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학내 구성원이 만나면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까? ‘나’의 시선 대신, ‘너’의 시선으로 바라본 ‘나’와 ‘너’를 『대학신문』을 통해 이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대학신문』 ‘나 대신 너’에서는 함께 모일 계기가 없을 것 같은 학내 구성원을 모아 그들이 전달해준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이번 연재에서는 같은 학문을 전공하고 있는 좌담회 참여자를 모집해 많은 학내 구성원이 서울대의 전공 제도 운용과 각 전공에 대해 궁금해할 법한 점을 물었다. 인문대에는 입학과 동시에 전공이 정해지는 전공 예약생과, 입학 이후 반은 전공과 무관하게 배정되나 진입 제도를 통해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계열생이 공존한다. 이번 좌담회에는 예약생 김명우 씨(철학과‧13), 계열생 김재준 씨(철학과‧18), 복수 전공생 정선도 씨(물리교육과‧15)가 패널로 참석했다. 모두 철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들은 △전공에 대한 열정 △과‧반‧단과대 불일치의 숙명 △철학 전공에 대한 주변의 시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전공에 대한 열정

김(계열): 나는 내일 죽어도 오늘 재미있는 것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철학 전공이 너무 좋아서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고, 내 선택이기에 뭘 해도 굶어 죽을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철학 문장을 읽는 것이 즐겁다. ‘세계는 사물의 총체가 아니라 사태의 총체다’와 같은 문장은 아직도 질리지 않는다.

정(복전): 물리와 철학 모두 세계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근본적인 설명을 한다. 그런데 철학은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조차 철학이라는 점에서 철학이 더 좋다. 철학 공부를 통해 세계에 대해 논리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것이 즐겁다.

▶과‧반‧단과대 불일치의 숙명

김(예약): 과와 반이 일치하다 보니, 신입생 때부터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 전공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 반의 경우 철학 관련 학회가 존재해 관심 있는 책도 읽으면서 토론도 하면서 즐거웠던 것 같다. 비철학과 학생은 소외감을 느꼈을 법도 하다.

김(계열): 나는 인문계열로 입학해 소속된 과와 반이 다르다. 아무래도 내가 속한 반에는 철학에 대해 나만큼 심도 있게 아는 학생이 드물어서 교류할 상대가 부족해 처음에는 불편했다. 하지만 오히려 교류가 없다는 것이 장점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다. 특정 철학 주제에 대해 여럿이서 이야기하면 이야기가 진부해지는 경우도 있을 뿐만 아니라, 시험 답안이 비슷해지기 때문에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복전): 철학과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 간 답사에서 소외감을 느낀 적이 있는데, 그들만 아는 단어로 대화했을 때였다. 이를테면 철학과 학생들이 ‘감때우속’이라는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해 당황하기도 했는데, 인식론 수업을 함께 수강한 학생들이 데카르트의 ‘감각은 때때로 우리를 속인다’라는 표현을 유행어로 만들어 자기들끼리의 유희로 사용한 것이었다. 이런 점은 주전공이 아니어서 오는 괴리감보다는 같은 수업을 듣지 않은 데서 오는 소외감이었던 것 같다.

▶주변의 시선

김(계열): 다들 멋있어 보인다고는 한다. 같은 반 친구들이 철학 개념에 관해 물으면 간략하게나마 대답을 해주기도 하는데, 그럴 때 다들 멋있다고 말해준다. 다들 내가 철학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싫어하지만 ‘철학’이라는 학문을 전공하는 것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해준다. 

김(예약): 나도 멋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냥 사람들이 겉치레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정(복전): 물리와 철학 두 개를 전공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혼종’이라고 말하면서 우러러본다. 그런데 가끔은 다른 사람에게 그 두 개를 전공한다고 하기가 부끄럽다. 그들이 너무 과하게 칭찬해 주기 때문이다. 겨우 학부 수준일 뿐인데 멋있다는 말을 듣는 것이 오히려 부담스럽다.

김(계열): 나는 사람들이 철학 전공에 대해 과대평가해주는 것이 좋다. 가끔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에 내려가면 부모님이 주변 사람들에게 서울대생 왔다고 자랑하시는데, 그 사람들이 전공이 무엇인지 내게 물어서 대답하면 잠깐 정적이 흐른다. 또 어떤 사람은 내게 철학과 나와서 철학관 차릴 것이냐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이날 모인 학생들은 그들이 가진 다양한 소속감과 정체성에 따라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전공으로 선택한 이상 그 전공에 대해 책임감과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사명감을 내비치면서, 철학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모습을 보였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기본적인 사고방식의 토대를 제공한다고 말하는 그들의 눈은 철학의 학문적 가치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찼다.

사진: 원가영 기자 irenber@snu.ac.kr

삽화: 김채영 기자 kcygag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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