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준 편집장
신동준 편집장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번역어는 조금 어색할지 몰라도 적어도 PC라는 말은 최근 사람들에게 꽤 익숙한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익숙한 이유는 ‘PC충’ 내지는 ‘프로불편러’ 같은 부정적 의미의 단어들을 많이 들어 봤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사실 PC라는 스탠스 자체는 논란이 될 만한 것이 아니다. PC는 인종, 성, 성적 지향, 종교 등의 차이로 사람을 차별하는 편견이 담긴 언어를 쓰지 말자는 신념, 나아가 이 신념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사회적 운동을 의미하는 단어다. 단순한 차이를 근거로 타인을 억압하지 말고, 차별하지 말고, 편견을 가지지 말자는 당연한 말에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꽤 오래전부터 문화계에도 PC 바람이 불고 있다. ‘디즈니 프린세스’의 변화는 이런 디즈니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디즈니 프린세스는 영웅으로 등장하는 남자와의 사랑, 또는 결혼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찾게 되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획일화된 외형 때문에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미의 기준을 왜곡한다며 비판받았다. 하지만 최근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공주님들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 〈겨울왕국2〉의 개봉 후 전 세계에 다시 이름을 각인시키고 있는 안나와 엘사를 통해 살펴보자. 스포일러를 피하고자 전작인 〈겨울왕국〉의 줄거리만 바탕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작품에서 강조해 온 ‘진정한 사랑’은 흔히 생각하는 공주와 왕자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자매를 위해 희생하는 안나 자신의 모습을 통해 완성된다. 안나는 문제 상황에서 남자 주인공이라 말할 수 있는 크리스토프만 기다리다 그에게 구원받는 것이 아닌 능동적인 행동을 보여 줬다. 이는 기존의 디즈니 프린세스가 가지고 있던 클리셰를 정면으로 깨부수는 행위로, 디즈니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변화를 모든 사람이 반기는 것은 아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억지로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려다 보니 스토리의 개연성이 망가진다는 이유로 문화계의 변화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분명 스토리의 개연성, 혹은 캐릭터의 매력은 작품의 완성도를 따질 때 중요한 요소다. 이 대목에서 내게 늘 고민을 안기는 질문이 있다. “스토리의 완성도를 해치더라도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은, 과연 옳을까?”

처음에는 그래도 하나의 작품인 이상 이야기의 개연성을 해치는 수준이라면 당연히 스토리의 완성도가 먼저가 돼야 하지 않겠냐는 입장이었다. 최근 엄청나게 흥행했던 〈어벤져스:엔드게임〉의 후반부에는 조금 뜬금없이 그동안 작품에 나오던 모든 여성 히어로가 한 화면에 뭉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를 본 이후, 개인적으로 그 장면이 별로였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다. 조금 뜬금없이 등장한 장면이라 개연성을 해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친구는 오히려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단 한 번도 히어로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등장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가장 완벽한 것은 정치적 올바름을 가미하면서도 완벽하게 재밌는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하지만 둘 중 하나만 성공적으로 얻어 가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것 자체도 높이 평가받는 이유가 돼야 한다.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스토리를 망쳤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제대로 반영했다는 가치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아직도 둘 중 작품을 평가하는 데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질문의 답은 찾기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두 가치 모두 폄하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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