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부 김찬수 기자
취재부 김찬수 기자

처음 이성에 눈을 떴을 때부터 당기기는 잘했지만 밀기엔 젬병이었다. 그저 내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면 진실은 통한다고 생각했다. 밀기란 상대방의 마음을 농락하는 행위라고 여겼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뭐가 문제인지 당기기만 하고 밀지 않던 내 연애사는 공백으로만 가득 찼다. 이 때문이었을까. 그다음부턴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을 때, 되지도 않는 밀기를 시도했다가 그대로 밀려 나갔다. 얻고자 했던 상대방의 마음은 내가 밀든 당기든 얻을 수 없었다.

제1야당의 대표가 삭발에 이어 단식을 단행했다. 지난날에 있었던 삭발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임명 반대가 목적이었다. 그리고 이번 단식으로는 공수처법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의 철회를 주장했다. 그의 행위엔 정치적인 목적이 다분했으며 이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평가가 어떻든 그의 몸부림은 욕구 표출을 위한 수단이었다.

우리는 그의 몸부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삭발과 단식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당기기였을까, 아니면 밀기였을까. 당기기와 밀기는 본능에 얼마나 충실한지를 놓고 구분한다.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곧이곧대로 드러내는 것은 본능에 충실한 행동이며, 이를 참고 내 마음을 숨긴 채 상대방을 미는 행위는 본능에 충실하지 못한 행동일 수 있다.

삭발과 단식을 단행한 제1야당의 대표는 당기고 있는지, 밀고 있는지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렵다. 관점을 달리하면 두 행위 모두 밀기도, 당기기도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는 크게 중요치 않다. 명징한 기준으로 행위를 두부 자르듯 나눌 수 없다면 이를 위한 노력과 시도에는 지금으로선 큰 가치가 부여될 수 없다. 또한, 삭발과 단식, 밀고 당기기 모두 결국엔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개인 혹은 집단의 몸부림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밀당’으로 원하는 것을 얻었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분명 그의 삭발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은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그의 짧은 머리카락은 진영의 승리로 상징됐다. 이 모든 상황이 다 그의 계획이었는지는 알 수 없을뿐더러 득과 실이 공존하기에 삭발을 통한 ‘밀당’의 성패는 판가름하기 어렵다.

단식은 그에게 무엇을 안겨다 줄까. 처음부터 표방하고 나왔던 공수처법, 선거법의 철회를 이룰 수 있는지는 경과를 지켜봐야 안다. 그러나 목적을 달성하기도 전에 단식 8일째를 맞아 그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결과를 통한 득실을 따지기도 전에 건강을 잃었다. 다른 의원들이 바통을 건네받은 양 단식에 나서는 것을 보면 그의 단식을 밀기라고 봐야 할지, 당기기라고 봐야 할지. 얻은 것은 희미해 보인다.

나는 상대방이 내가 미는지 당기는지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게 행동한다. 그래 봤자 내가 원하는 상대방의 마음은 얻지 못한다. 제1야당 대표 역시 정부와 국민을 향해 ‘정치적 밀당’을 시도했다고 본다. 그와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당길 때 당기는 것 같지 않았고, 밀 때 미는 것 같지 않았다.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 미적지근한 행동 때문에 득만 있는 경우가 없었다. 나와 그는 알아야 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밀당’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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