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국선변호인제도의 문제와 개선 방안을 짚다

법에 전문적이지 못한 피고인은 국가의 사법권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피고인이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에, 국가는 피고인의 권리를 실효적으로 보장하려 국선변호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국선변호인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을 담당하고, 고유정 살인 사건의 변호를 일시적으로 맡는 등 국선변호인이 사회적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 당시 다섯 명의 국선변호인단은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 책임을 진 것”이라며 법적으로 무죄를 주장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국선변호인제도가 널리 알려진 제도로 자리매김하는 가운데, 제도의 허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이 국선변호인제도의 현황과 문제점을 살펴보고 개선 방안을 알아봤다.


수적으로 급증한 국선변호

과거 국선변호인제도는 일반 변호사들이 국선변호 업무를 간헐적으로 담당하는 형태로 운영됐다. 국선변호 업무만을 전담하는 국선전담변호사가 도입된 것은 2004년의 일이다. 국선변호인제도가 체계화된 것도 이때부터로, 현재는 국선변호만을 전담하는 국선전담변호사와 국선변호·일반변호 업무를 병행하는 일반국선변호사가 공존하고 있다. 

국선변호인제도는 도입 이래 국선변호인의 선임이 증가하는 등 발전을 보였다. 법원이 발표한 『사법연감』에 따르면 국선변호인 선정 건수는 2017년 기준 약 12만 9천 건으로 2004년의 9만 여 건에 비해 크게 늘었고, 전체 형사공판사건 피고인 중 국선변호인을 선정하는 비율도 약 20%에서 35% 내외로 크게 증가했다. 국회입법조사처 박혜림 조사관은 “선정 사건이 늘었을 뿐 아니라 국선변호인 선정 사유에서 경제적 이유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라며 양적 확대가 사회·경제적 약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국선변호인제도의 취지에 맞게 이뤄진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선변호인제도가 양적으로 확대됐음에도 불구하고 질과 관련된 운영상의 여러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성장한 국선변호가 그 규모만큼이나 적절한 질을 보장하고 있는지가 쟁점이 된 것이다.

출처: 사법연감
출처: 사법연감

 

심판이 수비수를 평가해?

현행 국선변호인제도는 법원이 운영하고 있으며, 법원은 국선변호인을 선임하고 평가할 뿐만 아니라 향후 재위촉 절차에 관여한다. 이를 두고 법원 및 재판부에 맞설 국선변호인이 법원에 종속돼 중립성과 공정성을 잃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러나 실제로 법원 혹은 재판부의 개입이 빈번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부 박상구 판사는 “국선변호인제도의 운영은 법원행정처가 전담해 판사들이 전혀 개입할 틈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선전담변호사 A씨(서울고등법원 소속)와 B씨(서울중앙지방법원 소속) 역시 재판부가 국선변호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국선변호 경력이 있는 법무법인 ‘위민’의 조수진 변호사는 “적극적 변론을 불편해하는 판사도 없진 않지만, 국선변호인이 적극적으로 변론하면 일을 열심히 한다고 좋아하는 판사들도 있다”라며 판사의 성향에 따라 판사의 간섭 여부가 갈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선변호인제도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공정성을 잃을 가능성이 처음부터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기원 변호사는 국선변호인이 법원의 영향을 받는 사례가 없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판사의 요구에 국선변호인이 불응하자 판사가 국선변호인의 선정을 취소하고 재위촉하지 않은 경우나 판사가 변호사의 감형 변론은 용인해도 무죄 변론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김기원 변호사는 “나중에 경력 판사로 임용되기를 희망하는 국선변호인은 판사에게 원만한 인품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변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국선변호인의 평가가 변호사가 배속된 재판장에 의해 이뤄지고, 그 평가가 위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며 “국선변호인이 법원에 종속될 가능성이 단 1%도 존재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질은 보장할 수 있을까?

일반국선변호사의 수임료가 변호 서비스의 질을 저하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일반국선변호의 수임료는 한 건당 약 30만 원에 불과하다. 조수진 변호사는 “이는 변호사가 수임하는 여타 사건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라며 “여러 사건을 동시에 담당하는 변호사 입장에서 사선변호사건에 비해 매우 적은 급여의 국선변호사건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기원 변호사는 일반국선변호를 두고 “국가가 변호인에게 노동의 가치 대비 낮은 금액을 강제하며 국선변호를 요구하는 것은 착취”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세밀하지 않은 수임료 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도 존재했다. 박혜림 조사관은 “국선변호 중에는 단순한 사건과 복잡한 사건이 있음에도 현행 제도는 사건의 난이도에 보수를 차등화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국선변호인을 선임하고 지정하는 과정도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현행 제도에서 피고인은 변호인을 선택할 수 없으며 국가가 피고인의 요청을 받아 변호인을 지정한다. 김기원 변호사는 “국가가 변호인을 지정하면 의뢰인에 대한 변호에 책임감을 느끼게 하기 어렵다”라며 “국선변호인의 업무태도를 수동적·소극적으로 만들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국선전담변호사 B씨도 “사법부에서 개인의 사정을 면밀히 고려하지 않고 국선변호인을 지정하기에 변호인의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에 대한 체계적·집중적 변호가 이뤄지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국선변호인 위촉 이후에도 드러났다. 박혜림 조사관은 “각급 고등법원에서 연 1회 정도 간담회를 열어 일회적이고 형식적으로 교육하는 게 국선변호인 교육의 전부”라며 위촉 후 관리 및 교육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쥐여 준 무기, 날을 세우려면

◇제도 운영의 독립성을 확보해야=국선변호인제도의 중립성 문제를 두고 국선변호인을 선임, 지정, 평가하는 주체를 변경하는 방향에 대해 다양한 안이 제시되고 있다. 김기원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변협)에서는 변협 산하 법률구조재단이 국선변호인제도를 운영하고 입법부가 이를 견제하는 안을 제시한다”라며 “변협이 국선변호인제도의 관리와 운영을 맡게 된다면 법원과 재판부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변협의 국선변호인제도 운영에 반대하는 목소리 역시 적지 않다. 조수진 변호사는 “이익 단체에 가까운 변협에 의해 국선변호인제도가 운영될 경우 공공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고 박혜림 조사관 또한 “변호사 집단이 국선변호인제도를 운영하는 일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라고 알렸다.

국선변호인제도를 운영하는 제3의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조수진 변호사는 “제3의 기관이 국선변호인제도를 운영한다면 중립성을 확보하기에 용이하고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변호사는 “공공단체와 관련된 행정소송, 민사소송은 정부법무공단이라는 독자적 단체가 변호하고 있다”라며 “형사재판 국선변호에도 같은 모델을 적용할 수 있다”라고 제안했다. 박상구 판사도 “제3의 기관이 운영해 공정성을 확보하고 변호 서비스가 개선될 수 있다면 논의할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긍정했다. 반면 독자적 기관에 의해 운영될 경우 충분한 예산확보 및 조직 구비는 어려울 수도 있다. 박혜림 조사관은 “새로운 기관을 설립하는 데 과도한 예산을 들이는 것보다 법원 내에 국선변호인을 담당하는 독립적 부처를 만드는 것이 더 낫다”라고 주장했다. 

◇업무에 집중할 환경 조성해야=국선변호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국선변호인에 대한 지원 체계의 개선이 필요하다. 조수진 변호사는 “국선변호인이 적극성을 갖고 나서도록 유도하려면 보수를 현실에 맞게 올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국선전담변호사 B씨 역시 “법원이 지급하는 임금에서 변호사가 고용하는 직원들의 월급이 나가는데, 최저임금은 매년 오르지만 국선변호 임금은 그대로다”라며 “지원 비용을 임금과 물가 상승에 맞춰서 책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기원 변호사는 “일반국선변호인에 대한 열악한 처우는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박혜림 조사관은 “국선변호인에 대한 비용 지원과 보수의 세분화를 통해 제도의 운영을 보다 체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박 조사관은 “범죄를 유형화해 난이도에 따라 보수를 지급하고 재판준비, 법정출석, 교통비 등의 구체적 항목과 기준을 마련해 비용을 지원하는 영국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미국은 국선변호인에 대한 직무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고, 일본은 변호기술연구실과 업무지원실을 통해 국선변호인들끼리 업무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한국도 선진국의 사례를 본보기로 국선변호인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로스쿨 제도 도입 이전 한국에서 변호사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 사회적 약자들은 변호 서비스를 쉬이 이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변호사의 초과공급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변호인 없는 ‘나홀로 재판’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회적 약자에 무기를 제공하는 국선변호인제도의 날이 무뎌지지는 않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약자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재판에 나설 수 있는 한국 사회를 기원해본다.

 

삽화: 홍해인 기자 hsea97@snu.ac.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