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회 대학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우수작
제61회 대학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우수작
  • 대학신문
  • 승인 2019.12.08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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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어는 누워있고 우럭은 서 있다

박현서(전기·정보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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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3일 강준혁과 최수연은 제 22회 부산 국제영화제에 있었다. 그 날은 1995년 개봉한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인 러브레터의 출연배우인 나카야마 미호가 비프빌리지 야외무대 오픈토크에 참석한 날이었다. 영화는 잘 몰랐지만, 거기서 그녀의 모습을 처음 본 수연이 러브레터를 찾아 본 뒤 준혁에게 눈 내린 오타루에 함께 가자 말했다. 2019년 1월 말이 되어서야 준혁으로서도 영화제 출품 마감일까지 더 바빠질 것 같고, 돈도 없어질 테니 얼른 가야겠다는 생각에 2박 3일간의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인천국제공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에서 준혁은 동기들에게 줄 기념품으로 홋카이도 명물 과자인 시로이 코이비토를 샀고, 한국에 도착한 저녁에 두 사람은 명동역에서 밥을 먹은 뒤 거리를 걷다 롯데백화점에 들어갔다. 3층에서 수연은 츄리닝만 입고 다니는 준혁에게 청바지에 흰 티라도 입고 다니라며 바지를 선물해줬다. 프랑스 브랜드인 아페쎄에서 만든, 밑위가 짧고 종아리 부분이 상대적으로 넓은 스트레이트 핏이 특징인 쁘띠 스탠다드 모델이었다. 버튼플라이방식이라 지퍼보다 불편하고 허리가 조금 작았지만 수연은 입다보면 늘어날 거라며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오는 2월에 숙명여자대학교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데님 디자이너로서의 진로를 계획하고 있었던 수연이었다. 근처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그녀는 생지 데님은 빨지 않고 오래 입어야 사람 체형에 맞는 워싱이 진행된다며 냅킨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준혁에게 청바지 페이딩이 진행되는 원리를 설명해줬다. 이해는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준혁은 고작해야 청바지 물 빠지는 걸로 그렇게 길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수연이 신기할 뿐이었다. 언제 세탁하는 게 좋은지 준혁이 묻자 수연은 입고 싶을 때 입으면서 6개월쯤 후 세탁을 하는 게 좋으며, 그때까지 바지를 냉동실에 넣거나 햇빛에서 말리면서 냄새를 없애주면 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함께 아이폰의 캘린더 어플리케이션을 켜서 8월 25일에 같이 청바지 세탁 하는 날이라 설정했다. 예정대로라면 매일 똑같은 바지만 입을 일은 없을테니까 그 쯤이면 적당해보였다.

명동 역에서 4호선 지하철을 타고 돌곶이 역의 자취방으로 가던 준혁은 그녀에게 비슷한 가격대의 선물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바지 가격을 확인했다. 한국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바지를 20만원 중반의 가격에 팔고 있었지만 컬티즘 같은 해외 사이트에서 직구를 하면 10만원 중반의 가격으로 사는 방법이 있었다. 준혁은 청바지 원단이, 워싱이 어떻다는 걸 잘 알아도 싸게 사는 방법도 모르는 수연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였지만 고마운 마음 대신에 그런 마음이 드는 스스로가 놀라울 정도였다. 그 후로도 준혁에게 14.5온스의 청바지 원단은 너무 두껍고 답답해서 바지에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가방에 바지를 계속 넣어두고 꺼내지 않은 것도, 자신보다 어려도 키는 더 크고 어른스럽던 수연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었다.

4월 초부터 청파로의 벚꽃이 모두 지는 말일까지 준혁은 수연의 방에서 지내면서 영화제 상영작 발표만, 정확히는 작품상 상금만 기다렸다. 오백만원이면 영화를 만드느라 쓴 자취방 보증금을 조금은 메꿀 수 있을테니까. 그러는 동안 떨어진 벚꽃 잎처럼 수연도 디자이너의 꿈을 접었다. 그리고 용산 역 근처의 증권사에서 파견 계약직원 신분으로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복숭아 뼈까지 기장이 떨어지는 통넓은 청바지에 컨버스 척 테일러를 신던 그녀의 뒷모습은 '청바지, 반바지, 레깅스, 타이즈는 모두 금지, 정장용 힐 높이 4~7cm 권장, 로퍼 단화도 금지' 라는 암묵적인 회사 여직원 정장 드레스 코드 준수사항에 따라 무릎까지 내려오는 검은 치마에 힐을 신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성큼성큼 걷던 걸음걸이의 보폭도 전보다 줄어들었다. 준혁에게 그 모습은 4월 내내 하얀 벚꽃이 피어있던 나무에 5월부터 7월까지 빨간 버찌 열매가 맺히는 걸 보는 것 같았다. 흰 꽃잎들은 다 어디 갔느냐고 벚꽃나무에게 물어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준혁 역시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말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다. 퇴근길에 방까지 걸어갈 때마다 수연은 선물 해준 바지를 입지 않는 준혁에게 안 입을 거면 다시 달라고, 자기가 대신 입을 거라는 농담만 했다. 이후로도 그녀는 방으로 돌아오면 전신거울 앞에 서서 평일엔 입을 일 없는 청바지들을 하나씩 입어보고 다시 벗다가 잠드는 날들을 보냈다. 준혁도 그녀를 보며 안 입어 봐도 예쁘다는 등의 말을 했지만 점차 말이 줄었다.

그러던 5월 첫째 주, 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리스트가 공지됐는데 거기 준혁의 이름은 없었다. 대신 6월 27일부터 7월 3일까지 진행 된 상영회에서 그의 동기와 후배들은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희극지왕’, ‘절대악몽’의 3개 부문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상영작 리스트가 발표된 날부터 이틀에 한번 꼴로 준혁은 편의점에서 수입맥주 네 캔을 만원에 사서 마시며 잠든 수연의 발뒤꿈치에 붙은 밴드만 쳐다봤다. 준혁이 출품을 한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부문에서 상을 받은 동기는 개인 톡을 보내줬다. 준혁아 그래도 시간 지나고 보면 좋은 기억으로 남을 거야. 시간이 지나야만 좋게 기억되는 것. 그런 건 붙잡고 싶은 마음을 참고 헤어진 전 여자친구에게 ‘그래도 그 새낀 양반이었어’ 정도로 기억되는 것만큼 무의미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준혁이 일본에서 사 온 기념품을 가방에서 꺼내 동기들에게 줄 기회는 단 한번도 없었다.

영화제 마지막 날인 7월 3일 저녁, 수연의 퇴근을 기다리며 준혁은 역 앞 광장을 빙빙 돌았다. 그래도 하루는 가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으면서도 영화제가 열리는 CGV 용산 아이 파크 몰 쪽은 쳐다보지도 못한 채였다. 해산물은 냄새도 맡기 싫어하는 수연이기에 언젠가 가보고 싶었던 광동수산은 못가고 용산 대로변에 위치한 펍에 들어갔다. 거기선 과일과 치즈 조각들을 이만 오천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다. 준혁은 메뉴판의 금액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수연이 인스타 스토리에 사진을 올려야 한다고, 브이로그 영상을 찍겠다고 치즈에 손을 못 대게 하는 것은 더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러다 같이 방에 돌아왔는데 그날은 수요일, 즉 수연이 방청소를 하기로 되어있는 날이었다. 바닥에는 어제 밤 그녀가 벗어둔 청바지 서너벌이 있었다. 수연은 방을 치울 생각이 없어보였다. 다시 준혁은 그걸 이해 할 수 없었다. 

대화는 청소 좀 하자는 준혁의 말로 시작했다. 그 후에 몇 마디가 오가다가 마지막은 수연이 준혁을 내려다보며 이런 거 이젠 지쳤다고, 오빠가 영화를 계속 하든 말든 다 좋은데 여기는 내 집이니까 정신 못 차릴 것 같으면 나가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났다. 준혁은 그 말을 받아 칠 수 없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충고 해줄 때마다 그는 그 말들과는 반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행동했다. 준혁은 성격의 이런 부분이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했다. 대개 두 가지는 같은 것인데 바뀌는 건 상황뿐이니까. 그건 영화감독의 꿈을 품고 부모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삼수 끝에 한국 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 입학 한 그가, 그리고 선배들의 ‘네 시나리오는 아직도 수십 년 전 영화들의 감성에만 머무르고 있다’ 는 등의 조언과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겠다며 그 꿈과 함께 넘어진 그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준혁은 지난 여행에 들고 갔던 가방에 옷가지를 챙겨 수연의 방을 나갔다.

준혁은 숙대입구역에서 삼각지역, 그리고 신용산역으로 이어지는 지하철 4호선을 따라서 걸으면서 그런 자기 모습이 1976년 개봉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택시드라이버에서 퇴역 군인 트래비스 비클이 뉴욕 맨해튼의 뒷골목을 돌아다니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수연으로부터 연락이 오면 그때 돌아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주일 정도를 찜질방에서 보내고, 친구들의 자취방에서 지내다보니 그런 생각은 금방 사라졌다. 7월 16일 아침, 돈이 떨어진 준혁은 다시 수연의 방으로 돌아가 봤다. 하지만 그녀는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바꾼 뒤였다. 수연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빈다면 거기서 다시 살 수는 있을 것 같았지만 전보다 더 굽히고 지내야 할 것이 뻔했다. 후속편은 모두 실망만을 남기는 법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갈월동 지하차도를 지나서 한강대로로 나왔다. 

어차피 준혁이 생각하기에도 자기 처지에 전망없는 연애를 계속 하는 것도 힘든일이었다. 돈을 모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 지 계획하며 지낼 곳이 필요했으므로 준혁은 알바몬과 알바천국에 잠자리, 식사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숙식 제공은 물론 당일 입사가 가능한 숙식 노가다가 유일한 방안으로 보였다. 팀장이 직접 구인 하는 팀들을 몇 군데 알아보니 양중 업무를 하는 곳이 있었다. 구글에 검색해보니 양중이라는 단어는 일본어 ようじゅう에서 비롯한 말로 크레인 등 자재와 중장비를 원하는 위치로 끌어 올리는 것을 뜻했다. 준혁은 사당역에 위치한 건설기초안전교육장에서 5만원을 내고 오후 두시부터 4시간동안 안전보건교육을 받고 이수증을 발급 받은 뒤에 강의실 뒤에 놓인 보리건빵과 믹스커피를 주머니에 챙겨 나왔다. 지하철을 타며 팀장 번호로 연락을 하니 고행록 팀장이 숙소 주소를 문자로 보내주었다. 사당 역에서 출발하면 2시간이 걸리는 경로를 확인하고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 용산 역에서 평택 역으로 1시간 만에 내려가는 기차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준혁은 웃었다. 허허허. 갑자기 수연이 그렇게 웃지 좀 말라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지하철 1호선을 계속 타고 내려가는 풍경에 익숙해질 쯤 평택 역에서 내리고 다시 20번 버스를 타서 통복시장과 평궁리와 대원아파트를 지나 안정6번리 정류장에서 내렸다. 팀장이 알려준 방으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니 창문 밖으로 해가 저물고 있었다. 부엌 맞은 편 방에는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지 아저씨라고 불러야 할 지 애매한 외모의 남자가 웃옷을 벗은 채 옷걸이에 팬티를 널고 있었다. 방바닥에 놓인 하이바에 써진 이름은 최덕행이었다. 

“오우 신규자야? 처음이야?” 

“네” 

 

2

다음날인 7월 17일 준혁은 현장에 위치한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근로계약서를 썼다. 그 다음날인 18일은 안전교육을 받고 연장근무 시간부터 근무에 들어갔다. 현장에서는 반팔, 반바지를 입을 수 없어서 팔 토시를 하나 사고 가방에 있던 아페쎄를 입었다. 움직이기는 여전히 불편했지만 챙겨 나온 옷 중 긴 바지는 그게 유일했다. 7월 19일부터는 같은 층에서 지내는 최덕행, 구정모, 이재용, 고행록, 김민영 등 자신을 포함한 여섯명의 팀원들과 함께 네 시반에 일어났다. 그리고 다섯 시까지 숙소 앞에 모여서 검은 스타렉스를 타고 안정로에서 서동대로와 남북대로를 지나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 EUV 신축 현장으로 갔다. 양중팀은 시공 팀에 자재가 모자라지 않도록 석고보드, 각 파이프, SGP판넬, C러너, J러너 등의 건축 자재들을 옮겨줘야 해서 월,수,금요일은 저녁 여덟시까지 연장 근무를 하고 1.5공수를 받았고 화,목요일은 밤 10시까지 야간 근무를 해서 2공수를, 토요일은 저녁 다섯 시까지 일하고 1공수를 받았다. 1공수 당 임금으로 십만 오천 원을 받기로 되어있었으니 2학기 등록금과 생활비, 학교 근처 돌곶이 역 자취방들의 평균 월세와 보증금을 생각할 때 개강 직전인 8월 말까지는 일을 해야 했다. 스타렉스 가장 뒷자리 오른쪽 구석에 앉아있는 새벽마다 구정모 반장이 옆 팀 스물 네살짜리 유도원 씨발년 빨통 한번 잡아보고 싶다거나 스포츠 토토나 경마 배당이 얼마니 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창 밖을 바라보면 해는 영영 뜨지 않을 것만 같았다. 

발주기관이 건설사에 인건비를 지급하면 다시 건설사에서 팀장에게 인건비를 지급하는 것이 건설 현장 급여 체계였다. 준혁은 인터넷을 통해 팀장이 숙소비와 식비라는 명목으로 근로자 1인당 얼마씩의 금액을 똥떼기 한 후에 근로자들에게 입금해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준혁의 소속사인 태성ENG에서는 인적성 필기시험 및 임원면접, 적성 면접 등의 과정을 거치거나 개인 포트폴리오를 보는 등의 검증 과정을 거쳐 구성원을 뽑는 대신 주민등록증과 건설기초안전교육 이수증이 있으면 누구라도 뽑아줬다. 그건 팀원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다기 보다는 한 팀이 감당 가능한 범위에서 사람 머리수가 많을수록 회사에 이익이 되는 구조임을 뜻했다. 그러므로 그의 생각에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을 지키는 것으로 자신은 회사에 이익이 될 만한 일을 충분히 한 것이고 그 이상 땀을 흘릴 필요가 없었다. 좋은 영화감독을 찾기 위해 한국 영화계는 얼마나 많은 검증 과정을 거쳐 자신을 수 없이 걸러냈으며, 그에 따라 자신은 얼마나 많은 리스크와 고통을 껴안고 살았는지 준혁은 돌이켜보았다. 그런 논리에 따르자면 현장에서 검증과정 없이 준혁이를 채용한 것에 대한 리스크는 온전히 회사와 구성원들이 껴안아야 할 몫이었다. 하지만 여섯명의 팀원들과 손잡이 대차에 자재들을 얹고서 깔깔이 바를 체결한 뒤 밀 때마다 고행록 팀장이 손잡이 봉만 잡고 있는 새끼를 찾아내서 ‘씨바 준혁이, 새꺄 너는 또 힘 안주냐?’ 라며 소리치는 순간, 여전히 고통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또한 준혁에게 평택 생활은 서울에서의 모든 공간과 관계들로부터 도피한 곳에 불과했다. 따라서 거기서도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었다. 팀원들은 신규자인 준혁에게 잘 나갔던 왕년시절을 이야기했다. 준혁에게는 잘 나갔던 왕년이 없었고 자신은 한국 예술종합학교를 다니며, 영화감독이 되려하고, 단편영화 하나를 찍는데 얼마가 드는지 아시느냐 따위의 말들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러면 영화 감독이면 집에 돈이 얼마나 많을지 물어볼 거고, 지금부터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를 들려 줄 테니 영화로 만들어 달라고 할 것이며, 김태희 실물이 얼마나 예쁘냐고 물어 볼 게 뻔했으니까. 그래도 대놓고 하는 말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 준혁에게 대답이란 무표정과 함께 ‘네, 아뇨, 모르겠습니다’ 셋 중 하나를 내뱉는 것으로 충분했다. 대화의 끝은 항상 준혁씨는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 네. 나랑 얘기하는 게 싫어서 그러는 거야? 아뇨. 왜 그렇게 말을 안 해 그럼? 모르겠습니다 와 같이 끝났다. 금새 팀원들은 빛나는 시절의 일들을 준혁에게 들려주지 않게 되었다. 대신 준혁은 근로자 카드를 찍고 현장으로 들어가서 오전 7시마다 SOP현황판을 세워놓고 ‘양중물 양중 시 협착 주의 좋아!’ 라는 TBM구호를 외칠 때,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시공 팀에 각 파이프를 나르면서 유도원 이모들 뒤를 따라 걸을 때, 구획설정을 하기 위해 라바콘과 플라스틱 거리대를 챙길 때, 전동 자키와 핸드 자키를 이용해 폐석고 보드와 그라스울을 나를 때, ‘지게차가 후진합니다 비켜주세요’ 라는 녹음된 여자의 목소리를 들을 때 마다 사람들의 대화를 듣기만 했다. 

그런 준혁에게 말이라는 건 결국 타인에 대한 욕망이었다. 따라서 그에게 들리는 말들은 내가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과 상대방이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 네 가지로 분류되었다. 관계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과 일치하고 상대방이 하고 싶은 말이 내가 듣고 싶은 말과 일치 할 때 유지된다. 수연과 준혁의 관계도 처음엔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결국 각자 듣고 싶은 말 같은 건 생각도 안하고 하고 싶은 하는 말만 하다가 끝난 거 였다. 그의 생각엔 애초에 여기서 듣고 싶은 말 같은 건 하나도 없으니까 하고 싶은 말도 없는 거라고, 시간 팔아서 돈 벌고 올라가면 된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런데 덕행 씨는 달랐다.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이 있어서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거라면, 준혁이 보기에 덕행 씨는 하고 싶은 말만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작업할 때다 온갖 말로 팀원들을 피하게 했다. 오전 작업이 끝나고 삼남매 뷔페에서 점심을 먹는 동안 티비를 볼 때도 그랬다. 문재인이 나오면 정치를 저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고, UFC 경기가 있을 때는 ‘이야 저저 레프트를 저래 치면 안 되는데 이래 이래 쳐야 하는데’ 라며 식탁위에서 주먹을 휘둘렀다. 준혁은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레프트를 어떻게 쳐야 하는지는 몰라도 식탁을 그렇게 치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넘치게 받은 제육볶음이 접시에서 떨어져 준혁의 바지에 묻었다. 그 주먹질은 ‘씨바꺼 최 씨 밥 먹을 땐 입 좀 다무쇼’라는 고행록 팀장의 말로 마무리되었다. 

근무시간 마다 덕행 씨는 목 토시를 올려 귀를 가린 채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었다. 트로트만 들을 것 같았지만 의외로 그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OST, BTS, 위너 같은 가수들의 노래를 들었다. 그러면서 준혁에게 이 노래를 아느냐고 물었다. 준혁은 그 노래들은 들어본 적 없었지만 그게 삼성뮤직 인기곡 리스트를 그대로 스트리밍한 목록들이란 건 알 수 있었다. 준혁이 모르겠다고 할 때 마다 덕행 씨는 이것도 모르냐며 가사를 흥얼거렸다. 세시부터 세시 반까지의 오후 휴식 시간에 폰트 크기를 2배정도 키운 채로 유튜브 화면을 들여다 볼 때를 제외하고 덕행 씨는 내용도 없는 자기 자랑들을 계속 늘어놓았다. 준혁이 보기에 그 모습은 시도 때도 없이 노래 부르고 춤추는 발리우드 마살라 영화의 배우 같았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고행록 팀장의 말 한마디를 이기지 못했다. 

일 안하고 말 없는 준혁과 일도 못하면서 말만 많은 덕행 씨 둘 다 팀원들로부터 비슷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인지 덕행 씨는 유독 준혁에게 말을 많이 걸었다. 그러면서 준혁은 덕행 씨로부터 여러 가지를 배웠다. 예컨대 에어건을 바지와 팬티 사이에 꽂아서 쏘면 바지 틈새로 찬 공기가 들어와서 얼마나 시원해지는지와, 현장 내 CCTV를 피해서 몰래 앉아서 쉬기 좋은 곳들의 위치와, 젖은 톱밥을 바닥에 뿌린 뒤 청소를 하면 톱밥이 먼지를 다 흡수한다는 사실들. 준혁이 그런 것들을 덕행 씨로부터 하나 둘 씩 배워가는 동안 고 팀장은 계속해서 준혁과 덕행 씨에게는 쓰레기 분리수거 같은 잡일만 시켰다. 

그렇게 일을 시작한 지 삼주정도 흐르고 8월 7일 저녁이었다. 준혁은 아이폰 캘린더를 켜서 그날 찍은 공수를 입력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8월 25일에 설정해 놓은 알림이 보였다. 무슨 알림이었는지 준혁이 확인하려는 순간 덕행 씨는 널어놓은 팬티를 걷으면서 스물여덟이면 노가다 계속해도 좋고 관둬도 좋은 나이라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할 거 없으면 저기 사시미 배워 사시미. 내가 전에 횟집하나 크게 했어. 니 광어랑 우럭이랑 어떻게 다른지 아냐?” 

“아뇨.” 

“수조에 딱 보면 말야. 광어는 누워있고 우럭은 서있다 이거야. 알간?”

“네” 

“근데 전에 바지 묻은 건 괜찮냐? 허허허, 거 리바이슨가 그거지 맞지?” 

“아뇨.”

“허허허 그래? 딱 서봐” 

준혁은 허리를 곧게 폈다.

“내가 쭉 봤는데 참 멋있어 응? 비싼거지 그거?” 

“모르겠습니다.” 

 

3

말. 그러니까 준혁의 생각에 말이라는 건 내뱉고 난 뒤 닥치고 있는 것만도 못하게 되는 거라면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연이 회사에 취직한 후로 준혁은 빠르게 꿈을 포기한 그녀가 틀리고 계속 영화감독이라는 목표를 쫓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딱히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 너는 여기서 포기하는거니, 더 해봐도 괜찮은 것 같다 뭐 그런 말들 말이다. 그런데 덕행씨의 말을 듣고 숙소 밖 에어컨 실외기 밑에서 담배를 한대 피우며 준혁이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6개월 입고 나서 세탁하면 워싱이 살아나는 청바지만도 못한 물건이라는 사실에서 비롯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쯤 수연은 사무실 데스크 탑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대신 원단 기둥과 스와치 사이에서 청바지를 만들고 있어야 했다. 준혁 역시 함바집 메뉴판을 들여다보는 것 대신 촬영 현장에서 앵글을 고민하며 카메라를 들여다보고 있어야 했다. 준혁은 그날 밤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너나 나나 인생 양중 하는 데에는 실패한 셈이라고, 한국에서 자기 브랜드 런칭하는 계획 같은 건 포기하는 게 옳은 거니까 너도 맞다고, 1184편의 출품작중 60편의 상영작리스트에도 못 들어갈 영화를 만드는 인간이면 영화감독 같은 건 포기하는 것도 맞을 수도 있겠다고 중얼거렸다. 

다음날은 11시부터 1시까지 6호기 타워크레인 양중 작업이 있었다. 준혁은 신호수인 구정모 반장의 무전에 맞춰 슬링벨트에 샤클을 걸었다. 폐석고 보드가 내려올 때 유도 로프를 잡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어떤 구름은 휘저은 맥플러리 같았고 어떤 구름은 스크램블 에그 같았다. 그것들은 모두 같은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좋고 세상이 평화롭게 느껴지니 준혁은 불안했다. 처음에는 그 날이 8월 8일, 그러니까 입추라서 가을 기운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더운 건 여전했으니 그게 원인은 아니었다.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 행복을 느끼게 되는 과분한 마음이 그에게 처음은 아니었다. 준혁은 그런 건 전부 체호프의 총이나 맥거핀 정도로만 취급했다. 여태까지 그 마음들은 조만간 안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복선이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불과했으니까. 준혁은 속으로 들떠 있으면 안 된다고, 이러지 말자고, 기분 좋으면 안 된다고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니 2월말에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붐 마이크를 들고 있는 스태프가 ‘다들 수고 하셨습니다’ 라고 하던 말을 들은 게 준혁에겐 남에게 좋은 말 들은 마지막 기억이었다. 카메라 케이블을 정리하던 순간부터 준혁은 속으로 ‘이번에도 망했구나’ ‘그 때 엄마 말 들을 걸 그랬구나’ 라는 말만 되뇌었으니까. 그런데 어제 저녁 반년 만에 청바지가 멋지다는 실없는 말을 들은 것이었다. 덕행 씨는 준혁의 마음은 눈치 못 챈 듯 내용도 없는 말만 계속 했다. 

그 날 밤 숙소로 돌아와 바지를 벗은 채 준혁은 엉덩이쪽 요크부분에 진행되기 시작하는 페이딩과 밑단이 발목 위로 쌓여서 접힌 흔적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수연이 후나미자카 언덕에서 오겡끼데스까 라고 귀에 속삭일 때 내뱉던 하얀 입김에 대해, 스타벅스 소파에 나란히 앉아 기대었을 때의 샴푸 향에 대해, 발 뒤꿈치에 붙인 밴드의 접힌 자국에 대해, 마지막으로 ‘바지 안 입을 거야? 그럼 내가 대신 입을 게’ 라며 웃던 목소리에 대해 생각했다. 

청바지 원단의 인디고 염색은 청바지 코어실 주변으로 인디고 염료가 막을 형성하며 만들어지고, 바지를 입는 동안 착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염료의 막이 코어 실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하얀 코어 실 색상이 나타나며, 마찰이 유독 강한 부분을 위주로 청바지 색감이 하얗게 변하면서 워싱이 진행된다는 것. 그리고 누디진, 아페쎄, 네이키드앤 페이머스, 리바이스 같은 유명 브랜드에서 만드는 생지 데님의 원단은 튼튼하게 만들어져서 세탁 몇 번에 형태가 망가지지는 않지만 생지데님 원단과는 달리 인디고 염료는 세탁에 약해 바지를 초기에 세탁할 경우 물과의 마찰로 인해 원단 전체에 인디고 염료가 떨어져 나가게 되며, 세탁을 하지 않는 경우 마찰이 심한 부분에만 염료가 떨어지는 것에 비해서 색의 대비가 줄어든다는 것. 그래서 페이딩이 충분히 진행 될 때 까지 세탁을 하지 않고 바지를 오래 입는 것이 착용자의 체형에 맞는 자신만의 생지 데님을 만드는 데에 중요한 점이라는 것과 같은 사실들.

욕설이 난무하는 PC방에서 구글 검색을 해보니 수연이 자신에게 설명해줬던 것들이 위와 같은 내용이었다는 걸 준혁은 기억 해 낼 수 있었다. 그 후에 준혁은 잭 애프론과 애덤 브로디의 생지 데님 착용 사진을 찾아 봤다. 무늬 없는 인디고 색상의 바지가 허벅지와 사타구니 사이 고양이 수염 모양의 무늬(Whisker)가 생기고, 무릎 뒷부분엔 벌집(Honey Comb)이 잡히면서, 밑단에는 곱창(Stacking) 부분이 접혀 변하는 걸 봤다. 너무 늦게 알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제서야 수연이 냅킨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했던 그 말들이 이해가 갔다.

자키로 떠 올린 자재들을 내려놓기 위해서 자재 아래에 가로 15cm, 세로 15cm, 폭1.5m 크기의 고임목을 받칠 때는 항상 앉아서 밀어 넣어야 했다. 앉았다 일어나는 걸 많이 하는 것이 워싱을 내는 데 필요하지만 너무 격한 움직임은 원단에 손상을 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바지를 입고서 쭈그려 앉게 되면 청바지 무릎 부분에 힘이 많이 가해져 그 부분이 튀어나오는 무릎 발사 현상이 발생한다. 준혁은 그건 마치 핸드 헬드 기법으로 씬을 촬영하는 경우, 촬영 장소의 분위기와 배우들의 감정을 살릴 수 있지만 흔들림이 과도해져서 오히려 영상의 집중도를 떨어뜨리게 될 문제가 있다는 점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고임목을 놓을 때 마다 무릎을 굽히기 전에 손 베임 방지 장갑을 낀 채로 바지의 허벅지 부분을 밀어내리고, 종아리 부분은 끌어올려서 무릎 부분의 원단을 두껍게 했다. 그렇게 하면 청바지 무릎부분이 받는 힘이 원단에 분산되어 무릎 발사 현상을 완화시킬 수 있었다. 또한 장갑으로 쓸어내린 허벅지 부분의 페이딩이 진행됨과 동시에 무릎 뒷부분 벌집 부분의 워싱은 더욱 정교해질 것이었다. Whisker 페이딩은 착용자가 이족 보행을 하며 허벅지와 사타구니 원단에 가한 마찰로 발생했다. 걸어다닐 때보다 계단을 타고 오를 때 다리를 벌리게 되는 각도가 더 커져 무릎과 사타구니 사이 Whisker 페이딩이 더 정교해질 것 이었다. 그래서 준혁은 더 많은 계단을 타기 위해 엘리베이터 상 하차 작업 시 태성이엔지 공용 샵장이 위치한 8층에 올라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자재들을 이동하는 일을 주로 지원했다. 현장에서 한 층의 높이가 아파트나 일반 빌딩 한 층 높이의 2배에서 3배 높이는 되었으므로 16층 내지는 24층이 넘는 계단을 매일 오르내렸다. 바지의 기장이 길어서 안전화와 청바지 밑단이 닿는 부분에 생기는 곱창 워싱의 경우 발목에 각반을 찰 때마다 바지가 각반에 눌려 워싱이 망가질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준혁은 발목보다는 약간 높은 아래종아리에 각반을 차기 시작했다. 일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서 바지를 벗을 때에도 발목 부분의 접힘이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벗고 다음날도 같은 위치에 각반을 차서 워싱 형태가 변형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동시에 바지 핏을 위해서 영화제 상영작 발표 이후로 마신 맥주로 인한 살을 빼야 했다. 준혁은 활동량을 늘리는 것과 더불어 먹는 양을 줄였다. 또 야간 근무가 있는 화,목요일 다섯시 반에서 여섯시 반까지의 저녁 시간 동안 삼남매 뷔페에 가서 밥을 먹는 대신 휴게실에 누워 가방에 들어있던 시로이 코이비토를 하나씩 먹었다. 제조연월일이 19년 1월이고 상미기한이 19년 7월까지라고 적혀있었지만 그게 소비가능기간은 아니어서 8월에 먹어도 문제없을 것 같았다. 그 동안 잘 맞지 않던 바지의 허리도 편해졌다. 

준혁을 대하는 팀원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몸을 많이 움직이고 다른 팀원들이 꺼리는 일을 지원해서 하게 되니 팀원들은 그를 과묵하고 남자답다고 말했다. 고행록 팀장은 ‘우리 쭌혁이 이제사 일할 마음이 생겼어?’ 라며 작업이 끝나면 어깨를 두드려줬다. 쓰레기 분리수거도 덕행 씨 혼자 가게 되었다. 여전히 네, 아니오, 모르겠는데요 로만 대답을 하는 준혁에게 팀원들이 다가오고, 쉬는 시간에 자판기에서 뽑은 캔 커피를 건내 주거나 담뱃불을 붙여주기 시작했다. 준혁의 주변에 고팀장과 팀원들이 함께 있는 시간들이 많아지자 덕행 씨는 더 이상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대신 다른 신규자들이 들어올 때마다 처음 준혁에게 그랬던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말을 걸었다. 하지만 무더위 때문인지 신규자들은 들어오자마자 바로 추노했다. 

 

4

남녀가 친구로 사랑하면 평생 볼 수 있지만 연인으로 사랑하면 길어야 삼년 사년 보게 된다는 것. 중간 불로 10분을 가열하면 요리가 만들어지지만 강한 불로 3분을 가열하면 잿덩이가 만들어진다는 것. 이런 사실들을 준혁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6개월 동안 냄새를 적당히 제거 해주며 입어야 할 바지를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입는다면, 그리고 그 한 달이 8월이라면 어떻게 될까? 현장엔 온갖 종류의 땀 냄새와 유도원 이모들의 화장품 냄새, 안전관리 요원들의 향수냄새가 섞여서 있어서 준혁은 냄새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따라서 그게 어떤 냄새인지는 준혁도, 그의 팀원들도 알 리가 없었다. 8월의 무더위 앞에서는 유통기한도 상미기한도 의미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8월 21일은 300톤 양중 작업 때문에 평소에 11시에 먹던 점심을 1시에 먹을 예정이었다. 식당으로 가는 셔틀버스가 그 시간에는 운행하지 않았으므로 늘 출근하던 스타렉스에 다 같이 타서 삼남매 뷔페로 향했다. 지제 교차로에서 갑자기 끼어든 봉고차를 피하기 위해 운전하던 이재용 반장이 핸들을 꺾었다. 옆에 타고 있던 김민영 반장의 몸이 옆으로 쏠려서 준혁의 허벅지에 얼굴이 닿았다. 김민영 반장은 ‘씨발, 형 뭐에요?’ 라며 준혁에게 바지를 좀 빨라고 말했다. 앞자리에 타고 있던 고행록 팀장도 코를 대고 냄새를 맡더니 똑같이 말했다. 덕행 씨는 준혁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준혁은 네 라고 대답했다. 

다음 날 준혁은 바지를 빨지 않았다. 팀원들이 준혁의 바지 냄새를 다시 맡아보고 빨라고 하면 준혁은 네 라고 대답하고는 바지를 빨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팀원들의 태도는 달라졌다. 고임목을 놓을 때마다 말이 없던 구정모 반장은 ‘준혁아 바지 좀 그만 만지고 고임목 빨딱 놔라’ 는 말을 했다. 김민영 반장은 엘리베이터 양중 작업 때마다 ‘형 혼자 8층 올라가서 꿀 빨라고 맨날 올라가는 거죠?’ 라고 말했다. 이재용 반장은 준혁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항상 ‘넌 각반을 왜 거기에 차냐? 발목에다가 제대로 좀 차. 안전요원한테 지적당하면 우리 다 욕먹어’ 라고 말을 했다. 냄새가 나니까 바지를 좀 빨라고 시작한 충고는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의 장점이자 단점도 드러났다. 준혁은 애초에 팀원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상황이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사 바지 하나 빨고 냄새 없앤다고 관계가 좋아지리라는 생각도 안 들었다. 오히려 그는 평생 여기서 일하면서 빨래 같은 거 안 할 수도 있다고, 꼬우면 니들이 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준혁이 바지 때문에 종아리에 생긴 두드러기를 긁고 있으면 뒤에서 김민영 반장이 들으라는 듯 ‘저 개새끼 그래도 형이라서 참았지 동갑이었으면 진짜 뒤지게 팼어요’ 라며 팀원들과 웃고 있었다. 여전히 덕행 씨는 준혁에게 아무런 말을 걸지 않았다. 준혁은 하던 대로 작업을 했다. 하던 대로 화,목요일 저녁마다 상미기한이 넘은 시로이 코이비토를 밥 대신 먹었다. 맛이 조금 이상해진 것 같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8월 28일 저녁에야 준혁은 과자의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을 다 먹었다. 그러면서도 자기 모습이 1994년 개봉한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Chungking Express)에서 경찰223인 하지무가 여자친구인 메이와 헤어지고 5월 1일이 유통 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만 계속 먹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영화라는 건 늘 그런 의미였다. 

다음날인 8월 29일 아침 오전 일곱 시가 되어 고행록 팀장이 TBM을 진행했다. 안타깝게도 준혁은 배가 아팠다. 이마에서 땀이 흘렀고 허리를 펴고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TBM은 길고 진지해서 준혁이 중간에 끊고 화장실 좀 다녀오고 싶다고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런 그를 보고선 고행록 팀장은 어디 아프냐고 물었고 준혁은 네라고 대답했다. 준혁은 이어지는 고팀장의 ‘근디 바지 또 안 빨았지?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냐? 응? 아프면 집에 가, 너 말고 일할 사람 많다’ 라는 말이 들리지 않았다. 준혁은 네라고 대답하고는 바로 화장실로 뛰어갔다. 고팀장은 ‘저런 씨발놈이 어딜 으른이 말씀하시는데’ 까지 말하고 있었다.

“거 아한테 시발 뭐라고 하지 좀 마쇼” 

덕행 씨가 고행록 팀장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것도 그 때였다. 덕행 씨는 하이바를 바닥에 집어던지면서 두 눈은 꾹 감고, 침을 흘리며 손가락을 덜덜 떠는 채로 소리를 질렀다. 그 삿대질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덕행 씨를 포함한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준혁은 그 모습을 쳐다보곤 비계 파이프를 밟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좌변기 빈칸으로 들어가서 안전벨트의 버클을 풀고 버튼을 하나하나 풀러 바지를 내리려했지만 그럴 필요는 사라졌다. 영화인으로서 준혁의 생각, 그러니까 후속편은 모두 실망만을 남긴다는 생각이 맞았다. 홋카이도 여행에서 돌아온 날 처음 만난 시로이 코이비토와 아페쎄 쁘띠스탠다드는 준혁이 과자를 다 먹은 28일 저녁부로 영영 헤어진 거였다. 서로가 그런 모습으로 재회하는 건 실망만을 남길 뿐이었다. 준혁은 바지를 벗은 채로 화장실 밖으로 나와 폐자재함에 떨어진 방진복 바지를 입고 청바지는 마대자루에 넣은 채 현장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게이트에서 숙소로 향하는 택시를 잡기위해 JS플라자까지 걸어가는 상황에서 준혁이 떠올릴 수 있는 영화는 하나도 없었다.

숙소 근처에서 내리고 난 뒤 조금 걷다가 준혁은 편의점 파라솔에 앉아 만 천원주고 산 다섯 캔의 수입 맥주를 마셨다. 7월 16일 이후로 처음 술을 마셔서 그런지 네 캔 마신 걸로도 그는 취할 수 있었다. 준혁은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정오였다. 부엌 맞은 편 방엔 덕행 씨가 핸드폰 충전기며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덕행 씨는 준혁이 들고 있는 마대 자루를 열어보고는 바로 닫았다. 

“왜 안 버리고 왔어? 요새 애들은 청바질 그리 좋아하나?”

‘네 아니오 모르겠어요’ 어떤 말로도 준혁은 대답할 수 없었다.

“내 딸도 네 또랜데 맨날 청바지만 입었어”

술기운에 뙤약볕을 걸어서 그런지, 네 시반에 일어난 피로가 쌓여서 그런지 준혁은 졸기 시작했다. 방충망에 달라붙은 매미소리 때문에 말이 잘 들리지도 않았다. 그런 것들은 하나도 상관없다는 듯 덕행 씨는 이야기를 계속 했다. 

그 때 준혁이 들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3월부로 횟집을 접고 난 뒤 현장에서 노가다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 4월 첫째주 주말 집에 돌아온 딸에게 청바지는 버리고 방에 먼지 좀 털라고 잔소리 했던 날의 이야기. 사소한 잔소리로 시작한 말다툼 후엔 딸이 다시는 집에 오지도 않고 연락까지 받지 않아서 어찌 할 지 모르겠다는 이야기. 그러다 유튜브 ‘알 수도 있는 사용자 명단’에 딸의 계정이 나와서 지금은 그녀를 브이로그 영상으로만 볼 수 있다는 이야기. 그렇게 착한 애한테 옷 같은 걸로 뭐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며 자신이 후에 얼마나 후회 했는지와 같은 이야기들. 준혁은 잠들지 않으려 기를 쓰며 그 말을 들었다. 청바지를 좋아하고 청소는 잘 안하는, 덕행 씨가 보여주는 영상에 나오는 착한 애를 그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덕행 씨는 이불을 펴주며 준혁에게 바지는 세탁기 돌리고 널어줄테니 자라고 말했다. 거실에서 준혁은 바로 잠에 들었다. 일어났는데 여전히 한낮이었다. 술김에 덕행 씨에게 무슨 말을 했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그것과는 관계없이 준혁은 말하고 싶었다. 허허허. 아버님만 그런 거 아니에요. 평택 역에서 용산 역까지 한 시간이면 가요. 바지 이쁘다 뭐 그런 말 정도면 충분할 거에요. 허허허. 덕행 씨가 남들에게서 듣고 싶은 말이 뭔지 알지도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자신만은 그에게 그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준혁은 휘청거리며 문고리를 잡고 방문을 열었다. 덕행씨가 추노한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대신 그가 세탁해놓은 청바지만 옷걸이에 걸려있었다. 매미는 계속해서 방충망에 붙어 울고 있었고, 한낮의 햇빛이 만들어내는 스포트라이트가 사이로 먼지만 떠다녔다.

준혁은 덜 마른 바지를 입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안정6리에서 20번 버스를 타고 대원아파트와 평궁리와 통복시장을 지나서 평택역.AK프라자 정류장에서 내렸다. 용산까지 가는 5시 25분 기차를 타기 까지는 시간이 있었으므로 그는 역 앞 백반 집에 들어가 제육볶음을 시켰다. 가게 주인은 에어컨이 고장 나서 미안하다며 선풍기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왜 마르지도 않은 긴바지를 입고 있느냐고, 군대 간 아들 방에 안 입는 반바지가 있으니 그에게 입고가라고 했다. 준혁은 그런 자기 모습이 1998년 개봉한 피터 위어 감독의 영화 트루먼쇼(The Truman Show)의 트루먼 버뱅크의 모습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축축함을 느끼며 ‘In case I don't see ya,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이라고 말하며 사라질 때의 모습. 웃는 건지 찡그린 건지 모를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할 때 까지.

“청바지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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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일 2019-12-09 21:41:32
보고 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