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간 교내외에서는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해 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에서 드러난 논란들과 장학제도 개편, 총학생회 「내일」과 관련된 이슈들, 생활협동조합(생협)의 열악한 노동환경 및 노조 파업, 홍콩 시위 등 여러 가지 사건들은 많은 학생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공론의 기회를 만들어 냈다.

학생들은 에브리타임, 스누라이프, 공개 집회와 같이 다양한 플랫폼에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자유로운 의사표시로서 정당한 주장으로 간주됐지만, 일부 차별적이거나 혐오를 내포한 발언을 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제지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글 등에 무관심한 편이다. 그래서 교내외 소식이 궁금할 땐 대자보를 자주 활용하는데, 사회에서 화제가 되는 이슈들을 쉽게 접하고 이에 관련된 다양한 의견들을 들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훼손되기 전까지 중앙도서관 벽면에 마련된 레넌 벽을 보면서 홍콩 민주화 시위의 지지자들이 교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학교 측이 레논 월을 철거하거나 작은 게시판으로 이동해 달라고 요청한 결정은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중앙도서관은 신청 절차를 거친 게시물만을 게시해야 하고, 면학 분위기 조성과 학생 간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됐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한·중 학생 간의 갈등 상황에서 중앙도서관이 게시물의 철거 명령을 내린 것은 중국인 유학생들의 의견에 더 비중을 둔 행동으로 보인다. 철거라는 다소 극단적인 수단이 아니어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커뮤니티들에서도 과격하거나 이른바 ‘선을 넘은’ 발언들이 종종 등장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공론화를 거치면서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담론들이 주를 이루는 양상이 나타나게 됐다. 이는 결론적으로 집단 간 갈등의 원천을 차단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많은 사람이 담론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존하는 조치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역사적으로 대자보는 대학교 내에서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게재 내용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그 의미를 퇴색시킬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에 일어났던 민주화 운동 당시 대자보는 학생들에게 민주화와 연대의 필요성을 피력하는 주된 창구였다. 객관적인 사실 전달이 목적이고 형식이 존재하는 뉴스와 달리 주장이 다소 포함돼서 호소력이 짙었고, 일정한 형식이 없어 대중들의 생활과 밀착돼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러한 특징과 기능들은 현대에 와서 SNS로 대부분 이동했지만,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라는 대자보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았고, 또 사라져서도 안 된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학교 측의 대응은 대자보의 설치 목적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

이시흥

사회학과·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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