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미인대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너는 커서 미스코리아 해도 되겠다!” 불과 10년 전까지 한국 여자아이에게 최고의 칭찬이었던 말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이 말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인기가 추락하며 ‘세계 평화를 위해 구슬땀 흘리는 한국의 대표 미녀’를 찾아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여름, 2019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노출 한복’ 논란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던 미스코리아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가장 뜨거운 젠더 이슈 안에서 새롭게 다뤄지며 역사, 정치, 문화와 얽힌 복잡한 민낯을 드러냈다. 서울대 출신 미스코리아가 여럿 등장하며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는 만큼 『대학신문』은 미스코리아를 중심으로 한국의 미인대회가 거쳐온 과정과 그 배경으로서 한국 사회의 변화를 알아보고자 한다.

미인대회의 흥망성쇠, 그리고 변화

우리나라에서 미인대회가 시작된 것은 1957년 「한국일보」가 주최한 제1회 미스코리아 대회부터였다. 초창기 미스코리아 대회는 공공적 성격이 강했다. 「한국일보」는 한국 전쟁 후 정신적으로 피폐한 시대에 국민들에게 축제의 장을 마련해 주고 국제 미인대회에 나가 국위를 선양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대회를 개최했다. 즉 이들은 미스 월드, 미스 유니버스와 같은 국제 미인대회에 참가해 국가를 홍보할 ‘미의 외교 사절’을 선발하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당시 미스코리아는 국가 대표 미인으로서 사회가 강조하던 여성관을 충실히 반영했다. 1960년대까지 미스코리아에게는 정숙함, 현명함, 참한 외모 등 현모양처의 덕목이 요구됐으며 여성의 신체도 엄격한 기준에 따라 평가됐다. 1996년 한국여성민우회 시청자사업위원회가 공개한 「‘미인대회’ 방송 중계에 대한 모니터 결과」에 따르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심사기준에는 치아와 잇몸의 형태, 가슴의 크기, 위치와 모양, 양어깨의 각도와 같은 매우 구체적인 신체 기준이 포함됐다. 이는 과거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에 의해 내면적·신체적으로 대상화되는 수동적인 존재였음을 알려준다. 

미스코리아 대회는 1972년 지상파 방송에 중계되며 전성기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특히 1980년대에 미스코리아 당선자가 연예계로 진출하는 풍토가 생기자 대회의 파급력은 더욱 커졌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어렵던 시절 미인대회가 신분 상승과 사회적 성공의 수단이 된 것이다.

그러나 선발 경쟁이 과열되며 미스코리아 대회는 여러 폐단을 드러냈다. 미용실과 주최 측 간의 유착 및 비리가 대표적 문제다. 2008년부터 약 3년간 「한국일보」와 함께 대회를 유치했던 미스퀸코리아 박정아 회장은 “수십 년간 이어진 미스코리아 대회와 특정 미용실의 유착 관계는 끊을 수 없을 정도”라며 “특정 미용실 원장은 대회 입상을 빌미로 참가자 부모에게서 돈을 착취하거나 조직위원회를 매수하며 대회의 공정성을 해쳤다”라고 이야기했다. 

더불어 미스코리아 대회의 수상자가 국제 미인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면서 대회의 존재 이유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한국일보」는 2011년과 2016년 각각 미스 월드와 미스 유니버스에 수상자를 출전시킬 권리를 박탈당했다. 박정아 씨는 “「한국일보」의 재정적 어려움과 대회 공정성 문제로 미스코리아 수상자가 더 이상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없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미스코리아의 지위 추락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여성 단체의 반발이었다. 이들은 미인대회가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고 획일적인 미의 기준을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특히 1999년에 개최된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은 10년 동안 지속되며 미스코리아에 대한 비판적인 담론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행사의 사회자였던 유지나 교수(동국대 영화영상학과)는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은 개최 첫해 표가 매진될 정도로 성황리에 이뤄졌다”라며 “이를 계기로 2002년 미스코리아 대회의 공중파 중계가 폐지됐다”라고 그 의의를 설명했다. 전파를 타지 못하게 된 미스코리아 대회는 이후 사회적 파급력을 잃고 점차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미스코리아를 포함한 여러 미인대회는 여전히 열리고 있다. 미인대회 전문학원 SY아카데미 김소영 원장은 “10년간 학원을 경영했는데 지금껏 학생 수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늘었다”라며 “사설 미인대회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미인대회도 내부적으로 변화를 꾀하면서 이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박정아 회장은 “미인대회는 여성이 남성의 눈요깃거리가 되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의 매력과 자신감을 뽐내는 장이 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2019 미스코리아 ‘미’에 당선된 신윤아 씨(체육교육과·16)도 “대회를 통해 자기 PR시대에 스스로의 매력을 발견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을 알게 됐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제는 양성이 평등해졌다는 믿음 아래 “예쁜 외모도 내 능력”이라고 주장하는 여성들이 나타나면서 ‘안티 미스코리아’에 대한 반박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미인대회의 부활은 글쎄…

하지만 미스코리아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남성 중심적 제도 안에서 아름다운 여성을 뽑는 미인대회는 현재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올바른 젠더 문화의 방향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양효실 강사(미학과)는 “미인대회는 본질적으로 성차별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름다운 외모는 남성과 관계없는 여성의 고유한 자긍심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여성의 예쁜 외모는 남성 중심 자본주의 사회의 인정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능력’이기 때문에 이 역시도 가부장제의 프레임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논리”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일부 전문가는 남성의 평가 대상이 아닌 인간으로서 여성의 지위를 되찾고자 하는 페미니즘 담론이 지지를 얻고 있는 지금, 미인대회가 다시 인기를 끌기는 어려울 것이라 예견한다.

더불어 문화 콘텐츠 산업으로서 미인대회가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김교석 TV 칼럼니스트는 “과거에는 미스코리아 대회, 슈퍼모델 선발대회 등 미인대회가 연예계의 등용문으로서 굳건한 입지를 가졌지만, 요즘은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를 통하거나 방송사 자체적으로 인력을 수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 보편화됐다”라고 진단했다. 게다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SNS의 등장으로 개인이 시스템에 속하지 않고도 유명해질 수 있는 기회 또한 무궁무진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인대회는 방송, 연예 관련 산업으로서 존재 가치를 잃게 됐다. 

더욱이 미인대회가 재미를 주지 못한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대부분의 미인대회는 케이블 방송, 인터넷 등의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일종의 경연 예능 방송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자극적인 경연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시대에 미인대회는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부족하다. 흥행에 성공한 경연 프로그램은 여러 회차의 방송을 통해 참가자가 시청자와 함께 호흡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미인대회 중 가장 인기 있는 미스코리아 대회조차 시청자를 몰입시킬 만한 스토리텔링의 요소가 전무하다. 이들은 본선을 제외하고는 유튜브에 5분 남짓한 후보들의 합숙 생활 영상만을 공개할 뿐이다. 이와 같은 스토리의 부족은 참가자에 대한 시청자의 친밀도를 떨어뜨린다. 김교석 칼럼니스트는 “서바이벌 경연 예능의 핵심은 시청자가 참가자의 이야기를 자신의 일처럼 느끼게 함으로써 타인의 성공에 대리만족 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미스코리아 대회도 시청자 투표를 하지만 여전히 심사위원이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라며 “미스코리아는 특별한 사람이 뽑은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져 대중에게 와닿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사회가 다원화, 개인화되면서 서로 다른 개인을 줄 세워 1등을 뽑는 미인대회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특히 국가 인증 브랜드로서 미스‘코리아’의 가치는 떨어진 지 오래다. 국가 대표라는 단어 속에는 전체주의적 집단 문화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점차 다양한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다원화 사회로 나아가며 이런 집단적 상징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김교석 칼럼니스트는 “국민가요보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더 중요해진 시대에 한국을 대표하는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미인대회, 폐지해야 할까?

이처럼 미인대회가 다시 대중에게 사랑받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러나 미인대회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과 이를 법으로 폐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미스코리아 대회는 40년 넘게 폐지 논란에 시달렸음에도 직접적인 움직임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올해 6월 대회 개최 63년 만에 처음으로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대경여연)이 국가인권위원회에 폐지 요구 진정서를 내면서 대회의 존폐 문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대경여연 강혜숙 상임대표는 “미스코리아 대회는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언론의 수익 사업”이라며 대회 폐지를 주장했다. 이어 그는 “미스코리아 지역 예선 대회에 지자체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라며 “국민의 세금이 함부로 쓰이지 않도록 시민들의 철저한 정책 감시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미스코리아 대회를 강제로 폐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양효실 강사는 “미인대회가 ‘나쁜’ 제도라 할지라도 이와 관련된 대중의 욕망이나 사회 구조적인 맥락을 무시한 채 폐지를 강제하는 것은 도덕적 강박”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인대회는 기존의 제도권 안으로 편입하려는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본주의와 능력주의에 종속돼 있기 때문에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보다 상황을 전체적으로 조망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인대회에 참가하는 여성의 욕망을 쉽게 비판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이유로 미인대회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교조주의로 귀착될 수 있다는 우려다. 

미스코리아 대회가 다시 국가적인 행사가 될 수는 없어도 사적인 목적을 위한 소규모 대회로 존속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특정 직업군의 ‘스펙’으로서는 여전히 미인대회가 유효하기 때문이다. 김소영 원장은 “모델, 연예인, 아나운서, 승무원 등과 같은 직업을 희망하는 여성들에게는 미인대회 수상 경력이 가산점이 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신윤아 씨는 “미스코리아 당선이 꿈을 이루는 데 직접적인 영향은 주지 않는다”라면서도 “수상으로 인해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미인대회는 개인의 스펙을 위해 여전히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젠더 담론은 ‘미의 외교 사절’부터 ‘탈코르셋’까지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미스코리아는 그 중심에서 가장 급진적인 변화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국여성민우회 이윤소 활동가는 “한국의 젠더 문제는 후퇴와 진전을 반복하고 있는 과도기 단계”라고 평가했다. 우리는 스스로 발 딛고 서 있는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 방향이 맞는지 끊임없이 지켜봐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 ‘구시대적 유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새 시대의 지혜다.

삽화: 송채은 기자 panma2000@snu.ac.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