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서울대생의 우울
젊은 서울대생의 우울
  • 이현지 기자
  • 승인 2019.12.0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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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서울대생이 겪는 우울의 모습을 그리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낮과 깊은 수렁에 빠지는 밤이 있다. 우울감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봤을 감정이지만 마음이 가라앉을 때면 괴로움은 여전하다. 우리는 왜 우울하며 일상 속에서 우울감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언제까지 우리는 우울감을 혼자 껴안고 버텨내야만 하는가? 알면서도 줄곧 외면한 그 감정을 『대학신문』이 쫓아가 봤다.

 

 

우울감이 서울대에 스며들어 있다. 작년 평의원회에서 발간한 ‘서울대학교 학생 복지 현황 및 발전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응답한 학부생과 대학원생 1,491명 중 29%가 가벼운 우울증, 15%가 중간 정도 우울증, 2%가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답변했다. 전체의 40%가 넘는 수치다. 같은 해 대학생활문화원(대생원)이 학부생 1,168명을 대상으로 ‘대학 생활 의견 조사’를 진행했을 때도, 대학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고민을 묻는 문항에서 심리 문제는 5점 만점 중 평균 2.95점으로 진로와 학업 다음으로 높았다. 대생원 윤숙경 전문위원은 “내담자의 상담 신청 이유를 살펴보면 정서적 힘듦이 약 40%고, 그중 절반이 우울이다”라고 알렸다.

단, 우울감과 우울증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우울한 기분은 일시적이고 가벼우며, 일상생활에 큰 무리를 주지 않는다. 반면 우울증으로 널리 알려진 ‘우울장애’는 주요우울장애나 기분부전장애 등 우울감을 중심으로 일정 기간 이상 슬픔과 불안, 공허 등의 증상을 보이는 질병을 일컫는다.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5)은 우울장애 진단 척도의 9개 증상 중 우울한 기분이나 흥미 및 즐거움의 상실 중 하나를 포함한 증상 5개 이상이 2주 넘게 지속하며 일상생활 기능을 명백히 저하하는 것을 주요우울장애로 판단한다. 김은영 교수(의학과)는 “어떤 사람은 일부 조건에만 해당하는 등 우울감과 우울장애는 혼재돼 있다”라며 “치료의 필요성을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일상생활 기능이 무너지는지 여부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우울한 기분과 우울장애 사이 회색 지대에는 당장 치료가 필요하지는 않더라도 사람을 괴롭히는 우울감이 존재한다. 관악사 학생상담센터 ‘관심’ 박지향 상담사는 “자신이 느끼기에 제 상태가 이전과 다르고 힘들다면 도움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울감의 원인은 사람마다 다르며 그 양상도 천차만별이다. 학내 학생상담센터 상담사 8명의 인터뷰에 기초해 학생들이 흔히 겪는 우울감과 그 원인을 네 가지 키워드로 추리고 서울대생의 의견을 들어봤다.

[완벽주의] 높은 기대치에 기인한 완벽주의는 우울감의 흔한 원인이다. 학창 시절 이뤘던 학업적 성취가 높은 기대치의 근거가 되는데, 대인 관계나 진로 등 인생 전반이 완벽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자연대 학생상담센터 ‘자:우리’ 김수진 상담사는 “객관적으로 괜찮아 보여도 이상적인 자기상을 유지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교는 자주 완벽주의의 수단이 된다. 주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자신만 뒤처진다는 생각에 우울해하는 것이다. A씨(23)는 “과제를 하는 내내 ‘나는 힘든데 다른 사람은 쉽게 하겠지?’라는 생각에 더 힘들었다”라고 말한다. 윤숙경 전문위원은 “고등학교와 달리 대학에서는 주변과 비교해 성취를 확인하기 어려워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부각된다”라고 설명했다. 

우울감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우울감을 의지 부족으로 치부하고 자신을 비난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핍을 채우기 위해 학생들은 자신을 다그치는데, 교수학습개발센터 학습상담실 박알뜨리 상담사는 이를 “일어서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텐데 어른의 ‘나’가 아이인 ‘나’를 혼내기만 하는 상황”이라고 묘사했다. 우울감이 심해져도 ‘누구나 다 이만큼 힘들다’라는 생각에 과업에만 매달리는 학생도 있다. 김은영 교수는 “목표지향적으로 살아오느라 휴식을 비생산적으로 여겨 쉬면서도 불안해한다”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기대치를 낮추기 어렵다면 이상을 추구하느라 생기는 어려움을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박알뜨리 상담사는 “내 안의 건강한 욕망을 인정하고, 잘 안 될 때는 스스로 달랠 줄 알아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실패] 실패 경험에 따른 좌절도 우울감과 연결된다. 학창 시절 성공 경험에 익숙해져 노력의 보상이 없는 상황 자체를 낯설어한다는 것이다. B씨(20)는 “대학에 온 후 내가 ‘항상 합격’인 사람이 아님에 충격을 받았다”라고 말한다. 자존감을 뛰어난 수행 능력에서 찾는다면 실패했을 때 자기 수용은 더 어려워진다. 박알뜨리 상담사는 “자신이 공부를 기대만큼 못하면 자기 존재 가치가 훼손되고,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식이다”라고 풀이했다.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기대를 내면화한 이들에게 실패는 더 괴롭게 다가온다. 김수진 상담사는 “소위 ‘사회적 평가’가 박한 길을 선택하면 실패자가 된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다. 윤숙경 전문위원은 “외부 압박을 자신에게 맞는 형태로 조절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실패를 겪는 것은 당연하다. 김수진 상담사는 “대학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다 보면 당연히 미숙함도 느끼는데 이를 큰 약점으로 인식한다”라며 “한국 교육이 학생들에게 전인적인 성장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C씨(20)는 “연애를 하거나 사람들과 활발히 지내는 동기들의 SNS를 보며 자책하기도 했다”라고 토로했다. 박알뜨리 상담사는 “실패로써 배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모두 ‘실패’해도 ‘괜찮은’ 사람들인 것이다.

[대인관계] 사람들과 어울릴 때 겪는 어려움은 우울감을 촉발하기 쉽다. 자신에 대한 비합리적 인식은 인간관계를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다. 박지향 상담사는 “‘나는 가치 없는 사람’ 같은 부적절한 인지 체계를 형성하면 쉽게 넘길 수 있는 상황도 받아들이기 힘들어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대인 관계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원인이 된다. 김동일 교수(교육학과)는 “입시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관계나 정서 경험은 미뤄 둔 경우가 많다”라며 “지적 성취 경험과 관계를 다루는 능력 사이의 격차 때문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라고 해석했다.

관계 맺기에 서툴러 겪는 불편함은 집단 안팎에서 나타난다.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도 이곳이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닌 것만 같은 부적절함을 느끼는 식이다. 인문대 학생생활문화원(생생원) 허효선 상담사는 “끊임없이 눈치를 본다거나, 주변과 어울리기 위해 자신을 억누르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무리에 들어가고 싶어도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김수진 상담사는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춰지는지 알지 못한 채 거부를 경험하고, 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것”이라며 “노력해도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 것에 좌절해 상담센터를 찾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인싸’(인사이더)와 ‘아싸’(아웃사이더)를 구분하는 유행이 대인 관계를 어렵게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지향 상담사는 “인싸가 되기 쉬운 사람과 굳이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사회가 전자만 부각하니 후자가 부담을 느끼게 된다”라고 말했다. 관계를 맺는 방식이 폭넓게 존중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번아웃] 번아웃 증후군은 일에 몰두하다 신체적·정신적 에너지를 전부 소모해 무기력에 빠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주요 증상으로는 △감정적 피로감 △냉소적인 태도 △효율성 및 성취감의 감소가 있는데, 주요우울장애의 주된 증상이 지속적인 우울한 기분과 흥미·즐거움의 감소인 것과는 구별된다. 윤숙경 전문위원은 “힘이 떨어져도 계속해서 자신을 다그치다가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라고 설명했다. 고등학교에서 학업에만 치중한 경험도 영향을 미친다. 김동일 교수는 “다른 일은 비정상적으로 미뤄 두고 공부에만 몰두해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번아웃 증후군 치료는 자신의 상태를 알고 휴식을 취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변의 도움도 필수적이다. 김동일 교수는 “번아웃에서 벗어나려면 혼자 힘으로는 부족하다”라며 “무기력한 개인을 발견하고 돕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우울감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윤숙경 전문위원은 “계속되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해야 한다”라고 설명한다. 우울감을 비정상적이라 여기지 않는 것은 우울감을 마주하는 첫걸음이다. 박지향 상담사는 “우울감을 감기 앓듯 지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울감이 상대적임을 아는 것 또한 중요하다. 허효선 상담사는 “다른 사람이 어떻든 내가 힘들면 힘든 것이다”라며 “‘고작 이것 때문에 상담을 받아야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우울감을 겪으며 한 단계 도약할 기회를 찾을 수도 있다. 김은영 교수는 “정신건강센터를 찾는 서울대생은 우울감을 경험하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의미를 잘 끌어내는 편”이라고 말했다. 

상담센터를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김동일 교수는 “상담은 내 감정이 일반적인지 탐색하고, 자신을 정상화하는 일을 안전하게 해내도록 돕는다”라고 말했다. 상담만으로 완전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상담의 의의는 함께 고민을 시작하는 데 있다. 김수진 상담사는 “상담을 통해 현실적인 면을 받아들이되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고 수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라고 전했다.

현재 서울대에는 보건진료소 정신건강센터, 연건학생지원센터, 대생원과 더불어 관악사 학생상담센터와 단과대 학생상담센터 9곳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 상담센터가 주로 심리적 문제를 다루는 한편, 경력개발센터는 진로 상담, 교수학습개발센터 학습상담실은 학업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학생이 소속감을 느끼도록 돕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수진 상담사는 “학교가 갈 곳 없는 학생이 마음을 붙일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일례로 대생원의 단체 상담 프로그램 ‘학관밥 대선생’은 학습 방법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함께 밥을 먹으며 관계를 형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윤숙경 전문위원은 “학생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공동체를 만들고자 한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담을 받기까지 오래 대기해야 하는 점은 교내 학생상담센터의 고질적인 문제다. 두 달 넘게 상담을 기다리다 혼자 문제를 해결했다며 상담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상담 인력 부족이다. 예를 들어 작년 인문대 생생원을 찾은 학생은 약 80명이었지만 근무 인원은 파트타임 상담사 3명이 전부다. 상담사 한 명이 일주일에 8건가량의 상담을 진행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턱없이 모자란 수다. 허효선 상담사는 “고민 끝에 상담을 신청했는데 또 기다려야 하면 맥이 빠질 것”이라며 “대기하는 학생이 거절당했다고 느끼지는 않을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대생원은 대기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접수 체계를 바꾸고 개인 상담 횟수를 줄였다. 원래 한 사람당 15회 진행되던 상담이 12회가 됐다. 윤숙경 전문위원은 “덕분에 학생이 거의 대기하지 않고 상담을 받게 됐지만, 상담이 중도에 끊기는 경우가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허효선 상담사 역시 “현재 생생원은 15회간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러려면 당면 상황에만 초점을 맞춰야 한다”라며 아쉬워했다.

이렇다 보니 예방 프로그램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지향 상담사는 “자기 계발 등 긍정적인 면을 강화하는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싶은데 지금 인력으로는 역부족이다”라고 토로했다.

우울감은 지혜로운 자의 전유물이라고 한다. 우울감은 자신을 돌아볼 때 발생하며, 성장의 열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슷한 우울감이라도 이미 마음에 취약점이 있는 사람에게는 우울감이 쉽게 상처가 된다. 오늘은 일상을 파고드는 우울감을 무작정 참지 말고, 자신을 달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은 어떨까?

*서울대 24시 심리 상담 전화 SNU Call: 02-880-8080

삽화: 김채영 기자 kcygaga@snu.ac.kr

인포그래픽: 신동준 편집장 sdj386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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