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김채영 기자
kcygaga@snu.ac.kr

올해의 노벨경제학상은 전 세계를 누비며 빈곤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종류의 실험을 시도한 세 명의 경제학자에게 돌아갔다. 수상자인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 경제학과의 바네르지 뒤플로, 에스테르 뒤플로 부부는 수많은 빈곤의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공동 수상자인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크레이머 경제학과 교수와 함께 가난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빈곤퇴치정책의 효과를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예를 들어 수상자들은 정부에서 가난한 농민들을 위해 비료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정책을 폈을 때 농민들이 심리적으로 비료를 구매하기보다는 현재의 상태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정부의 정책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무작위통제실험(RCT·Randomized Controlled Trial)’을 통해 밝혀냈다. 수상자들은 이와 같은 실험을 통해 빈곤을 퇴치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고자 했다.

물론 뒤플로 교수 부부와 크레이머 교수가 제기한 여러 가지 빈곤 퇴치 방법은 완전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연구가 높은 평가를 받고 노벨경제학상 수상까지 이어진 것은 이들이 단순히 빈곤 퇴치에 관한 학술적 담론을 넘어서 어떻게 빈곤을 퇴치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을 논의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기 때문이다. 기존의 개발경제학에서는 원조가 빈곤 퇴치에 기여하는지 여부를 두고 대립했는데, 수상자들은 이를 비판하며 빈곤과 같은 현실 문제에 관해 담론의 차원에 국한되지 않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는 실천적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학자들이나 정책 결정권자들이 책상 앞에만 앉아있을 것이 아니라, 정책들이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떻게 사람들을 바꿔 가는지 직접 관찰하며 현실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상자들의 노력은 크게 인정받아 노벨경제학상 수상으로 이어졌지만, 그들이 외친 바는 아직까지 서울대에 닿지는 못한 듯하다. 얼마 전부터 학내에서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교내 성적 장학금 폐지 논란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성적 장학금을 축소하고 가계 곤란 장학금을 확대하는 것이 상당한 이점을 가져다줄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국내외 여러 대학에서 성적 장학금 폐지가 추진되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서울대도 장학금 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느끼고 여기에 발맞춰 교내 성적 장학금을 폐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학생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상황이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교내 성적 장학금 폐지가 어떤 정책적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에 관한 논쟁을 떠나서, 성적 장학금 폐지가 학생들의 실제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난 6일(수) 중앙도서관 관정관 양두석홀에서 다양성위원회 주최로 열린 ‘총장님과 나누는 서울대 이야기’ 행사에서 오세정 총장은 교내 성적장학금 폐지에 관한 학생의 질의에 대해 본부의 입장을 밝혔다. (『대학신문』 2019년 11월 11일 자)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해 소통을 통해 학생들의 여론을 수렴하거나 현장에서 현실을 자세히 살펴보려는 노력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고 있다. 장학금 문제에서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내 성적 장학금 폐지로 인해 발생할 것이라 기대되는 정책적 이점보다는 학생들이 처한 현실적 조건과 그들의 목소리다. 장학금을 성적에 기반을 두고 수여할 것인지, 필요에 기반을 두고 수여할 것인지에 관한 담론 대립을 떠나서 어떻게 학생들의 학업 능률을 고취시킬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실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학생들과의 소통을 통해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훈창 간사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