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가 그 주인에 대해 말해 주는 경우가 있다. 쓰레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1999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하성란의 소설 「곰팡이 꽃」은 퉁퉁 불어터진 라면 가닥이 엉겨 있고, 악취 나는 오물이 담긴 타인의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낯선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욕조 속에 쓰레기봉투를 해체해 그 내용물을 파헤치면서 타인을 탐구한다. 

그가 이런 괴이한 취미를 갖게 된 것은 전국적으로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된 해인 1995년부터다. 쓰레기 종량제에 대해 의식하지 못했던 그는 종량제 봉투가 아닌 검은 봉투에 쓰레기를 배출했다. 내용물로 그를 찾아낸 부녀회 사람들은 남자를 찾아와 한바탕 힐난을 하고 떠났다. 남자는 자신이 버린 것임에도 낯선 인상을 주는 그 쓰레기봉투 안에서 짝사랑하는 이에게 썼지만 미처 부치지 못했던 편지를 발견하고, 쓰레기 더미 속에 삶의 진실이 있다고 믿게 된다. 

쓰레기봉투 속에는 라면, 고무장갑, 섬유유연제 비닐 등 각종 인공의 상품이 담겨 있다. 녹차 티백 찌꺼기와 다이어트 콜라, 손도 대지 않은 채 문드러진 케이크를 통해 그는 쓰레기봉투의 주인이 다이어트 중이라는 추론을 내리기도 한다. 찢긴 청구서를 퍼즐 게임하듯 조각조각 맞추거나 생크림이 묻은 종이쪽지를 닦아 내면 익명의 그 또는 그녀였던 주인의 이름과 호출기 번호가 드러난다. 

1990년대 말에 발표된 이 소설은 소외된 현대인의 소통에 대한 욕망을 보여 준다. 그는 버려진 쓰레기를 통해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취향, 성격, 가족 상황이나 개인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타인들만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소통의 방법은 쓰레기를 뒤지는 일뿐이다. 이 소설의 핵심은 “도대체 알 수가 없다니까. 진실이란 것은 쓰레기봉투 속에서 썩어 가고 있으니 말야”라는 구절에 함축돼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곰팡이 꽃을 피우며 썩어가는 진실, 그리고 타인과의 소통 가능성에 대한 일말의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곰팡이 핀 케이크에서 쓰레기에도 피는 꽃이 있음을 발견하는 작가의 시선에는 인간과 삶에 대한 따뜻한 응시가 묻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얼마 전, 낯선 이국에서 소 한 마리가 쓰레기 더미에서 음식물을 찾고 있는 사진을 봤다. 뿔에 노란색의 반투명 비닐이 감겨 있는 그 소는 알록달록한 비닐과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쓰레기 더미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모습이었다. 쓰레기를 파헤치면서 타인에 대한 진실을 찾는 그 남자와 처음 조우했을 때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동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뉴스는 몇 해 전부터 들려왔었다. 그런데 한 장의 이미지가 더 강렬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며칠 전에는 또 다른 이국의 국립공원에서 갑작스럽게 죽은 사슴의 배 속에 고무장갑, 라면, 수건, 플라스틱 등의 쓰레기가 가득했다는 뉴스도 들려왔다. 

인터넷 지식백과에 의하면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인공물 중 가장 큰 것인 태평양의 쓰레기 섬은 위의 소설이 나온 때와 비슷한 시기인 1997년에 발견됐다고 한다.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바야흐로 패션마저도 패스트푸드처럼 빨리 유통되고 소비되는, 최신 트렌드에서 벗어나면 가차 없이 폐기되는 ‘패스트패션’의 시대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웬만한 치약, 섬유유연제, 스크럽 등에는 미세 플라스틱이 들어 있다. 여름이면 투명 컵에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입에 달고 살았던 나 또한 인공물이 주는 편리함에 쓰레기 섬을 외면하고 있었다. 이제는 곰팡이 꽃도 피우지 않는, 썩지 않는 진실을, 내가 만든 쓰레기를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쓰레기가 그 주인에 대해 말해 주는 경우가 있다.

유예현 간사

삽화: 김채영 기자 kcygaga@snu.ac.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