생이 신청의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기준부터 잘못됐다

가계 곤란 장학금의 기준이 되는 한국장학재단의 소득분위 산정 과정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는 문제는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국장학재단은 소득분위 산정에서 부모의 소득, 재산, 부채의 정도, 차량의 유무 등을 고려하는데, 소득분위와 실제 경제적 사정 간의 괴리가 커 엉뚱한 학생이 장학 혜택을 받는 사례가 많다. 서강대 학생 백모 씨는 “주변에 잘 사는 친구들이 4, 5분위로 판정되는 것을 보면 허탈하다”라고 털어놨다. 이에 한국장학재단 관계자는 “국세청 자료를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자영업자 소득 파악엔 한계가 있다”라며 개선이 어려운 이유를 전했다. 대학 측도 현재의 기준이 최선이라 설명했다. 이장분 과장은 “한국장학재단이 내놓은 소득분위를 기준으로 사용하는데 일부 불합리한 부분도 없지 않다”라면서도 “그나마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학생들은 성적 장학금이 폐지될 경우 부정확한 소득분위만으로 장학금이 수여된다는 점에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고려대 학생 송모 씨는 “애매한 소득분위 기준과는 무관하게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장학금이 성적 장학금”이라며 “소득분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성적 장학금을 폐지한 것은 너무 성급한 결정이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계 곤란 장학금의 확대와 성적 장학금의 폐지는 다른 맥락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모 씨(서강대 영문학과·17)는 필요 기반 장학금의 확대 취지에 동감한다면서도 “성적 장학금의 폐지는 다양성 측면에서 아쉽다”라며 “가계 곤란 장학금의 확대를 위해 성적 장학금을 꼭 폐지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성적 장학금의 예산을 가계 곤란 장학금으로 전환할 것이 아니라 장학금의 규모 자체를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

성적 기반 장학금을 폐지하고 필요 기반 장학금을 확대하는 것이 대학가의 전반적인 흐름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동시에 성적 장학금 폐지에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는 것 역시 사실이다. 서강대 김형은 총학생회장은 “폐지 이후에도 학생들 사이에서 의견이 극명히 나뉜 것으로 안다”라며 “성적 장학금을 다시 만들어 달라는 의견도 계속해서 나온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본부는 성적 장학금을 폐지한 선례에서 발견된 문제를 피하고 학생의 반발을 예방하기 위해, 학내 구성원의 우려에 귀 기울이고 소통함으로써 정책의 부작용을 줄일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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