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부 최서영 기자
취재부 최서영 기자

지난 총학생회(총학)의 공약을 분석하면 학생 사회의 흐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다가올 일은 생각지도 않고 야심차게 준비한 기획이었다. 그러나 패기만만한 나의 열정은 얼마 가지 않아 위기를 맞이했다.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날들을 서술하는 것은 막막했고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나마 당시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리고 각 선본의 정책자료집과 『대학신문』을 뒤져 그날을 기록할 수 있었다.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전 학생처장, 졸업과 동시에 마음도 떠나버린 듯 연락이 닿지 않는 전 총학생회장단도 수두룩했다. 설상가상으로 총학 자치도서관의 자료도 그 자리에서만 열람이 가능해서, 자치도서관에 상주하며 정책자료집을 샅샅이 살펴봐야 했다. 선반 빼곡히 들어선 자료를 보며 한숨만 푹푹 내쉰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학생 사회의 중심 의제를 알 수 있었다는 점, 그것이 곧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시사한다는 점이 이 기획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였다.

분량이 넘쳐 신문에 싣지 못하는 에피소드도 많았다. 2001년에는 본부가 음대 대학원 신입생 기성회비를 94%나 인상해 전체 등록금이 약 130만 원이나 인상됐는데, 이로 인해 음대 대학원 신입생 46명 중 45명이 등록을 거부했다. 결국 본부가 신입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며 사건은 일단락됐다. 선본이 투표함에 도청기를 넣어 투표함 밀봉 여부를 감시하거나 총학 간부가 학생식당 식권을 위조하는 등 온갖 사건이 벌어졌지만 여백이 모자라 모두 싣지 못해 아쉽다.

더불어 취재수첩 지면을 빌려 취재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표한다. 수없이 드나들었는데도 늘 반갑게 맞아주신 자치도서관 위원분들, 귀한 시간 내어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 함께 취재하느라 정말 고생한 이현지 기자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지난 20년간 모든 총학 선본의 정책을 살펴보며 ‘그래도 우리 많이 발전했구나’ 싶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단순히 여성 인권 향상에 힘쓰겠다던 선본들이 점점 구체적인 공약을 들고 나왔고, 이후 장애인과 성소수자 인권, 그 밖까지 논의의 범위가 확대됐다. 학내 의사결정 구조에 학생을 참여시켜달라는 요구도 꾸준히 있었다. 덕분에 학생들은 직접 강의 평가를 할 수 있게 됐고 총장 선출에도 참여하게 됐다. 학생회가 이룬 소기의 성과일 테다.

“그럴 수도 있지”. 제61대 총학 「내일」의 여론몰이 정황이 포착된 후 친구의 반응이다. 정말 ‘그럴 수도’ 있나? 소식을 듣자마자 친구가 툭 내뱉은 그 말에 나는 괜히 무안해졌다. 그는 뒤에 “애초에 학생회에 관심이 없어서 신경 쓰지 않았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20년간 총학들은 청렴한, 소통하는 학생회를 표방했지만 그것들이 실현되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학생회는 그동안 각종 사건·사고와 소통의 부재로 학생들 사이에서 신뢰를 잃었으며 이를 회복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앞으로는 상식에 어긋나는 일로 학생회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신뢰가 무너지지 않길 바란다. 시대의 흐름에 맞고 학생들의 요구를 잘 반영한 공약을 내거는, 또 이를 부지런히 실천하는 총학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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