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아시아연구소 10주년, 그 성과와 향후 과제는?

세계 경제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2030년 전 세계 GDP 순위에서 각각 1, 2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 아시아 사이의 교류가 늘어나는 가운데 한국의 아시아연구는 어떤 성과를 이뤄왔고,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까. 아시아연구에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설립 이래 10년 동안 걸어온 발자취를 중심으로 국내 아시아연구의 성과와 향후 과제에 대해 알아봤다.

 

지역과 주제를 빚어 아시아를 바라보다

Regional Studies(Area Studies)는 한국어로 지역학 혹은 지역연구라 번역된다. 제국주의 시대에 열강이 식민지 지배를 위해 시작한 지역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본격화됐다. 미국이 패권 장악을 위해 비(非)서방 국가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각 지역의 정세를 연구하는 전문가를 육성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표방하면서 본격적인 지역연구가 이뤄졌다. 이때를 기점으로 지역연구를 위한 지원금이 늘어났고 서울대를 포함한 10개 대학에 국제대학원이나 지역연구소가 세워졌다. 그러나 아시아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은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후다. 아시아연구소 박수진 소장(지리학과)은 “2000년대 중반 중국의 경제 발전이 가시화되고 동남아시아가 급속도로 발전했다”라며 “우리가 아시아를 품지 않으면 미래의 성장 동력을 찾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아시아 시대’에 대한 전망은 2009년 아시아연구소의 공식 출범으로 이어졌다. 독립적인 연구소 건물을 지원받는 등 아시아연구소는 정부와 학교 본부 및 기업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연구소 설립 이래 지난 10년은 아시아연구라는 거대한 개념을 조성하고 확립하는 과정이었다. 지역과 주제를 결합한 연구 방식은 아시아연구소의 가장 큰 특징으로 여겨진다. 이는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서아시아, 남아시아, 중앙아시아와 같은 아시아연구소 소속 지역센터가 민주주의, 시민사회, 미중관계 등의 주제를 공동으로 연구하는 형태다. 지역센터 간 협동 연구를 통해 개별 국가들의 연관성과 상호 작용을 연구하고자 한 것이다. 박수진 교수는 “아시아 전 지역을 포괄한 연구가 가능하다는 것이 아시아연구소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아시아연구소는 서울대가 가진 국내외 네트워크까지 활용해 지역 간, 국가 간 다양한 비교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아시아, 지속가능한 연구를 위해

최근 아시아연구소는 기존의 연구 주제에 더해 삶의 질, 지속가능한 발전, 아시아의 스마트 도시 등 새로운 연구 주제도 포괄하고 있다. 오늘날 주목받고 있는 불평등과 기후변화, 급격한 기술 혁신 등의 이슈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아시아연구소 운영위원 김준 교수(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는 지난 9월 아시아연구소 10주년 심포지엄에서 “인류가 직면한 지속 불능의 도전 과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학제 간 연구 협력과 범분야적 실천을 추구하는 융합 연구를 지향한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연구방법론 차원에서는 데이터의 수집과 처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박수진 교수는 “지역연구를 하면 지역별, 국가별로 수많은 데이터가 모여든다”라며 “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한 뒤 가치 있는 정보로 가공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아시아연구소는 2016년 한국사회과학자료원(KOSSDA)을 연구소 내에 유치한 이래 아시아지역정보센터와 사회빅데이터센터를 잇달아 설치해, 연구에 필요한 민간·공공 부문의 통계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지역연구에 필요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박수진 교수는 “지역연구의 후발 주자인 한국이 오랜 연구 역사를 가진 유럽이나 일본의 수준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라며 “한국이 정보기술에 강점을 지닌 만큼 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보는 아시아, 그 관점을 명확히 하라

지역연구 전문가들은 향후 한국 아시아연구의 최대 과제로 ‘독창성 제고’를 꼽았다. 임현진 명예교수(사회학과)는 “지난 세월 아시아연구가 서양 학계로부터 전수된 이론적 틀을 검증하는 일종의 실험장에 불과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아시아연구소의 규모와 발전 가능성이 큰 만큼, 과거의 한계를 극복해 아시아연구소가 한국적 시야에서 아시아연구를 진행하는 선두 주자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신윤환 교수(서강대 정치외교학과)는 “한국적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은 세계 지역연구 학계에 한국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서양의 시각이 아닌 아시아의 시각에서 아시아를 분석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한국 학계가 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아시아연구소만의 명확한 방향 설정이나 적극적인 움직임이 부족해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신윤환 교수는 “아시아연구소 정도의 자립 가능성과 재원 규모를 지닌 곳이 과도하게 정책 연구를 지향한다는 점은 아쉽다”라며 “시의성만을 고려하는 연구는 아시아연구소가 가진 특색을 희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정부의 지원으로 연구 과제를 수주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정책 친화적’ 연구에만 집중하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연구의 국제화·융합화를 통해 ‘울타리를 벗어난 연구’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임현진 명예교수는 “다양한 연구 주제에 대응하기 위해 자연과학, 공학, 의학 등을 전공하는 연구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라고 언급했다. 신윤환 교수 역시 “한국인 연구자들이 한국어로만 성과를 발표하는 식의 연구가 계속된다면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지역연구의 국제화를 통해 국내 연구자들이 세계 학계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대체로 지역연구를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로 엇갈린다. 하나는 지역연구의 실용성과 효용성을 강조하는 관점이다. 국익 혹은 우리 기업의 이익을 기준으로 두고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역연구의 학술성을 중시하는 관점이다. 당장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연구는 아닐지라도, 아시아 각 지역의 특수한 사회적·문화적 사정을 정확히 이해해 앞으로의 지역연구를 위한 학술적 토대를 확립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아시아연구는 실용성과 학술성이라는 두 갈래의 길 중 어디를 바라보고 있으며 앞으로는 어느 길로 나가야 할까. 전문가들조차 이에 대해서는 미묘한 의견 차이를 보였다. 결국 향후 아시아연구의 행보는 우리 사회가 아시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가치를 더 시급하게 여기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상반되는 가치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를 찾는 일은 이제 우리 사회와 아시아연구 전문가들의 몫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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