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호 특집 | 전 편집장 회고

장한승 제34대 편집장 (2004. 7. 1~2004. 12. 16)
장한승 제34대 편집장 (2004. 7. 1~2004. 12. 16)

2004년 11월 15일 저를 포함한 학생 기자들은 제호와 광고, 기고문을 삭제하고 학생 기자들이 작성한 기사와 칼럼만으로 무제호 『대학신문』을 발행했습니다. 동창회보의 기사형 광고를 『대학신문』의 광고란에 게재하라는 주간의 지시에 동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광고 비용을 지불한다는 이유로 신문 지면에 타 언론의 기사 게재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학생 기자들의 의견이었습니다. 주간은 인쇄 중단을 지시했고, 학생 기자들은 모아 왔던 기금으로 무제호 『대학신문』을 발행했습니다.

파장은 컸습니다. 학내외 많은 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졌고, 한동안 신문사 운영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당시 총장을 비롯해 많은 교수님들과 신문사 운영의 정상화를 위해 지난한 협의의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는 ‘『대학신문』의 편집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해묵은 논쟁에서 기인했습니다. 당시 『대학신문』의 사칙은 ‘주간은 신문사 운영을 통할하고, 편집장은 지면 편집의 권한을 갖는다’라는 취지의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이율배반적 문장은 『대학신문』이 ‘학생 기자단의 헌신’과 ‘대학 본부의 지원’이라는 두 축에 기대어 서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학신문』은 통상 건전한 긴장 관계라고 포장하는 갈등 속에서,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라 운영됐습니다.

합의는 말하기 쉽고 듣기 좋지만 이루는 것은 어렵습니다. 무제호 신문은 그 어려움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사소한 이유로 무게 추가 크게 흔들렸고, 이를 다시 바로잡기 위해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15년이 지나, 저는 『대학신문』 2000호 발간을 기념하며 그 시절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 시절의 순수한 열정은 다소 빛바랬고, 짐작만 하던 어른의 사정에 밝아졌습니다. 사실 이는 그리 별나지 않은 사건이었습니다. 전시 수도 부산에서 창간되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세월 속을 누벼온 『대학신문』의 역사 속에 비슷한 갈등은 수차례 반복돼 왔고, 어른의 사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다양한 양태로 일어납니다.

그 원인이 되는 긴장들을 일소해야 할 과제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를 포함한 학생 기자들은 편집권을 주장하기 위해 더 열심히 취재했고, 그 과정에서 성장했습니다. 교수님들이나 대학원생 간사님들은 원만한 방식으로 학생 기자들을 지도하기 위해 지적 노력을 다하셨을 것입니다. 그것이 『대학신문』이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이나 단순한 관보 이상의 존재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라 생각합니다.

때로는 어설프거나 엉망진창으로 보일지라도, 70여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대학신문』을 거쳐 간 무수히 많은 구성원들 각자의 치열한 자기주장 속에서 어떤 형태로든 합의를 이뤄가며 2000번의 지면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사실에 경이를 느낍니다. 그 치열한 합의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장한승 제34대 편집장(2004. 7. 1~2004.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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