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눈에 띄는 기사가 있어 이에 대한 소회를 간략히 적어 봅니다. 기사는 지난 15일(금) 아시아연구소 영원홀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인권 규범 제정에 관한 연구 발표와 토론회’를 통해 서울대 인권헌장 초안이 첫선을 보였다고 소개했습니다. 인권헌장(초안)은 전문과 16개의 조항으로 구성돼 있으며, 헌법의 기본권 조항과 유사한 성격과 위상을 가지게 된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권헌장(초안)에서는 제1조의 목적을 제외하고 가장 선행하는 조문으로 ‘인격권’을 제2조에 배치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소위 ‘교육권’에 관한 조문이 포함돼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만, ‘교육권’도 기본권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헌법은 제2장에서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제31조에는 ‘교육권’이 규정돼 있습니다. 헌법에 규정된 ‘교육권’은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2항에는 “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해야 한다” “학교 교육 및 평생교육을 포함한 교육 제도와 그 운영, 교육 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라는 규정이 포함돼 있습니다.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듯이, 대학은 자율성을 기초로 하고 있고, 대한민국의 울타리 안에서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지는 것”과 유사하게 대학 내에서도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유추해 볼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율성’ ‘능력’ ‘균등하게’ 등에 관한 개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교육의 구성 요소에는 교수, 학생, 교육 환경 등이 있습니다. 교육 환경에는 교육 시설, 교육 재정 등이 포함됩니다. ‘자율성’은 ‘규범 속에서의 자율’(regulated self-regulation)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교수와 학생 모두 규범 속에서의 자율을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문제는 ‘능력’과 ‘균등하게’입니다. 이러한 선언적 규정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현실에서는 매우 어렵고 복잡하게 작동하고 있는데, 그 주체가 학생이라는 점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듭니다. 현실적으로, 대학의 교육 현장에서 교수는 학생에 비해 우월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능력’과 ‘균등하게’는 교수들보다 학생들에게 더욱 심각하게 고려되는 문제인데도 그것들에 대한 판단은 주로 교수들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장학금 지급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장학금은 공부를 잘하라고 주는 성격이 기본인지, 아니면 공부를 잘했다고 주는 성격이 기본인지 여전히 논쟁거리입니다만 장학금 지급 기준은 주는 주체의 입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실 장학금은 주는 주체보다도 받는 학생들에게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대학의 주요 기능은 교육, 연구, 사회봉사입니다. 그 중에서도 교육이 기본의 위치에 있습니다. 서울대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은 조금 씁쓸한 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대학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서울대가 대학 내 문제뿐만 아니라 대학 밖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지성의 요람이 되기 위해서는 교육의 본질에 충실할 필요가 있음을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승희 교수 

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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