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까지 ‘운동권’을 중심으로 국내 정치의 민주화나 노동 문제 등 학교 밖 현안에 주력했던 총학생회(총학)는 1999년 11월 변화의 기로에 선다. 2000년 서울대를 이끌 총학으로 ‘비운동권’ 선본이 당선된 것이다. 비운동권 총학이 탄생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학생 복지는 총학의 주요 공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의제가 됐다. 지금까지 총학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약속했으며 그들의 활동은 서울대에 어떤 발자취를 남겼는가? 『대학신문』에서 총학이 걸어온 20년을 짚어 봤다.


 

 

 

#1 비운동권 총학

2000년대 이전 총학 선거운동본부(선본)의 정책자료집(공약집)은 공약집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사회나 정권 비평에 가깝다. ‘공약’을 내걸기보다는 학생들에게 투쟁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박성현 전 학생처장(1997.03.~1998.12. 재임)(통계학과)은 “1997년, 1998년은 사회가 점점 민주화되며 이전까지 성행하던 학생 운동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던 시기였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2000년 제43대 총학 「광란의 10월」은 서울대 최초로 ‘비운동권’을 표방하며 당선됐다. 「광란의 10월」은 정치적 견해보다는 셔틀버스나 성적 처리 규정 등 학생들의 피부에 와닿는 문제를 공략해 당선됐으며, 이는 선본들이 학내를 겨냥한 공약을 내놓는 시발점이 됐다. 한편 2002년 제45대 총학 선거에서는 대다수 선본이 복지 공약에만 치중해 정치색을 숨긴다 비판 받는 등 선본들의 정체성 ‘밀고 당기기’가 벌어지기도 했다.

#2 소통

사회 문제보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경향은 자연스레 운동권 학생회가 실제 학생 사회와 괴리돼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소통하는 학생회’를 주창하는 선본들이 속속 등장했다. 제43대 「IMPULSE 2000」 선본은 각 자치단위의 목소리를 듣고, 위원회를 꾸려 형성된 의제를 공론화하는 제도인 ‘의제 워크샵’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자치단위 밖 일반 학생들도 정책 설정에 참여시키기 위해 전체 학생 정책투표제 도입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당시 부후보 김경아 씨(식품영양학과·04·졸)는 총학 선거 후보자 간담회에서 “학생회 정책을 투명하게 공개해 정책투표제에 부치는 식으로 보완하겠다”라고 밝혔다.

#3 등록금

높은 등록금은 2000년대 초반 학생들의 가장 큰 불만이었다. 2002년에는 본부의 상의 없는 등록금 인상 등에 항의하며 제45대 총학 「에갈리아」가 총장실을 점거하기도 했다. 등록금 개선 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는데, 제46대 「원코리아」 선본은 등록금 인상분을 학생들에게 반환할 것을 본부에게 요구하겠다고 약속했다. 제50대 「+U」 선본 또한 등록금 상한제 입법을 촉구하는 등 등록금 인상 반대 운동은 꾸준히 이어졌다.

등록금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이 유독 싸늘했던 이유는 수업료 외에도 추가로 납부해야 했던 기성회비 때문이었다. 기성회비는 교육 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학부모로부터 걷던 기금에서 출발했지만, 이후에는 부족한 학교 예산을 메꾸는 데 쓰였다. 기성회비가 점점 인상되며 학생들의 원성도 커졌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기성회비는 ‘제2의 수업료’로 불릴 정도였다. 실제로 2000년 인문계열 기준 81만 원이던 기성회비는 2006년 158만 원으로 증가했고, 그 여파로 120만 원이던 전체 등록금 또한 2005년 207만 원으로 5년 새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대학신문』 2006년 10월 16일 자) 이미나 전 학생처장(2004.08.~2006.07. 재임)(사회교육과)는 “당시 수업료가 사립대에 비해 훨씬 낮았기 때문에 학교가 수업료만으로는 교육의 질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라며 “세금만으로는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기 힘들어 기성회비가 활용됐다”라고 말했다. 서울대가 2011년에 법인화된 후 기성회비는 폐지됐지만, 대신 수업료가 그만큼 인상됐다.

#4 여성 인권

인권 문제도 당시 총학의 과제로 대두됐다. 특히 여성 인권은 대다수 선본 공약집의 큰 줄기를 이뤘다. 제43대 「꼬뮤나르드」와 「Democracia Desde Abajo」 선본은 여성주의 학생회로 나아갈 것을 약속했다. 제45대 「코페르니쿠스」 선본은 여성 교수 할당제 도입을 주장했으며, 같은 해 다른 선본들 또한 공통으로 학내 반(反)성폭력에 앞장서겠다는 공약을 냈다. 김기석 전 학생처장(2000. 12.~2002.07 재임)은 “각종 학내 성폭력 사건이 논란이 되자 이에 반발하며 반성폭력 풍토가 확산됐다”라고 말했다. 당시 선본들은 여성 인권 문제를 학내에 가시화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대책이 추상적이고 여학생에게 논문 지도교수 우선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과 같이 겉핥기식에 그쳤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당시 선본들이 사회 문제를 아예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학생 사회 운동에 집중한 선본이 선거마다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특히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형성된 통일 분위기는 총학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제43대 「IMPULSE 2000」 선본과 제44대 「민중과 함께 서울대의 맥박은 뛴다」 선본은 서울대·김일성종합대 연합 축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학생 사회 관련 공약 없이 통일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공약집을 채운 선본도 있었는데, 제44대 「6·15 세대」 선본이 그 주인공이었다.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사회 참여에 대한 선본들의 열의를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제43대 「IMPURSE 2000」 선본이 서울대김일성종합대 연합 축제를 공약으로 내건 모습이다.
제43대 「IMPURSE 2000」 선본이 서울대김일성종합대 연합 축제를 공약으로 내건 모습이다.

 

 

 

 

#1 선본 스펙트럼 다양화

2000년대 중반에 들어 선본들의 성격은 더욱 다양해졌다. 여전히 사회 비판에 주력하는 운동권 선본이 있는가 하면, 생활 밀착형 공약에 몰두한 비운동권 선본이나 단순히 ‘운동권’이나 ‘비운동권’으로 정의되지 않는 선본들도 출사표를 던졌다. 제48대 총학 「Q」나 제50대 총학 「Spotlight」, 제52대 「세잎클로버」 선본 등은 학생 복지와 사회 문제를 아우르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비운동권과 운동권 학생회 모두를 비판하며 출마한 선본도 있었다. 제49대 총학 「SUPRISE」는 운동권 총학은 정치만 일삼고, 비운동권 총학은 복지 정책을 이끌 추진력이 모자라 실패만 반복한다며 강력히 꼬집으며 당선됐다. 그러나 「SUPRISE」는 총학생회장이 약력을 위조한 것이 밝혀지며 탄핵당함과 동시에 학생회를 향한 학생 사회의 불신을 키우는 결과만 낳았다.

#2 예산 집행 투명화

한편 등록금 인상의 해결책으로 효율적인 예산 운용이 지목되며 예산 집행 투명화가 학생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제53대 「리본」 선본은 학생, 교수, 직원이 함께하는 재정평가위원회를 설치해 재정 운영 투명성을 극대화할 것을 약속했다. 이들은 2008년 서울대 기성회비 이월금이 180억 원에 달한 것을 지적하며 본부가 예산을 불합리하게 편성했을 뿐 아니라 합당한 근거 없이 기성회비를 인상해왔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Yes, We Can」 선본 또한 발전기금 적자 및 200만 원에 육박하는 기성회비를 문제 삼았다. 이들은 ‘등록금 파놉티콘’을 구성해 기성회비와 본부의 예산 내역을 감시할 것을 제안했다. 관련 문제의식은 계속돼 2013년에는 제55대 총학 「서포터즈」가 대학회계투명화TF를 꾸려 본부를 상대로 제기한 기성회 회계정보 공개 이행 행정심판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대학신문』 2013년 5월 13일 자)

#3 서울대 법인화

2000년대 중반 학내를 가장 뜨겁게 달군 의제는 단연 법인화였다. 본부는 법인화가 대학의 자율성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임을 역설했지만, 선본 대다수가 학생과 상의 없이 법인화를 추진한 본부를 규탄하는 입장을 드러냈다. 당시 학생들은 서울대가 법인이 되면 국가 보조금 감소로 등록금이 폭등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법인화에 반대했는데, 제53대 1~3차 총학 선거에 출마한 총 11개 선본 중 8개가 법인화 반대 공약을 제시할 정도였다. 제54대 총학 「레디, 액션」은 법인화 중단을 위한 전체학생총회 소집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다. 하지만 「레디, 액션」은 법인화 반대 기조를 끝까지 이어나가지 못했다. 정족수 미달로 총회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2010년 12월 법인화가 확정된 이후에도 반대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2011년 5월 제53대 총학 「Action Again」은 비상 전체학생총회를 개최하고 투표 결과에 따라 28일간 행정관을 점거했다. (『대학신문』 2011년 11월 28일 자) 이들은 전체학생총회를 공약으로 내걸지는 않았지만, 학내 법인화 반대 여론을 수렴해 행동했다. 제56대 「내일은 있다」 선본, 「100℃」 선본과 제59대 「더:하다」 선본 또한 공약집에 법인화 비판을 싣는 등 법인화를 향한 차가운 눈초리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4 인권

여성 인권 향상 및 반성폭력 운동은 2000년대 중반에도 계속됐다. 제48대 「학교로, 교감 네트워크」 선본은 강의평가에 강의실 성폭력 관련 항목을 추가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제50대 총학 「Spotlight」와 제53대 「Yes, We Can」 선본은 모두 성적 대상화에서 자유로운 여학생 전용 체육 수업을 제안했다. 2005년에는 처음으로 여성 총학생회장(제48대 총학 「Q」)이 선출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미나 전 학생처장은 “단과대 학생회장을 넘어 여성 총학생회장이 당선된 것은 성평등 의식이 성숙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편 장애 학생 인권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제49대 「PLAY」 선본은 학생회관 엘리베이터 설치를 약속했는데, 장애 학생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함이었다. 제48대 총학 「Q」는 학생회 집행부 중 1인 이상을 장애 학생 인권 책임자로 배치하겠다고 했지만, 공약의 구체성은 미흡한 수준에 머물렀다.

 

선본들의 ‘이색 공약’ 또한 눈에 띈다. 제49대 총학 「SUPRISE」는 ‘지키지 못할 공약은 제시하지 않겠다’는 단일 공약으로 당선됐다. 제51대 총학 「실천가능」은 구두를 신고 관악산을 오르는 여학생들을 위해 여학생 휴게실에 ‘발 마사지기’를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해지며 이를 타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제48대 「MORE THAN」 선본은 사회 진출 박람회와 취업 아카데미를 열어 학생들의 취업 준비를 도울 것을 약속했다. 제53대 2차 선거에서는 「민중의 벗」 선본이 ‘윗공대에서도 바로 듣는 교양’을 개설하겠다고 말하는 등 넓은 캠퍼스를 위한 공약도 돋보였다.

 

 

 

#1 복지 공약 확대

제54대부터 제57대까지의 총학은 모두 투표율 미달로 재선거를 거친 후에야 당선됐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제54대 총학 재선거를 시작으로 제55대 재선거, 제57대 1차, 제58대, 제60대 총학 선거 모두 단일 선본만 출사표를 던졌다. 총학에 대한 학생 사회의 무관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제55대 총학 「서포터즈」의 이은호 부총학생회장(서어서문학과·09)은 “투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투표소를 서울대입구역이나 녹두거리에도 두는 것이 관행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제58대 총학 「디테일」 3기 김민석 부총학생회장(정치외교학부·14)은 “학생회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오락적인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에 따라 2010년대에는 학생들의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생활 밀착형 공약이 주를 이뤘다. 「서포터즈」는 도서관에 강의별 기출 문제를 비치하고 수면실을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제56대 총학 「디테일」 1기는 군복무 중 학점 이수제, 자취생 길라잡이 책자 발간 등을 약속했다. 제59대 「닿음」 선본은 서울대입구역이나 녹두거리 등에 가로등을 설치하는 공약을 내기도 했다.

총학을 향한 관심 자체를 제고하기 위한 노력도 돋보였다. 「서포터즈」는 전자투표제를 도입해 학생들이 선거에 참여하도록 북돋웠으며, 제57대 총학 「디테일」 2기는 각 과/반 학생들의 의견을 단과대운영위원회를 거쳐 총운영위원회에 상정하는 ‘총학 안건 주간’을 고안했다. 「디테일」 2기 주무열 총학생회장(물리·천문학부·04·졸)은 “총학이 꾸준히 일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정기 월간 보고 및 총학 안건 주간을 실시했다”라고 밝혔다.

#2 시흥캠퍼스

당시의 뜨거운 감자로 시흥캠퍼스(시흥캠)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학내 전반에 시흥캠에 RC(Residential College, 기숙형 학부대학)를 도입해 특정 학과·특정 학년을 이전한다는 본부의 입장에 대한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2016년 본부의 독단적인 시흥캠 실시협약 체결에 항의하며 학생들이 6개월간 본부를 점거할 정도였다. (『대학신문』 2017년 3월 6일 자)

본부와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총학의 존재는 더욱 두드러졌다. 2016년에는 시흥캠을 둘러싼 갈등이 정점에 달했는데, 이준호 전 학생처장(2016.07.~2017.04 재임)(생명과학부)은 “총장이 시흥캠에 RC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누적된 불신 때문에 학생들은 믿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본부 점거 해제 조건으로 재경위원회, 기획위원회, 이사회 등에 학생 참여를 보장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안건이 전학대회에서 부결됐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디테일」 3기 김민석 부총학생회장은 “초반에는 시흥캠 반대 여론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라며 “공론화 과정에서 본부가 총학하고만 소통한다는 불만이 터지며 학내 갈등이 고조됐고, 이후 전체학생총회를 통해 본부 점거가 결정됐다”라고 밝혔다.

시흥캠 이슈가 떠오르자 학생들의 시흥캠 관련 의사 결정 참여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이 중심 공약으로 등장했다. 제55대 「터닝포인트」 선본은 시흥캠 RC 등 중대 사안을 학생들과 함께 논의하는 ‘협의체 사전간담회’의 시행을 약속했으며, 제57대 총학 「디테일」 2기 또한 시흥캠 TF를 조직하겠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도 제60대 총학 「파랑」이 시흥캠 문제 대책 마련에 힘쓸 것을 약속하는 등 관련 공약은 계속되고 있다.

#3 인권

2010년대로 접어들며 학내 소수자 인권 논의의 범위가 이전보다 넓어진 것 또한 돋보였다. 제58대 총학 「디테일」 3기가 인권가이드라인을 제정한 것이 그 예다. 김민석 전 부총학생회장은 “모든 단과대에서 한 명 이상을 파견 받아 특별위원회를 꾸렸다”라며 “학내 소수자 단체와 노동조합, 대학원총학생회 등과 의견을 나눠 제작한 인권가이드라인을 전학대회에 상정했는데 만장일치로 통과됐다”라고 회상했다. 가이드라인이 제정된 후에도 제59대 「더:하다」 선본은 인권가이드라인에 대한 일부 학생의 혐오 발언을 지적하며 이성애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같은 해 「닿음」 선본도 수업 중 일어나는 교수의 인권 침해적 언행을 신고할 수 있는 ‘속마음 셔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전부터 꾸준히 언급됐던 장애인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공약도 등장했다. 제59대 총학 「U」는 단과대 새내기 새로배움터(새터)에서 장애 인권 교육에 힘쓰고, 새터에 참여하는 장애 학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총학이 직접 학내 배리어프리 조사를 주관해 통일된 배리어프리 기준을 확립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각종 SNS로 학생들과 소통하겠다는 공약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도 이때다. 제55대 총학 후보 「서울대, 깨다」가 총학 SNS 개설을 약속했고, 제56대 「100℃」 선본도 총학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학생들과 소통하는 창구로 삼을 것을 약속했다. 같은 해 「똑똑똑 들어줘요!」 선본 또한 ‘해결해주세요 SNU’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학생들의 불편을 접수하겠다고 밝혔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단과대나 총학생회 SNS 계정의 시작을 엿볼 수 있다.

 

 

 

 

1999년 11월 비운동권 선본이 선거에서 승리한 후 총학 선거 판도는 본격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미나 전 학생처장은 “사회가 민주화되며 이데올로기 대립이 약해졌고, 비운동권 선본이 등장할 틈이 생겨났다”라고 설명했다. 비운동권 총학의 복지 중심 기조가 성공하면서 운동권 선본들도 학생 복지를 공약으로 내기 시작했다. 김기석 전 학생처장은 “정치적인 문제를 떠나 학내 문제 또한 무수했기 때문에 선본들이 여기에 집중해온 것은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학내 사안에 집중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반응도 있다. 이준호 전 학생처장은 “학생들이 학내 문제에만 주목한다면 시야가 좁아질 것”이라며 “시흥캠퍼스 논란 당시에도 다른 사회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옅어진 것이 안타까웠다”라고 말했다. 이전 총학생회장단은 사회 참여와 학내 사안 해결 간 균형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주무열 전 총학생회장은 “생활 의제부터 다뤄야 사회적 의제에도 학생들이 참여하리라 생각했다”라며 “생활 밀착형 공약부터 실행한 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등의 사회적 의제에 접근했고, 덕분에 큰 반대 없이 학생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김민석 전 부총학생회장 또한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이젠 운동권과 비운동권으로 선본의 성격을 이분화하기보다는 두 의제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총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총학이 계속 짊어져야 할 숙제도 산재해 있다. 특히 학생 인권 보장과 소통 확대는 20년간 공약으로 빠짐없이 등장하는 주제다. 2000년대 초반 선본들이 피상적인 여성 인권 향상과 반성폭력 운동에 초점을 맞췄다면,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장애 학생 인권도 본격적인 논의의 대상이 됐다. 2010년대 이후엔 성소수자나 외국인 학생 인권 문제가 가시화됐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도 이뤄졌다. 그러나 학내 장애 학생 지원 제도가 아직 미흡하고, 학내 성폭력 문제도 끊이지 않는 만큼 인권 문제는 총학의 가장 큰 과제로 남아 있다.

학생회와 일반 학생 간 거리도 멀기만 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제기된 ‘일반 학생들도 학생회 의제 설정에 참여해야 한다’라는 문제의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화됐다. 그러나 투표율 저조로 인한 선거 무산의 반복 등 학생들은 학생회가 제대로 기능한다고 느끼지 못했다. 기층 구조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는 ‘총학 안건 주간’ 정책부터 시작해 SNS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학생들에게 직접 불만 사항을 듣겠다는 공약도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일반 학생들과의 활발한 소통’ 공약이 매년 등장한다는 것은 여전한 소통의 부재를 반증한다.

총학이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의견도 다양했다. 특히 학내 사안에 대한 학생 참여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돋보인다. 김기석 전 학생처장은 “학생들이 단순한 피교육자에 그치지 않고 교내 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할 수 있도록 총학이 노력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은호 전 부총학생회장 또한 “총학은 필요하다면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본부와 협상하거나 싸울 줄도 알아야 한다”라며 “학내 의사 결정 과정에 학생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를 확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민석 전 부총학생회장은 “다양해지는 학생들의 요구에 대응해 어떤 활동을 펼칠지 확실히 정하고 이를 책임질 수 있는 체계를 조성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준호 전 학생처장은 “자신뿐만 아니라 외부 사회에 대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총학이 등장하길 바란다”라며 균형 잡힌 시선을 강조했다. 장기적인 안목을 당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장재성 전 학생처장(2008.08~2010.08 재임)(불어불문학과)은 “짧은 임기 안에 성과를 내기보다는 5년, 10년 후를 위한 초석을 닦아야 한다”라며 “10년 뒤 후배들이 마주할 서울대 또한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역 사회와 상생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주무열 전 총학생회장은 “지역 상권과 협업해 지역을 발전시킨다면 학생들에게도 이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총학은 학생들과 함께 서울대를 만들어 왔다. 선본이 제시하는 공약은 당시 학생 사회의 요구를 반영하며, 총학이 실시하는 정책은 학생들의 생활을 바꾼다. 학생이 강의평가의 주체가 되고 교원징계규정이 바뀐 것은 지난 학생회들이 이룩한 성과다. 하지만 여전히 실천되지 못하고 남은 과제도 많다. 다가올 2020년대의 학생회가 학생들의 생활을 바꾸는 공약과 책임감 있는 실천으로 총학사(史)의 새로운 분기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삽화: 송채은 기자 panma2000@snu.ac.kr

레이아웃: 신동준 편집장 sdj386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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