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담은 시에서 위로를 찾다’라는 기사를 지난 호 『대학신문』에서 우연히 읽었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최근의 일상이 퍽퍽해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학생이 되기 전에는,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가고 싶은 곳도 많았다. 그런데 과제를 하느라 아무것도 못 하고 있을 때면 답답하고 숨이 턱 막힐 때가 있다. 그렇지만 숨이 막히다가도 작년에 수능을 준비하며 바둥거리던 것을 기억하면 ‘이만한 생활도 괜찮은 것이지, 예전에 비하면 양반이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요새 학교에서 면접 응원으로 동기들이 이런저런 준비를 하는 것이나, 또 갓 고등학생이 된 것 같은 학생들이 검은 패딩을 껴입고 학교 여기저기를 구경 다니는 것을 보면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나도 이전에는 선배들에게 응원을 받고, 고등학교 신입생 때 서울대에 들러 ‘아, 여기가 서울대구나. 정문의 샤는 생각보다 작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예전에 소설 「광장」을 읽던 생각이 났다. 「광장」에서 이명준은 『대학신문』을 겨드랑이에 끼고 걷는다. 내가 예전에 다니던 학원 선생님은, 이명준의 이야기를 하면서 “『대학신문』은 서울대 신문이다. 학교 신문 이름을 『대학신문』이라고 붙이는 것이 오만하지 않으냐”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내가 지금 『대학신문』을 읽는 일이 꽤 재미있게 느껴졌다.

연희문화창작촌에서 오디오극 <시로, 서로, 위로>가 열렸다고 한다. 창작촌 내 12개의 공간에, 시에 맞는 배경과 오브제를 뒀다고 한다. 나는 기자가 적은 글을 따라 창작촌을 걸었다. 처음은 「월요일」이라는 시였다. 「월요일」이라는 시는 “처음은 자꾸 지나간다”라는 말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오브제로 책걸상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 오브제와 시를 생각하며 나에게 지나간 수많은 처음을 생각했다. 예전에는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참으로 소중한 것이 많았었는데, 자꾸만 하나씩 없어져 갔다. 시는 처음은 지나갔다고 말한다. 수많은 처음이 지나간 것을 생각하니, 왠지 서글퍼졌다. 

그리고 박연준 시인의 「아버지의 방」이라는 시를 읽었다. 나는 시를 읽고 내 아버지를 생각했다. 시 속의 아버지는 키가 작다. 나는 요새 문득 내 어린 시절의 아버지보다 작아진 아버지를 보곤 한다. 아마도 시인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봤을 것이다. 또 나는 “문이 없고, 세월이 없는 그 속에서”라는 구절에서 우리 어머니 생각을 했다. 이전에 듣기로는 어머니는 결혼하면서 본래 하시던 일을 그만두셨다. 그리고 한참을 아내로 살고 어머니로 살았다. 어린 시절에는 나처럼 꿈이 있었을 어머니에게 그 시절은 문도 세월도 없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불 꺼진 방에 널브러진 수건과 양말이라는 배경이 그런 생각을 더욱더 깊게 했다.

글을 따라 창작촌을 걸었다. 『대학신문』으로 시를 읽으니, 이런저런 생각도 나고 마음이 새로웠다. 『대학신문』에서 좋은 시나 문화 행사를 좋은 기사로 자주 소개해 줬으면 좋겠다. 지쳐서 잠시 쉬고 싶을 때, 모르는 누군가에게 자상한 위로를 받고 싶을 때, 가끔은 시를 읽으며 추억에도 잠겨 보고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생각해 보기도 하도록 말이다.

허진우 

윤리교육과·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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