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김채영 기자 kcygaga@snu.ac.kr
삽화: 김채영 기자 kcygaga@snu.ac.kr

지난 22일(금)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의 종료를 불과 여섯 시간 앞두고 조건부로 종료 시한을 연기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건 등과 관련해 한국에 ‘과장급 준비 회의 후 국장급 대화’를 제안했고 이에 우리 정부는 일본이 협상할 의지를 보였다고 판단해 지소미아 종료를 유예했다는 것이다.

발표대로라면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 유예를 대가로 일본을 수출규제 협상 테이블에 앉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협상 시한은 사실상 정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대법원에 강제징용 일본기업에 대한 한국 내 자산 현금화를 신청해 놓은 상태다. 이것이 실행되기 전에 수출규제 협상을 끝내지 않으면 일본은 테이블을 박차고 나갈 것이다. 대법원이 언제 이 조치를 실행에 옮길지는 알 수 없으나 관련 보도들을 종합해볼 때 연말에서 내년 봄 정도일 가능성이 높다.

협상 시한이 정해져 있으나 일본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시간이 오래 걸렸던 만큼 수출규제 협상이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 수출규제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서 기인한 것임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고 이 사안에 대한 한일 간 입장 차이는 크다. 현재 우리가 일본에 제시한 안도 있기는 하지만 이것을 일본이 받아들이더라도 이에 따른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설득 작업 또한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결국 협상은 자산 현금화 조치가 이뤄지기 직전까지 계속될 공산이 크다.

만약 내년 초까지 협상이 계속될 경우 수출규제 및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4월 총선의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 많은 사람이 외교와 국내 정치는 구분돼야 한다고 말하지만, 의도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서로가 영향을 미친다. 총선은 집권 세력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을 가진다. 문제는 현재 정부와 여당이 이뤄 놓은 성과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선거 지형은 여당에 유리하기는 하나 지난 지방선거 때에 비하면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다. 경제 상황도 좋지 않고 조국 사태와 같은 악재도 있었다. 이런 경우 외교로 자연스럽게 눈이 돌아간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성과가 있었던 지난 지방선거와 달리 지금 정부와 여당이 내세울 수 있는 외교적 성과는 거의 없다. 미국과의 관계도 방위비 문제 등으로 인해 힘든 상황이다. 대북 문제는 최근 김정은 초청 불발 건 등에서 볼 수 있듯 답보 상태다. 결국 일본과의 협상에 여론과 정치권의 시선이 쏠릴 가능성이 크고 이를 두고 지금보다 더 많은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이것이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예상하기는 힘들지만, 총선 정국이 대일 협상에 영향을 미칠 여지는 충분하다. 외교 당국은 국내 정치와 상관없이 오직 국익만을 위해 협상에 나서야 할 것이다. 

찝찝한 점이 없지는 않지만 어찌 됐건 지소미아 종료 연기로 지난여름부터 지겹게 이어진 ‘이 시국’도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이번 조치는 한일관계의 파국은 막았지만, 양국의 경색 국면을 연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평도 있다. 하지만 이번 발표 직후 양국이 한일정상회담에 대한 조율에 들어가는 등 관계 개선 움직임을 보여 적어도 이제 한일관계의 바닥은 지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를 가지게 한다. ‘이시국 씨’도 이제 쉴 때가 됐다.

여동하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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