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과학부 이교구 교수
융합과학부 이교구 교수

화가, 작가, 작곡가, 연주가, 가수, 무용가… 최근 한 조사기관에서 직업과 관련된 “어떤” 질문을 던졌을 때 가장 높은 순위에 위치한 직업들이다. 최상위권에 위치했다는 사실만을 바탕으로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질문이 무엇이었는지를 거꾸로 유추해 본다면 어떤 질문을 예상할 수 있을까. 자기 만족도가 높은 직업? 보수가 많은 직업? 자유도가 높은 직업? 물론 위와 같은 답이 나오기 위한 질문이 유일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 조사기관에서 했던 질문은 바로 “인공지능이 대체할 가능성이 낮은 직업은?”이었다. “아하, 그런 질문이었군? 당연하지!”라고 무심코 동의했다면 독자가 그렇게 쉽게 동의한 근거는 무엇일까? 아마도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닐까? “위의 직업들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창작의 영역인데 당연히 사람만이 할 수 있지. 학습용 데이터로 훈련된 인공지능이 새로운 걸 만들 수는 없지 않겠어?”

위의 근거에 대한 판단을 하기 전에 사례를 먼저 들어보자. 지면을 통해서도 많이 소개됐지만 2016년 일본의 한 문학상에 인공지능을 이용해 쓴 글이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에서 1차 관문을 통과했다. 2018년 ‘적대적 생성 신경망(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 GANs)’이라는 심층신경망을 이용해 그린 가상 인물의 초상화 그림은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5억 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됐다. ‘Sony’의 ‘FlowMachine’이라는 음악 창작 프로젝트 그룹에서는 바흐가 작곡했을 법한 코랄 4중주, 비틀즈 풍의 노래들을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만들어냈다. 비슷한 그룹인 ‘Google’의 ‘Magenta’ 팀에서는 인간이 연주한 피아노에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피아노 듀엣’ 시스템을 소개했다. 필자의 연구실에서도 최근 매우 자연스러운 노래 부르는 목소리, 즉 가창 신호를 생성해내는 뉴럴넷 모델의 학습에 성공했다. 소용량 가창 데이터로 복제까지 가능해 김광석, 유재하, 프레디 머큐리, 마이클 잭슨 등 이미 우리 곁에 없는 가수들이 요즘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을 수도 있다.

물론 위에 열거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인공지능도 글쓰기, 그림 그리기, 작곡, 연주 등의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라고 단언하는 것은 매우 성급한 판단이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드러나기 어려운 창작물이 가지는 여러 가치들—미학적/철학적 가치, 사람들과의 소통, 창작자의 고뇌와 이에 대한 공감 등—이 같이 고려돼야만 그 진정한 예술적 가치를 느끼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요소가 “창작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이다”라는 결론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 또한 성급할 수 있다. 극소수의 천재적 예술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창작자는 보통 오랜 시간 ‘훈련’의 과정을 거친다. 이런 훈련은 일반적으로 창작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있는 ‘스승’을 통해 이뤄지고, 앞서간 수많은 대가들의 작품을 읽고[보고/듣고], 쓰는[그리는/작곡하는] 모방의 과정을 포함한다. 이렇게 습작을 만들어보고 스승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아 개선된 작품을 만들고, 이에 대해 다시 의견을 듣고 더 개선된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거치게 될 것이다. 기계 학습 기반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구현해본 독자는 위의 과정이 심층 신경망 등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훈련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더군다나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지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하루에도 수만 권의 책을 읽고[쓰고], 수만 장의 그림을 보고[그리고], 수만 곡의 음악을 듣는[작곡하는] 것이 가능하다.

자율주행자동차나 정밀 의료 등 인공지능을 활용해 우리 곁에 비교적 가까이 다가온 분야에 대해서는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과 더불어 법률적, 윤리적, 사회적 장치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창조’한 글, 그림, 음악이 자연스럽게 소비되는 날도 머지않은 미래에 다가올 수 있고 이 또한 많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주체로서의 인공지능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무한한 기쁨과 감동과 치유를 주는 예술 창작의 주체로서의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도 같은 맥락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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