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빈집프로젝트’에서 지역의 예술을 만나다

빨간 벽돌집 사이 통유리에 비친 하얀 스튜디오가 눈에 들어온다. 금천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빈집프로젝트’(Be-in House) 1가(家)의 모습이다. 금천구 독산동에서 진행되는 빈집프로젝트는 2017년 주민들의 일상 속 예술 체험의 기회를 넓히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됐다. 다양한 나이, 직업, 문화적 배경을 가진 주민들은 빈집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예술의 언어로 풀어낸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다시 모여 빈집을 채우고, 나아가 지역의 풍경을 바꾼다.

금천구 독산동, 그리고 빈집

‘빈집프로젝트’라는 말을 들으면 허물어져 가는 낡은 집을 고쳐 새롭게 만드는 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여기서 빈집은 포괄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으로서, 빈집프로젝트는 ‘비어 있는 무채색의 공간을 문화 예술로 채운다’라는 의미다. 독산동은 금천구에서 특히 문화 예술 인프라가 부족한 곳이다. 지역 내에 미술관이나 갤러리 등 주민들이 예술을 접할 수 있는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천문화재단은 주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 예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독산3동 일대의 빈집을 물색했다. 금천문화재단 문화사업팀 박나혜 과장은 “주민들 사이에서 가장 큰 도로로 유명한 ‘20m 도로’를 주변으로 적합한 공간을 찾았다”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찾은 첫 공간이 1가다. 2018년에는 추가로 2가와 3가를 개방했다. 예술가의 리모델링을 거친 공간은 그들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따라 자유롭고 예술적인 곳으로 꾸며졌다. 

1, 2, 3가는 저마다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다. 1층에 위치해 가장 접근이 쉬운 1가는 빈집프로젝트를 주민들에게 알리고 문화 예술에 대한 심리적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주로 지역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곳에서는 주민끼리 SNS에 인상 깊었던 책 글귀를 공유하는 ‘독산책방-독서왕 선발대회’ 등 예술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주민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열린다. 2가에서는 실험적 전시와 문화 예술 교육 프로그램이 실시된다. 마지막으로 3가에서는 참가자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문화 예술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예술 창작을 통해 참가자의 오감을 자극하거나 기억을 떠올리게 해 이들의 내면을 치유한다. 

세 공간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빈집’이 되기 전에 봉제 공장이었다는 점이다. 박나혜 과장은 “구로 디지털 단지의 영향으로 독산동 곳곳에 봉제 공장이 있었다”라며 “공장의 레일 모양으로 형광등을 배치하는 등 빈집의 리모델링에 지역성을 반영했다”라고 말했다. 

빈집프로젝트 1가에서는 독산동 주민과 함께하는 지역 연계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사진제공:빈집프로젝트)
빈집프로젝트 1가에서는 독산동 주민과 함께하는 지역 연계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사진제공:빈집프로젝트)

독산 사람들의 이야기

이처럼 빈집프로젝트는 독산동의 지리적 특징을 고려해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프로젝트의 목표가 주민들이 일상에서 문화 예술을 경험하게 하는 것인 만큼 주민들의 참여가 절실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이들이 문화 예술을 향유할 시간을 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젝트의 활동가가 직접 주민의 일터에 방문해 점심시간에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예술 코디네이터가 남문 시장 상인과 함께 작업해 가게 간판을 만들고 사진을 찍어 전시하는 출장 프로그램이 그 예다. 

인구 이동률이 낮고 노령 인구가 많은 독산동의 특성을 고려한 프로그램도 있다. 중장년층 참가자가 기억에 남는 순간 속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나의 이야기’와 ‘섭리의 집’ 요양원의 할머니들이 예술가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스물다섯 송이의 꽃’이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예술에 노출될 기회가 적은 연령층에 삶과 예술을 연결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빈집프로젝트에 참여한 주민들은 독산동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나와 독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가에서 진행한 지역 연계 프로그램 중 하나인 ‘독산 사진관 - 릴레이 사진’은 주민들의 초상을 찍고 이들을 인터뷰해서 책자를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이는 뒷사람이 앞사람의 사진을 들고 사진을 찍는 릴레이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여러 명의 초상이 군상을 이루며 독산의 풍경을 그려냈다. 오윤지 코디네이터는 “릴레이 초상 사진을 찍은 주민들은 서로 아는 사이여서 사진 속의 사람이나 그들이 사는 동네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 외에도 금천의 풍경을 스케치하는 ‘금천을 컬러링’이나 금천의 풍경을 에코백으로 만드는 활동 등 ‘집’과 관련된 지역민의 삶과 추억을 예술로 담아내는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잘 알려지지 않아 주민의 참여율이 낮다는 어려움도 있다. 박나혜 과장은 “SNS 등을 활용하고 아파트 단지에 전단지를 배송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홍보했지만, 여전히 주민들의 관심이 부족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프로젝트에 새로운 주민의 유입이 저조하다”라며 “문화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적 문턱을 낮추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있다”라고 말했다. 

빈집에서는 나도 예술가

일반 동사무소의 문화센터에서 하는 활동은 교육이나 재미가 목적이지만, 빈집프로젝트의 프로그램은 ‘예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로 빈집프로젝트의 예술 활동가는 대부분 문화 예술 관련 전공자며 현재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도 많다. 특히 이규원 예술 활동가가 2가에서 진행하는 ‘그리고 아트’에서는 참가자가 네 번에 걸쳐 젊은 작가들의 전시를 감상하고 아티스트 토크를 통해 예술가가 사물을 보는 시각을 배운다. 이를 바탕으로 참가자는 직접 자신의 작품을 만듦으로써 예술적인 감각을 키울 수 있다. 이규원 활동가는 “고등학교 이후 30년 만에 붓을 처음 만져 보는 아주머니를 포함해 참가자 대부분이 예술과 거리가 먼 비전공자였다”라며 “처음에 이들은 캔버스 앞에서 어색해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은 열정적인 예술가로 변했다. 한 참가자는 활동 시간 안에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면 이를 집에 가져가서 마무리하는 등 자신의 작품에 열정과 자부심을 느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규원 씨는 “미대생 등 예술과 실질적으로 연관된 사람을 가르칠 때보다 빈집프로젝트에서 예술에서 소외됐던 사람과 같이 작품을 만들어 가면서 큰 의미와 보람을 느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처럼 빈집프로젝트의 예술 활동가들은 예술 비전공자가 대부분인 금천구 주민과 함께 호흡하며 성장하는 특별한 경험을 한다. 3가에서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김예나 예술 활동가는 “비전공자를 가르치는 것이 어렵다기보다는 오히려 제 작업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라며 “참가자가 창의적이고 자유롭게 재료와 색채를 활용하는 것을 보며 전공자로서 갖고 있었던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규원 씨 또한 “빈집프로젝트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작가를 넘어 전시 기획자라는 새로운 꿈도 갖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전공자와 비전공자가 예술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소통하며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빈집프로젝트는 문화 예술에 접근이 어려운 금천구 사람들이 일상에서 예술의 순간을 발견하고, 이를 삶의 다른 영역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박나혜 과장은 “문화와 예술을 통해 사람들의 삶이 더 유연해지고 풍족하게 만들고 싶다”라고 프로젝트의 최종목표를 밝혔다. 세 살배기 아이부터 여든 할머니까지 빈집에서는 모두 예술가가 돼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채워 나간다. 자신의 ‘빈 곳’을 아름다움으로 채우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이고 예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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