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연희문학창작촌 〈詩로, 서로, 위로〉

연희문학창작촌은 서울문화재단이 국내 작가에게 집필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곳이다. 국내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작가나 개인 창작집 발간 작가, 한국 문학 번역가가 입주 작가로 선발된다. 청년 작가가 본인만의 집필 공간을 마련하기 힘든 현실에서, 이곳은 집필 공간뿐만 아니라 다른 입주 작가와 교류할 기회까지 제공하고 있다.

지난 21일(목)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열린 오디오극 〈詩로, 서로, 위로〉를 찾았다. 이곳에서는 연희문학창작촌 입주 작가 일곱 명이 쓴 시와 관련된 이야기를 녹음된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창작촌 내 마련된 12개의 장소에는 시에 맞는 배경과 오브제가 준비돼 있다.

MP3 플레이어를 목에 걸고 발걸음을 내딛으면, 학창 시절 익숙하게 봤던 책걸상이 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홍지호 시인의 「월요일」이 흘러나온다.

처음은 자꾸 지나간다

관대한 척을 하면서

키스가 있었다

하루종일 숨을 쉴 때마다

당신이 숨쉴 때 나는 냄새가

들락날락거렸다

바퀴가 터진 스쿠터처럼

처음은 지나갔고 이제 키스를 해도

당신의 숨이 들락거리지는 않는다

홍지호, 「월요일」

「월요일」에는 학창 시절 첫사랑의 추억과 당시의 순수한 감정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작가는 더이상 순수함을 느낄 수 없음에 아쉬워하고 허무해 한다. 어두운 차고지 한 구석에 책걸상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인 풍경은 쓸쓸함을 더한다. 책걸상은 첫사랑이 지나간 뒤 홀로 남겨진 사람처럼 여겨진다.

오디오극 〈詩로, 서로, 위로〉에서는 개인적인 추억에 대한 감상뿐만 아니라 사회 비판적인 시각도 엿볼 수 있다. 다섯 번째 장소에서는 이설야 시인의 시 「플라스틱아일랜드」가 흘러나온다.

북태평양 인근 섬에서 죽은 새야

라이터는 뭐하려고 삼켰니?

그 섬에 가면 몸의 비늘들이 가득 쌓여 있대

잘게 쪼개진 플라스틱들

수십년 동안 밀리고 밀려 떠다니는 중

밀리고 밀려 우리 입속으로 들어오는 중

이설야, 「플라스틱아일랜드」

이곳으로 오기 위해 관람객은 그물이 겹겹이 쌓인 길을 지나야 한다. 이들은 그물에 걸리지 않도록 몸을 최대한 숙이면서 해양 생물이 겪는 일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낚싯줄, 그물 등 바다 쓰레기로 인해 환경이 파괴되는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다.

열 번째 장소인 ‘예술가의 놀이터’에서는 오디오가 중단된다. TV, 두꺼운 이불, 작은 소파, 수건과 옷이 걸린 런닝머신 등이 놓인 이곳에는 박연준 시인의 「아버지의 방」이 쓰여 있다. 또한 사람 한 명이 들어갈 만한 작은 천막이 마련돼 있다. ‘아버지의 방’이라는 글자가 적힌 천막은 네 면이 막혀 있어 관람객이 천막 안을 볼 수 없다. 가족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아버지의 마음을 형상화한 것이다.

한번도 발 들여다본 적 없는 우물 속

아버지의 방이있다

반복되는 어둠이 어지간히 쌓이면

아버지는 몰래 방으로 들어간다

문이 없고, 세월이 없는 그 속에서

아버지가 풀어놓은 흰 염소들이 숨죽여 울고 있다

내가 버린 태아들이 웅크리고 긴 잠 잔다

키 작은 아버지가 손가락을 빨며

잃어버린 신발을 기다린다

박연준, 「아버지의 방」

여기에는 고단한 일상을 마친 아버지가 묘사돼 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아버지는, 집 밖에서 부당한 일을 겪고도 가족에게 불만을 털어놓을 수 없다. 불 꺼진 방에 널브러진 옷가지와 수건은 아버지의 마음처럼 어두운 느낌을 준다. 「아버지의 방」에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동정, 그리고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아버지 스스로의 죄책감이 투영된 것이다.

오디오극 〈詩로, 서로, 위로〉는 우리가 주위에서 쉽게 마주하는 풍경에 주목한다. 극은 학창 시절의 책걸상, 바닷가에 날아다니는 새, 집에 들어오는 아버지 등 우리가 일상에서 지나쳤던 사람과 사물을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위로한다. 사실은 이들 모두가 우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더불어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것을 오디오극 〈詩로, 서로, 위로〉는 일깨운다.

사진: 윤희주 기자 yjfrog0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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