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부 이현지 기자
취재부 이현지 기자

친구가 한 계절 내내 이유 없이 아팠던 적이 있다. 큰 병원에 가도 뚜렷한 병명을 찾지 못한 채 친구는 힘들어하기만 했고 나는 공허한 응원밖에 하지 못했다. 나중에야 그게 실은 우울증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음의 병이 몸으로도 전이될 수 있다는 걸, 우울은 내 곁에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처음 ‘우울감’이라는 소재를 고르고 교내 학생상담센터와의 취재를 준비할 때, 다른 기자들이 상담사 선생님들과 이야기해 보면 내게도 도움이 되겠다고 많이들 말했다. 반신반의했다. 인터뷰는 기사를 쓰기 위함이지 거기서 내 문제를 논의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서울대생의 우울감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생생히 들으면서도 그게 진심으로 ‘내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오만하고, 또 그만큼 가시를 잔뜩 세우고 있었구나 싶다. 어쩌면 나는 줄곧 내 민낯을 인정하기가 두려워 객관적인 척 기사를 준비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넉 달간, 정말 많은 분께 숱한 이야기를 들었다. 연건학생지원센터에서도 도움을 주셨다. 서면이든 대면이든 미숙한 기자에게 바쁜 시간 내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다들 내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평소 여러 학생에게서 자주 목격한 모습만 말씀해주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량 때문에 기사에는 전부 담지 못했지만, 정형화할 수 없는 수많은 우울감과 사연이 있었다. 그것들이 가슴께 차곡차곡 쌓였다.

한 달간의 신문사 방학 일정이 막바지에 달했던 7월 말, 그달의 마지막 취재를 위해 자연대 상담실에 갔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감사 인사를 건네고 신문사로 돌아가는데 눈물이 났다. 이 모든 게 결국 ‘내 이야기’기도 하다는 걸 나는 그제야 인정하게 됐다. 우울은 내 곁에 도사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냥 내 마음속에도 있었다. 대학은 낯설고 공부는 안 되고 타인의 삶은 멋지기만 한데 나는 한없이 줄어들어 캠퍼스를 헤맨다. 끝도 없는 욕심을 채우기 힘들어서 도망치기도 했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놀면 안 되는데, 뭐라도 해야 하는데, 그런 불안이 늘 뒤를 쫓았다. 요 몇 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기사를 준비하다 외려 내가 우울해지겠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기사를 쓰는 일은 결국 내가 나를 달래는 시간이었다. 좀 더 내려놓아도 괜찮고 힘이 나지 않으면 쉬었다 가도 괜찮다고 내게 되뇌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충 살기로 했다. 사실 말이 쉽지 잘되지는 않는다. 당장 저번 중간고사만 해도 나는 나를 몰아붙였고 나는 아주 우울했다. 그래도 나는,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거울 속에 갇힌 채 울상을 짓고 있는 ‘나’를 알아주려 애쓰기로 했다. ‘젊은 서울대생의 우울’이 독자들에게도 자신을 돌아보는 잠깐의 순간이나마 벌어 줄 수 있기를 감히 바라본다. 우리가 우리를 온전히 사랑하는 첫걸음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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