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 김종일 교무부학장
의학과 김종일 교무부학장

얼마 전 영국에서 10만 명의 게놈 분석을 완료하고, 2백만 파운드의 예산을 들여 50만 명의 게놈 분석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1인당 비용을 계산해보면 60만 원이 채 안 되는 금액이다. 휴대전화 하나보다 적은 금액으로 한 사람의 게놈 서열을 다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게놈 서열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지, 이를 해석해서 질병이나 재능 따위를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 인간의 특성 중 후천적으로 결정되는 것도 많고, 선천적인 요인 중에서도 게놈 서열과의 연관성이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하지만 이런 한계는 앞으로 연구를 통해 점차 해소할 수 있을 것이고, 머지않은 미래에 게놈 서열을 분석해서 어떤 질병에 걸릴 선천적 확률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얼마나 높은지, 그리고 특정 질병에 걸렸을 때 어떤 치료법을 써야 가장 좋은 효과를 볼 것인지, 특정 약물을 썼을 때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지금보다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염기 서열 분석 기술은 그 이외에도 다양한 응용 가능성을 열어 준다. 환자의 암 조직 게놈을 분석해서 어디가 어떻게 돌연변이된 것인지 알아내고 적절한 항암제를 추천하는 것은 이미 일부 병원에서 시행되고 있다. 또한 세포의 DNA 조각이 흘러나와 핏속에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혈액 검사만으로 우리 몸에 암세포가 숨어있는지 여부를 알아내고 조기 발견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 몸속 미생물들이 각종 질병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미생물 염기 서열 분석을 통해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바로잡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면, 스마트 변기가 생활패턴에 경고 신호를 보내거나 미생물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는 프로바이오틱스 약물을 자동 주문하는 세상이 그리 멀지 않을 것 같다.

이처럼 게놈 서열 분석이 미래의 핵심 기술로 등장할 때, 우리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게놈 서열의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의 게놈 서열을 실제 건강 관련 데이터와 비교해 보는 것이다. 예컨대 당뇨병 환자, 특정 약물을 썼을 때 효과가 뛰어났거나 반대로 부작용이 심했던 사람들, 똑같이 먹어도 살이 더 잘 찌는 사람들의 게놈 서열에 어떤 특징이 존재하는지를 찾아낼 수 있다면, 이로부터 예측 알고리듬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도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이 중요하겠지만, 일단 데이터를 모으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게놈 서열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의 질병, 약물 복용 등 의료 기록과 음식, 운동 등 각종 생활 환경에 대한 데이터가 모두 필요하다. 이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데이터를 제공해야만 가능한 일이고, 이를 위해서 참여자를 어떻게 모으고,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보호하면서도 공익을 위해 공개하고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기술적, 윤리적 고민과 솔루션이 필수적이다. 

2025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1억에서 20억 명가량의 게놈이 분석되리라 예측된 바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 데이터가 충분히 포함될 수 있다면, 한국인의 유전적 특성에 더 잘 맞는 질병 및 약물 예측 알고리듬이 나올 수 있을 것이고, 데이터의 수집, 분석, 활용에 대한 원천 기술 축적을 통해 미래 바이오 의료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와 정보통신 분야에서 세계 수준의 인력과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한국이 꿈꿔 볼 만한 미래가 아닐까? 우리 대학 구성원들의 관심과 고민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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