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대학원 김성욱 실무관
국제대학원 김성욱 실무관

이미 폭풍은 지나가긴 했지만, 공정성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 중 하나다. 정치권, 언론, 여론이 한목소리로 공정한 입시가 이뤄지지 않았음에 의혹을 제기하고 불공정에 강도 높은 비판이 이어지는 것을 보며 역시 ‘과거’ 시험의 민족답게 입시가 역린이라는 농담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뭔지 모를 아쉬움이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현재까지 내린 나름의 결론으로는, 무엇이 공정한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없었다는 점, 더 근본적으로는 공정이라는 가치가 선택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올 초 「한국사회학」에 게재된 「경력단절 이전 여성은 차별받지 않는가?: 대졸 20대 청년층의 졸업 직후 성별 소득격차 분석」(김창환, 2019)은 경력단절이 일어나기 이전인 대학 졸업 직후 18~24개월의 동일 경력을 가진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를 살펴본다. 최대한 요약적으로 내용을 전달하자면, 기본 배경(거주지역, 출생지역, 부모의 학력과 소득)과 함께 경력 연수를 통제할 경우 남성과 여성은 무려 19.8%의 임금 격차를 보였다. 저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출신대학, 세부 전공, 해외 연수 경험, 인턴 경험, 자격증, 아르바이트 경험, 심지어는 졸업 고등학교의 종류 등 “가능한 인적 자원을 모두 통제”해 봤는데, 놀랍게도 성별 간 격차가 고작 2.4% 줄어들어 17.4%의 임금 격차를 보였다고 보고한다. 저자는 동일한 능력을 갖춘 여성이 남성에 비해 적은 소득을 올리는 직무에 할당되기 때문에 여성은 이미 경력단절과 무관하게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이라고 이런 현상을 분석한다.

여성들이 그렇게 적은 소득과 기회를 가지는 직무에 할당되는 채용 절차는 거의 대부분이 분명 공정하게 집행됐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심사 대상이 가지는 특징에 따라 차별하는 불공정 채용이 사회 전반에서 이뤄졌다고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화제가 된 입시 비리 의혹과 동일한, 어쩌면 더 심각한 공정성 이슈다. 그럼에도 사회적으로는 두 사건을 병치하기조차 민망한 수준으로 반응의 격차가 심했다. 논문의 내용은 몇몇 매체를 통해 기사화되면서 나름 이슈가 됐지만, 눈에 띄는 반응의 대다수는 이 연구를 이해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자들에 의한 비난이었다.

저자는 본인의 블로그에도 논문 내용을 요약적으로 제시하며 논문 게재 소식을 전했는데, 이 결과를 잘 이해한 사람들조차도 간과된 변수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담긴 수많은 댓글을 남겨서, 몇몇 주요 질문에 답하는 후속 포스트가 올라올 정도였다. 문제 제기라는 것이 “여성의 수도권 선호로 수도권 지역에 남성 노동력(?)에 비해 여성 노동력(?)이 과잉 공급돼 수요와 공급법칙에 의해 여성 노동력의 가격이 하락했을 수 있습니다”다. 여성과 남성의 일자리가 상보적인 것처럼 서술하는 이 문장이, 내게는 말하는 사람의 염원을 담은 기도문이나 염불처럼 읽혔지만 김창환 교수는 문제 제기로 보고 데이터로 반박하는 친절함을 보였다. 어쨌든 그들의 믿음에 의하면, 여성은 합당한 이유로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이다. 그 이유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

육아로 발생하는 경력단절이 특정 성별에 집중돼 있는 것도 공정하지 않고, 더 많은 기회와 혜택을 제공하는 직장에서 동일 ‘스펙’의 지원자 중 특정 성별을 우대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이를 보여주는 수많은 사회적 증거와 연구가 있지만 단합된 문제의식도, 해결 방안도 없다. 특정 집단이 차별을 받는 양상만이 불공정이고, 그 이외의 집단은 차별받더라도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학부 시절 프랑스어를 수강하며 읽었던 교과서 본문 중 아직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하나 있다. 직장의 남성 상사와 여성 부하 직원의 대화로, 여성 부하 직원이 본인이 하는 업무가 너무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업무들이라고 불평하는 내용이었다. 부하 직원은 마치 우연인 것처럼(comme par hasard) 다른 남자 동료들은 중요한 일들을 맡아 경력을 쌓아 나가고 도전적인 환경에서 일을 한다고 항의한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내 여성 이슈만 예시로 들었지만 요 며칠 드는 생각을 하나 덧붙이자면, 나에게는 정도가 심한 장애를 가진 동료가 한 명도 없다, 마치 우연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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