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시대의 정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시대의 정부
  • 대학신문
  • 승인 2019.11.10 13: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정대학원 엄석진 교수
행정대학원 엄석진 교수

지난달 28일 문재인 대통령은 IT 기업의 행사에 참석해 인공지능(AI) 국가전략 수립과 함께, ‘AI 정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AI 관련 규제 완화, 산업 육성, 교육 지원과 함께 정부부터 우선적으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많은 연구자가 AI 및 빅데이터의 활용에 따른 행정서비스 개선, 정책 결정 능력 향상, 행정의 민주성과 효율성 향상 등을 전망하고 있지만, 부정적 전망이나 암울한 시나리오도 많다. 

세계경제포럼이 2015년에 제시한 ‘미래정부 시나리오’ 중 하나가 ‘e-1984’ 시나리오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미래에는 경제적, 지정학적 위협에 더해 사이버 위협이 상존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정치 권력은 중앙정부로 집권화되고 시민들은 공공 안전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한다. 정부는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시민들의 행태나 가치, 이해관계와 관련된 정보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수집하고 활용하며, 이를 활용해 그 권력을 다시 강화한다.

실제로 이와 같은 시나리오가 몇몇 국가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보도가 잇따르기도 했다. 예를 들면, 지난해 2월 22일 워싱턴포스트 등의 매체는 중국이 고해상도 CCTV와 안면인식기술, 빅데이터 분석 기술 등을 활용해 이념과 정보에 대한 통제, 언론매체에 대한 검열 등 시민의 자유를 통제하는 ‘디지털 전체주의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최근 홍콩 민주화 시위대는 당국의 정보수집 및 검열 등을 우려해 홍콩 시가지에 설치된 최첨단 카메라와 센서가 장착된 ‘스마트 가로등’을 철거하기도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한국일보」 2019년 9월 12일 자) 

민주주의의 위기를 전망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올해 EU에서 발간한 ‘정부의 미래 2030+’ 보고서는 여러 시나리오 중 거대 다국적 IT 기업들이 시민들의 생활과 국가기능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다국적 IT 기업들이 제공하는 플랫폼을 통해 정부의 기능과 서비스가 제공되며 AI가 빅데이터에 기반해 정책 의사결정을 내리고 공공서비스를 자동화해 비용을 최소화한다. 그러나 왜 그런 결정이 내려졌는지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결정 과정은 투명하지 않으며, 시민들의 정치참여는 위축되는 수준을 넘어서서 정치적 무력감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른 시각에서 민주주의 쇠퇴와 사회적 불평등 확대를 전망하는 연구들도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정보기술의 혜택을 누리기는 하겠지만, 경제적 능력에 따라 향유하는 정보기술의 수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소셜미디어 등과 같은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아주 낮은 비용으로 미디어를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정보기술이 개인의 선호를 표출하는 통로와 수단이 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선호에만 맞는 정보를 편식하기도 하고, 자신의 선호와 비슷한 사람들과만 소통하게 되는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나아가 소셜미디어를 통한 허위정보의 확산과 낮은 정치적 동원비용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정치적 불안정과 즉흥적 정책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AI 정부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는 이유는 정보기술을 활용하는 주체와 기술이 구현되는 맥락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AI와 빅데이터라는 새롭고 강력한 도구가 ‘잘못된 손’(the wrong hands)에 쥐어졌을 경우 나타날 결과는 기존 도구들의 활용 결과보다 더욱 심각할 수 있다. 나아가 이 새롭고 강력한 도구를 가진 손은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게 만드는 손’이기 때문에 더 두려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AI 정부 구현을 위해 더 사려 깊고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미래 AI 정부를 향해 본격적인 걸음을 내딛는 지금, 우리는 서로 연관된 과제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좋은 기술’을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는 ‘좋은 기술’을 다루는 ‘좋은 손’을 만드는 것이다. AI와 빅데이터에 대한 기술적 지식, 정보기술의 전면적 활용에 필요한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자세, AI 기반 사회와 정부에 대한 사회과학적 이해 등을 겸비한 사람들을 키워내야만 한다. 좋은 정보기술의 개발 및 활용, AI와 빅데이터 시대에 부합하는 제도와 거버넌스에 대한 연구와 대안 제시, 이 기술 활용이 가져올 윤리적 딜레마와 현재 한국 정부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에 대한 통찰을 가진 사람들을 길러내는 일이 서로 결합돼 이뤄져야 할 것이다. AI와 빅데이터 시대의 서울대의 사명은 여기 있다고 믿는다. 담대한 개혁을 통해, 서울대 내의 학문 분야 간 협력과 연결을 통해 이뤄야 할 사명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