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훈 사회부장
김용훈 사회부장

평소 보지도 않던 ‘에브리타임’을 지난주는 빼놓지 않고 읽었다. 차기 총학생회 선본 혹은 현 총학생회와 관련한 보도가 있은 뒤였다. 다른 때보다 사안이 무거워 데스크는 보도를 결정하는 데 품을 많이 들였다. 자연스레 학생들의 반응에 눈이 갔고 환한 모니터를 오래도록 쳐다봐야만 했다. 쉽사리 판단이 서지 않는 일이었다. 다만 확신해 마지않을 오직 하나가 있다. 우리는 「대학내일」이 아니라 『대학신문』이다. 2000호를 목전에 둔 마당에, 틀린 이름으로 ‘까이는’ 상황이 서글프고 분해서 꼭 알리고 싶었다.

이를 제하고는 그 무엇도 단언하지 못한다.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보도를 결정한 데스크 중 한 명으로서 커뮤니티의 숱한 게시글과 댓글에 ‘사견’으로 답하고 싶었다.

논란의 그 톡방은 사적이지 않을 것이다. 해당 톡방은 친구들이 친목하기 위해 모여 만든 곳이 아니었다. 62대 총학생회 선거를 준비하기 위한 예비 선본이었다. 당연히 그 안에서 오간 이야기는 선본 업무에 준했다. 안건을 준비하고 공약을 논했다고 전해진다. 문제의 발언들 역시 그런 맥락에서 발화됐다. 일례로 A교수 사건에 대한 1인 시위는, 발화자인 이건휘 당시 학생복지국장의 말마따나 “선본 입장에서 대응해야 할 의제”로 다뤄졌다. 대화는 대응을 논하기 위한 “캐치업”의 목적으로 시작됐고, 해당 이슈가 선거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다는 판단과 함께 “일단 지켜보고 나중에 생각하자”라는 방침으로 마무리됐다. (인터넷 『대학신문』 11월 7일 자) 시작부터 끝까지 ‘선거’와 ‘대응’이라는 맥락을 빼놓고는 이해할 수 없다. 

사적인 대화였다 해도 문제일 것이다. 과거 한 고위공직자가 “국민은 개돼지”라 말했다. 기자들과 동석한 사적인 식사 자리였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그를 파면 징계했고, 비록 그가 제기한 파면 처분 취소 소송에서 파면이 과도하다는 판결이 내려졌지만 재판부는 “국민의 봉사자인 공무원 지위에서 해서는 안 될 발언을 했다”라고 인정했다. 당연히 모욕된 국민 역시 노했다. 결국 자리가 공적인지 사적인지, 그 속성에 대한 판단만으로는 공인의 비위 여부와 보도의 적절성을 논할 수 없다. 자리의 속성과 아울러 언행의 의미와 영향, 중대성을 함께 견줘볼 수밖에 없다. 데스크 역시 사생활의 중요성을 인지한 채 톡방의 성격과 발언의 심각성을 판단하려 수차례 논의했다. 그 결과가 지난 보도다. 

『대학신문』의 기사가 독자에게 온전히 닿지 못했을 수는 있다. 기사는 해당 톡방의 맥락과 발화자 본인이 밝힌 의미를 충분히 담으려 했으나, 의도한 대로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았을 수도 혹은 바쁜 와중에 독자가 기사를 흘려봤을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톡방이 사적이라 오해했다면, 이해한다. 하지만 그 뿐으로는 안 된다. 사생활 운운하며 보도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톡방이 사적이라는 판가름과 함께 비위에 대한 평가도 병행해야 했을 것이다. 그 어떤 사적인 자리라 해도 공인 사이에 천인공노할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대화가 오갔다면, 사회는 분노한다. 보도를 비판한 이들은 아마 톡방의 대화가 그토록 큰 문제는 아니라 생각했을 테다. 사생활과 비위의 중대함을 저울질했을 때 전자에 마음이 기운 것이다. 

그러니 당부한다. 보도를 비판하고 싶다면 프라이버시를 거듭 강조하는 댓글 이상의 무언가를 가져오길 바란다. 짧고 단순한 ‘사생활’ 프레임 때문에 마치 『대학신문』이 개인의 사적 영역을 존중하지 않은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당신이 지적한 여러 요소를 『대학신문』 역시 오랫동안 고민해 결정을 내렸다고, 오히려 당신의 주장 이면엔 오독과 도덕 평가가 숨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지적이 억울하다면 오라. 『대학신문』의 의견면은 항상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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