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경영극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영원할 것이라 믿은 관계가 깨질 때 우리는 사랑을 의심한다. 지난 23일 막을 내린 경영극회 제40회 정기공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네 주인공 승혁, 혜정, 가영, 사랑처럼 말이다. 

극은 다나베 세이코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을 각색했다. 혜정의 감정 변화에 초점을 맞춘 소설과 다르게 극은 네 명의 인물을 동등한 분량으로 다루면서 그들의 관계에 주목한다. 승혁은 유모차를 끄는 할머니를 돕다 유모차에 타고 있던 혜정을 처음 마주한다. 다리가 불편한 혜정은 집 밖으로 나올때면 항상 할머니가 끌어주는 유모차에 타야만 했다. 이런 혜정에게 첫 눈에 반한 승혁은 이후 그녀의 집에 자주 놀러가 밥을 얻어먹는다. 그리고 그는 집과 유모차를 수리하며 밥값을 한다. 

한편 가영은 승혁의 여자친구고 승혁의 동생인 사랑은 가영을 짝사랑한다. 점점 가까워진 혜정과 승혁의 관계는 넷 모두의 감정을 뒤흔든다. 모두가 사랑과 질투, 미움 등의 복합적인 감정으로 얽히게 되는 것이다. 복잡하게 묶인 이들의 사각 관계는 각자에게 거듭 상처를 낳는다. 결국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서로였다.

그래도 서로가 필요한 것이 인간이다. 승혁과 혜정이 읽는 책 속에서 주인공 조제와 베르나르는 연인이었지만 결국 헤어진다. 승혁은 혜정이 ‘조제’고 자신이 ‘베르나르’라면 자신들의 사랑이 무슨 의미냐고 묻는다.

“우린 다시 고독해지겠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랑을 하는 걸까?”

이런 승혁의 물음에 혜정은 책을 가져와 그 뒷 구절을 소리 내어 읽는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면 우리는 모두 미쳐 버리게 돼요.”

승혁은 평소 혜정이 타고 다니던 유모차를 바라보고 있고, 혜정은 그런 승혁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어 준다. (사진제공:경영극회)
승혁은 평소 혜정이 타고 다니던 유모차를 바라보고 있고, 혜정은 그런 승혁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어 준다. (사진제공:경영극회)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기대하고 상처받는다. 그럼에도 사랑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하며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만든다. 승혁과 혜정이 처음 만났을 때, 혜정은 유모차 속에서 이불을 덮고 세상을 봤다. 하지만 극의 마지막에 이르면 혜정은 동생에게 휠체어를 사달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유모차에서 벗어나 스스로 휠체어의 바퀴를 돌려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혜정에게서 우리는 그녀가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변한 것은 승혁도 마찬가지다.

“끝없는 터널, 이제는 그 끝에 다다른 것 같아.”

승혁의 독백은 자신의 전부였던 야구 선수라는 꿈을 잃고 공허함 속에서 방황했던 그가 삶의 의미를 되찾았음을 보여준다. 이제 혜정과 승혁은 서로를 만나기 전과는 달리 세상에 당당히 맞선다. 

극 후반부에서 혜정과 승혁은 함께 호랑이를 보러 간다. 사랑하는 승혁과 함께기에 혜정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했던 호랑이를 당당히 볼 수 있다. 극을 본 사람이라면 만남과 헤어짐을 어떻게 무의미하다 할 수 있을까.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새로운 만남을 꺼리는 사람들에게,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에게 극은 따뜻한 위로의 손길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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