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회 대학문학상 문학 및 영화 평론 부문 우수작
제61회 대학문학상 문학 및 영화 평론 부문 우수작
  • 대학신문
  • 승인 2019.12.08 07: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카이브의 여부(餘部) - 아카이브로서의 소설과 박솔뫼의 광주에 대하여

오석화(전기·정보공학부)

 

끝나지 않는 떡과 죽과 국수의 이야기

박솔뫼의 첫 소설집에 실린 「그럼 무얼 부르지」는 그의 소설들 중 서사성을 잘 보여주는 편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의문을 남기는 장면이 있다. 사람들이 5월 광주를 상징하는 ‘그 노래’를 듣느냐 마느냐로 옥신각신하다 떠나버린 새벽의 바에서 바의 주인이 저기, 하고 ‘나’와 해나를 불러 문득 저녁을 먹었느냐고 묻고는 근 세 페이지에 걸쳐 ‘죽과 떡과 국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장면이 그것이다. “어쩔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또한 말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남자가, “다른 중요한 이야기는 없다는 듯이”(164) 맛있는 죽과 떡과 국수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동안 ‘나’와 해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리 끄덕여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는 단락이 끊어지고 장면이 전환되어 해나가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갈 때까지 이어진다.

이 죽과 떡과 국수의 이야기는 ‘그럼 무얼 부르지?’라는 물음으로 응축되는 소설의 정념과 대비된 채로 남아, 광주를 노래한 김남주의 시가 ‘60년대 남미’나 ‘아일랜드의 피의 일요일’을 노래한 것처럼 보이는 화자의 “내 앞에는 장막이 있고 나는 장막을 걷을 수 없”다는 불가능의 정서와 묘하게 공명하는 정도에 그쳐 있었다. 이 감각을 두고 김홍중은 “(실재로서의 현장의) 부재와 (상징으로서의 현장의) 과잉의 아이러니 앞에 선 인간의 당혹감”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80년 5월 광주는 이미 말들과 이미지들로만 구성된 “기억의 시스템에 포섭”되었으며 “과거의 현장은 폐색”되었기에 작가와 작가의 세대로부터 ‘박탈’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솔뫼는 「그럼 무얼 부르지」를 쓴 이후에도 꾸준히 소설 속에 광주를 등장시키는데, 「주사위 주사위 주사위」에서는 아시아문화전당 공사 현장 너머 “일부가 부서진 그렇지만 아직 남아 있는” 구도청을 바라보고, 가장 최근에 발표한 작품인 것으로 보이는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에서는 일본인 아키비스트로 하여금 가톨릭센터 자리에 마련된 5.18 자료관의 작은 창을 통해 광주 시내를 내려다보게 한다. 박솔뫼의 광주가 정말 폐색된 장소 혹은 역사적 상징에 불과하다면, 광주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종류의 구호를 외치거나 재현의 불가능성에 고통 받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화자들을 자꾸 80년 5월의 흔적으로 데려갈 필요가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혹은 반대로, (『그럼 무얼 부르지』와 같은 해에 출간된)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같은 소설을 생각해 보면 박솔뫼의 거듭되는 광주 방문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은 고리 핵발전소 사고가 벌어진 이후의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그의 소설들(「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 「우리는 매일 오후에」, 「겨울의 눈빛」)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다. 

5·18을 외국의 일처럼 느끼는 한국인과 한국의 일을 ‘May eighteenth’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외국인 같은 인물들, 즉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사건’의 경험으로부터 유리된 인물들을 광주로 부산으로 데려가 박솔뫼는 무엇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이에 관해서 작가는 『겨울의 눈빛』의 작가노트로 쓰인 「9월 도쿄에서」에서 비교적 직접적으로 언급한 바가 있다.

그러니까 나는 이전에 5·18에 관한 소설을 쓴 적이 있는데 실제 내가 그 소설에서 묻고 싶었던 것은, 이라고 해야 할지 해보고 싶었던 것은 많은 글에서 당연히 이루어지는 혹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는 대단원의 막, 의의와 지켜야 할 가치에 가기 전의 공간, 그 공간에 서서 그 공간에 멈춰 있는 상태로 눈에 보이는 것을 제대로 보는 것 같은 것이었다. 여전히 나는 공간과 기억을 그것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 멈추는지 멈추지 않는지에 대해 늘 쓰고 싶다. 역사라는 것을 내 안에서 다른 식으로 그것이 어딘가에 멈춰 있더라도 공원에 앉아 그냥 우는 것이라도 그것이 결국 의미화될 수밖에 없고 의미화되어야만 하는 것일지라도 거기에 앉아 있는 상태 같은 것을 어떤 식으로든 계속 쓰고 싶었다. 그런 의문이 조금 구체화된 것은 도미야마 이치로와의 대담에서 이진경이 발표했던 글을 보고 나서였다. 그는 5·18 당시 시위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언급했는데 그 증언의 내용이 ‘길을 가다 사람들을 만나 기뻤고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는 의외의 내용이었다.

(중략)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고 길에 사람들이 한번에 우르르 다니니 무슨 일이 있나 구경을 다니고 그런 이야기에는 그 말 자체를 둘러싼 여러 가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나는 아니 여전히 나는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에서 멈춰 자리에 앉아서 더 나아가지 않고 가만히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자리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어떤 자리에 멈춰버리는 것, 멈춰버리는 공간을 겹쳤을 때 나는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에게 다가오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줄곧 하고 있다. 또한 당분간 하게 될 고민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 「9월 도쿄에서」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의 자리에 멈춰 무엇이 보이는지 보는 것. 여기서 ‘보는 것’에는 두 가지 단서가 달려있는데 하나는 ‘무엇을/어디서 보느냐’(“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의 자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보느냐’(“멈춰”)는 것이다. 이는 「겨울의 눈빛」에서 자신의 몸을 흔들며 “당신이 보고 싶은 게 그럼 무어야”하고 묻는 남자에게 무어라고 대답하는 대신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비에서 시작해서 어디로도 흘러가지 않고 그저 비를 따라가는 것. 비 내리는 거리에서 비 내리는 밤거리로 그리고 다시 비 오는 아침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같은 태도이다. 박솔뫼는 어디서 보느냐와 어떻게 보느냐의 두 가지 문제 모두에 있어서 한강이나 임철우 등 광주를 ‘보기로’ 결정한 다른 작가들과 궤를 달리 하는데 이들은 물론 ‘구도청’의 ‘바깥’(「주사위 주사위 주사위」의 화자가 자리하는)이 아닌 ‘안’에서, 죽음을 각오하거나 죽임을 당하며 사건과 더불어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떡과 죽과 국수’의 바로 옆에 놓여있을 것만 같은 ‘빵’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려면 자신이 “그런 명확한 세계에 없었다”(159)고 말하면서도 어떤 의지만은 확고한 박솔뫼의 ‘본다’는 행위로까지 소급해갈 수밖에 없다. 김주선은 박솔뫼의 ‘보는 화자’들을 두고의 광주와 부산의 사건들을 ‘기어이’, ‘끝내’ 보려 하는 것이라고, 이는 “자아를 파괴해버릴지도 모를 끔찍한 사건의 트라우마적 불안 바깥에 있되, 사건이 잊히지 않도록 사건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건 자체를 지시하려하지 않는, 텅 빈 기표로서의 ‘광주’는 되려 무수한 증언들을 전부 ‘광주’로 돌려보내게 되는 “무한히 열린 아카이브”라는 것이다. 

하지만 박솔뫼는 광주에 대해 무엇을 증언하고 있는가? 5월 광주의 재현 불가능성으로부터 ‘광주’라는 기표를 아감벤의 ‘표시’로까지 비워내면서 동시에 광주의 주변을 흐르는 수많은 말 들을 그에 대한 ‘증언’으로 수렴시키려는 기획은 결국 광주에서는 ‘광주’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어딘지 헐겁고 무책임하게 여겨진다. 이 지평에서 광주에 대한 이야기들은 동등하게 압도적이고 절대적인 불가능성에 직면해 있는 동시에 불가침적인 각자의 의미를 지님으로써 위계가 없는 평면상으로 압착된다. 이러한 관점은 한강의 광주와 박솔뫼의 광주를 나란히 놓고 보았을 때 발생하는 입체성을 유실하고 광주를 다룬 문학들을 ‘트라우마적이고 멜랑콜리적인’ 역사의 중심으로부터의 거리로만 분류하게 될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중립적인 지점, 즉 ‘아카이브’까지 거슬러 올라가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한낮의 유령들

아카이브라는 단어는 ‘원리’를 뜻하는 ‘아르케’와 친화성을 갖고 있는데, 아르케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자연적이고 역사적인 원리, 혹은 ‘시작’의 원리이며, 다른 하나는 규범적이고 법적인 원리, 혹은 ‘명령’의 원리이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만 있었으면 문제는 간단할 것이라고 데리다는 말한다. 사정이 복잡해지는 것은, 이 두 원리가 하나 이상이며 둘 이하라는 점이다. 시작의 원리로서의 아르케는 자연적이고 역사적인 근원을 상징한다. 그러나 법의 원리로서의 아르케는 인위적이고 규제적인 질서로부터 시작한다.

- 조선령, 「아카이브와 죽음충동: 데리다와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아카이브(Archive)는 라틴어 아르키붐(Archivum)에 기원을 두는 그리스어 아르케이온(Archeion)에서 파생된 말로서, 현대적으로는 장기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기록이나 문서를 체계적으로 관리-보존하는 장소로서의 기록관, 또는 그 기록들 자체를 일컫는다. 아카이브라는 단어가 공적 영역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대혁명 시기인 1789년 파리의 국립 아카이브(Archives Nationales)가 설립된 이후로, 당시의 아카이브의 철학적 입장은 ‘역사성’, ‘객관성’, ‘가치중립성, ‘자연성(naturalness)’ 등이었다. 그러나 20세기 말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데리다의 『아카이브 열병 : 프로이트의 흔적』(1995), 할 포스터의 「아카이브적 충동」(2004) 등의 문헌과 이를 이론적 배경으로 삼은 오쿠이 엔위저의 전시 「아카이브 열병 : 현대미술의 도큐멘트 사용」(2008)을 기점으로, 아카이브 개념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엄결성을 넘어서 가치지향적이고 주관적인, 현대미술의 방법론이자 대상으로서의 의미를 획득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미학적 전략’이자 ‘수사학’이 되었다.

이러한 ‘탈근대적 아카이브’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각들 중 엔위저는 ‘기억의 정치학’, 즉 “정보의 흐름을 통제함으로써 정치적 효과를 산출하는 아카이빙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강조”하며, “아카이브를 이용하는 현대 미술가들의 작업을 “기억상실과 아노미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그것을 통한 집단적 상상력의 회복 행위”로 읽어낸다. 한편 할 포스터는 아카이브의 “공적이고 객관적인 경향에 주목”하며, “과거의 아카이브를 재해석하고 파편화”시키고 “연결될 수 없는 것을 연결하기”를 통해 “편집증적이고”, “사적인” 아카이브를 구축”함으로써 “공적이고 규범적인 아카이브에서 일탈하는 대안성”의 자리에 “새로운 리비도적 투여”를 가능함으로써 “지배서사에 저항하는 방법론”으로 기능한다고 보았다. 조선령은 포스터가 말하는 아카이브가 사적인 전유의 성격을 띠는 이상 “근대적 아카이브를 패러디하고 있을지라도, 내용적으로는 반아카이브적에 가까운”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문학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엠마뉘엘 카레르나 데이비드 실즈 같은 작가들을 들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앞서 이름은 W.G. 제발트이고 그중에서도 『아우스터리츠』(2001)일 것이다. ‘아카이브’라는 키워드를 놓고 보았을 때, 이 소설을 관통하는 긴장은 건축과 문명의 역사를 집대성하고자 하는 건축사가-아키비스트로서의 주인공 아우스터리츠가 본인의 근원을 찾아내기 위해 스스로 아카이브의 파편들로서 자리하게 되는 전도(轉倒)로부터 나온다. 이는 소설의 말미에 아우스터리츠가 보모 베라로부터 장미 여왕의 시동으로 분한 자신의 사진을 건네받는 장면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데, 그는 그 사진으로부터 아무런 기억도 과거도 떠올리지 못하고, 그의 삶의 조각을 객관적이고 결정적으로 증거했어야 할 사진은 반대로 그의 (하나의, 따라서 모든) 기억의 부재를 강력하게 주장하기 시작한다. 데리다라면 이를 두고 ‘기억의 보완물’로서 기능했어야 할 사진이 외려 “원본의 가능성을 규정하는 토대”로 기능하는, 즉 그것의 폭력성이 현현한 장면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그에게 있어 아우스터리츠가 찾고자 했던 ‘근원 혹은 기원’은 “유령과 같은 허구적 구조 위에서만 존재 가능한 범주”이다.

한편, 데리다의 『아카이브 열병』은 본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대한 로고스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그것의 ‘해체’를 시도하는 작업이지만 그 과정에서 아카이브에 대한 풍부한 해석을 함축하고 있기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조선령이 인용하는 데리다는 아카이브가 “기억의 직접물”이 아니며, 오히려 “‘기억과의 단절’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인식론적 투쟁의 장소”라고 주장한다. “근본적인 유한성 없이는, 억압에 국한되지 않은 망각의 가능성 없이는, 어떤 아카이브적 욕망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과학적 객관주의를 고수하고자 했던 역사학자인 예루살미의 예를 들어, ‘완벽한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최초의 아키비스트’가 되고자 하는 그의 욕망과 노력이 오히려 그를 그곳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였음을 지적하며 이를 “아카이브 열병”이라 지칭한다. 나아가 이러한 ‘병’이 발생하는 원인은 예루살미가 추구했던 것은 물론 모든 ‘아카이브’의 핵심에 비실체적이고 초월적인 권위, 프로이트의 용어를 빌자면 ‘원초적 아버지’의 흔적이 자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키비스트는 아카이브를 구축함으로써 ‘타자의 자리에서’ 발언하고자 하지만 “이 타자는 이미 죽은 아버지, 유령이다. 이 유령은, “옳아야 하는 위치에 있는, 옳다는 것이 증명된, 마지막 말을 하게 되어 있는, 가부장적 유령(fantome paternel)”이다.”

즉, ‘아르케’가 ‘시작’의 원리로서 ‘자연적이고 역사적인 근원의 상징’과 ‘명령’의 원리로서 ‘인위적이고 규제적인 질서’ 모두와 분리 불가능한 연관을 가질 때, 그것을 완벽히 합치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아카이브 열병”을 낳는다. 그것은 ‘살아있는 아버지’와 ‘죽은 아버지’를 동시에 보겠다는 욕망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두 아버지가 서로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듯, ‘탈근대적 아카이브’라는 것과 그것의 ‘반아카이브적 성격’은 ‘근대적 아카이브’의 외부에서 그것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애초 ‘근대적 아카이브’의 중심부에 숨겨져 있었던 “유령과 같은 토대를” 가시화한 것뿐이라는 것이 데리다의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 아래에서 아카이브의 엄결성을 보장해 줄 ‘아카이브의 외부’는 (이미)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유령’의 형태로 아카이브를 떠돈다.

상당히 멀리 돌아왔지만, 이렇게 아카이브의 연원과 예술에서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을 살펴본 이유는 김주선이 박솔뫼의 소설을 두고 “무한히 열린 아카이브”라 명명한 것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을 읽은 노태훈 또한 박솔뫼의 근작들이 ‘아카이브로서의 서사’를 구축하려 한다고 평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실 박솔뫼의 소설 속 인물들은 초기작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고 마시고 걸으며 읽거나 보는 행위를 반복하지만, 이들을 ‘아카이빙’과 ‘아카이브’라는 용어로 규명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지는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리에 가서 텅 빈 고리를 보는 것은 중요하지. 사람들이 모두 떠나서 폐허가 되었구나 하고 제 눈으로 보는 것은 정말 중요해. 이곳이 고리구나 생각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야. 텅 빈 고리에 다녀왔어 정말 텅 비었더군이라고 말하면 무언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 나는 지금 일어나는 그 사건, 바로 그 일을 자신의 눈으로 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에 피로와 기만을 느꼈다.

- 「겨울의 눈빛」

「겨울의 눈빛」의 화자가 느끼는 ‘피로와 기만’은 단순한 무기력감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소설의 배경은 고리 원전 사고가 발생하고 그로부터 3년의 시간이 흐른 부산이며, 텅 빈 고리를 보는 일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남자는 고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은, 달리 말하면 아카이브의 구축에 참여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논의를 되새겨보건대, 우리는 「겨울의 눈빛」의 화자가 무욕망적이거나 탈정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매개나 지연 없이” “살아있는 기억”으로서의 고리를 보고 확인할 수 있다는 ‘환상’에 대한 천진한 믿음(즉, ‘아카이브 열병’)을 거부하거나 적어도 유예하려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박솔뫼의 화자들은 이미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보는’ 것, 보아서 “영화인지 연극인지 무용인지 알 수 없지만 무언가를 만”들고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일의 ‘유령적’인 성격을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할 포스터가 말한 것처럼 ‘탈근대적 아카이브’의 구축이 ‘근대적 아카이브’에서 이루어질 수 없었던 새로운 리비도의 투여를 가능케 한다면 작가는 그 기저에 깔린 프로이트적 남성성 자체에 이러한 피로와 기만을 느끼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피로와 기만을 회전축 삼아 우리는 박솔뫼의 ‘빵’으로 돌아올 수 있다.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의 자리에 멈춰 무엇이 보이는지 보는 것”에서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는 말의 자리에 있겠다는 것은 다분히 사적이고 주관적인 것들, ‘역사’에 직접적으로 기입될 수 없는 것들에 천착하겠다는 말이다. 이는 멀리는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같은 작업들부터 가까이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같은 소설들까지, 죽은 자들의 ‘혼이라든가 정신’에 다가가려는 시도와 아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멈춰’서 보겠다는 데에 있다. 앞서 인용한 「9월 도쿄에서」로 돌아가자면, 이진경은 인용한 증언에 대해 “연대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글을 결론”지으며 박솔뫼 본인도 “나 역시 그런 식의 글 외에는 다른 식의 어떤 것을 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이러한 ‘결론’은 “결국 의미화될 수밖에 없고 의미화되어야만 하는 것”들을 두고 멈추지 않고 나아갈 때 도착하게 되는 종착지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나아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결론을 유예시키고 빵들은 아직 연대나 피를 모르고 그렇게 ‘멈춰버리는 공간을 겹쳤을 때’, 즉 아카이빙을 시도하지만 ‘근원’에 대한 열망이 부재할 때 박솔뫼가 구축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잡고 던질 수 있는 모든 것

박솔뫼의 ‘멈춤’은 이렇듯 그의 소설 및 화자들의 성격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지만 소설을 인과율과 의미화로 읽는 데 익숙한 독자 및 평론가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박솔뫼의 인물들에 대해 심진경은 극장화된 세계 안의 주체들이 역사와 사회를 이야기하며 그것과 멀어지고 있는 탈정념적 주체의 모습을 갖는다고 보았으며, 김홍중은 한걸음 더 나아가 ‘생존주의’의 거울상으로서 ‘탈존주의’와 같은 부정적인 꼬리표를 달기도 하였다. 이러한 해석들은 기본적으로 소설이 의미화된 ‘역사와 사회’에 가까워지거나 마침내 그것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일정 부분 그래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박솔뫼는 ‘빵’에 대한 의미화의 시도를 멈추었을 뿐 소설 속에서 ‘먹고’(「고기 먹으러 가는 길」 등), ‘말하고’(「부산에 가면 만나게 될 거야」 등), ‘걷고’(「차가운 여름의 길」 등), ‘잠드는’(「광장」 등) 삶의 행위를 포기한 적 없으며 무엇보다 ‘보는’ 일을 포기한 적 없다.

나는 아시아문화전당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5.18 당시의 역사가 남은 구도청 일부를 철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을 알고 눈앞의 공사장을 보면 멀리 아직 남아 있는 구도청의 창백한 색과 이미 금이 가 있는 아주 얇은 유리창이 무언가…… 여기 안에는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이 있다, 죽은 자들만이 본 것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어떤 정신적인 것 막연한 것이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찾아와 뒹굴 것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을 하고 보면 곧 일부가 헐릴 그 건물이 하얗고 하얀색의 그 건물이 전혀 허약해 보이지 않았다. 사라져도 계속 누군가를 놀리고 던지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극장이란 무엇일까. 곧 헐릴 것이지만 커다란 것들 새것과 강한 것들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구도청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저곳에도 무언가가 계속 찾아올 것이라고 나는 그것을 믿게 되었다. 그것은 혼이라든가 정신만이 아니고 눈에 보이고 우리가 잡고 던질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 「9월 도쿄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박솔뫼가 말한 ‘장막’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김주선은 ‘장막’을 “일정한 거리를 둔 채로 사회적 사건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치”로, “사건을 계속해서 환기할 수 있지만 그것에 완전히 몰두하지 않을 수 있게 차단하는 무대”로 풀이하며 그가 사건의 트라우마와 거리두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결과론적으로만 맞는 해석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럼 무얼 부르지」에서 ‘나’가 죽과 떡과 국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다음, “나는 그 사람만큼 음식에 대해 길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전혀 달지 않은 블랙 캔 커피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할 수 있었다”(165)고 말할 때 이 가능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광주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날’에 도달할 수 없을 때 비로소 ‘광주’가 “영원히 ‘광주’를 가리키는 텅 빈 표시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신기할 수도 있지만 실은 당연”(167)하게도 ‘광주’가 텅 빈 기표이기 때문에 ‘그날’에 도달할 수 없는 모든 이야기들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하여 박솔뫼의 ‘장막’은 작가에게 어떤 장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태를 마주하고 ‘명확한 세계의 시민’이 아닌 자신을 인정함에 따라 광주에 관한 이야기들이 ‘그날’을 향해 우회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에 가깝다. 

A. 제가 실제로 읽거나 생각하는 문제는 비슷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그걸 소설로 쓸 때는 좀 다른 듯합니다. 뭔가 어떤 사건 자체를 정면에서 다루기보다는 그런 시선에서 빗겨나가 골목길로 걸어가는 느낌으로 쓰는 듯합니다. 나중에는 다른 식으로 출력해낼 수 있다고도 생각하고 한 번쯤은 그래 봐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할 것들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떤 식으로 드러내야 할까 그런 생각들을 요즘 더 많이 하게 되는 듯합니다.

- 박솔뫼, 임경선, 「골목길을 헤엄치는 말들」

여기서부터 박솔뫼 소설 속 인물들의 나침반은 ‘그날’과 구도청의 ‘혼이라든가 정신’, 즉 80년 5월 광주라는 사건에 대한 ‘아카이브의 중심’이 아니다. 그가 사건을 향해 ‘정면’으로 다가가지 않고 ‘골목길’을 헤매며 나아갈 때 그 경로의 가짓수는 역설적으로 무한에 가까워지고, 무한한 것은 상징화될 수 없으므로 우리는 박솔뫼의 소설에서 화자를 제거할 수 없다. 이 화자는 사건에 가닿지 못하고(않고) 장막 너머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이며, 이로 인해 제약되는 독자의 시선이 가닿게 되는 곳은 ‘진실’이 아니라 그 전에 자리하는 모든 ‘말’들이 된다. 즉, 이러한 화자들에 대해 공통되거나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 지점에서 독자는 소설 독해에, 광주라는 장소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역으로, 독자의 시선이 개입되지 않는 한 박솔뫼의 화자는 (한강의 화자와 달리) 완성되지 않는다. 이것은 박솔뫼의 화자가 의도적인 여백을 남겨놓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부터 말의 세계에 속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혼잣말을 할 때에도 대화를 요청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박솔뫼는 소설 속 인물들과, 궁극적으로 독자가 ‘사건’의 재현 불가능성을 넘어 말하게 하는 것을, 이런 말 저런 말 옳은 말 옳지 않은 말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것은 ‘장막’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발생하는 반작용과 같아서 작가는 이러한 가능성을 의도한다기보다 장막을 앞에 두고 눈 감지 않을 때, 즉 경험하지 못한 사건을 상상으로 재구성하려고 들지 않을 때 필연적으로 획득(당)한다. 여기가 바로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의 자리이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떡과 죽과 국수의 이야기’와 ‘전혀 달지 않은 블랙 캔커피’의 이야기가 가능해지는 자리다. 이것들은 80년 5월 광주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말할 수 없는) 광주에서 우리가 말하게 되는(말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며 그 자체로 ‘그럼 무얼 부르지?’라는 질문의 대답이 된다. 술집 주인이 “다른 중요한 이야기는 없는 것처럼”, “이야기가 끊어지면 안 될 것처럼”(164) 말하는 장면에서 독자가 어떤 의문과 위화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 이야기가 정확히 ‘광주’의 자리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설명을 본 순간 그 상황을 아주 잘 아는 것처럼 느꼈다. 그러다 완전히 착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본인이 무언가를 착각하면서 그 착각 속에 한동안 있다는 것을 느끼며 그는 작은 창 아래로 광주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아키비스트는 아카이브된 자료를 앉아서 천천히 보고 한국어를 몰라서 모르는 자료들을 살피며 그런데 이 자료들을 이전에 어딘가에서 본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모르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사진과 글씨들을 보았다. 이것은 무슨 이야기인지 알고 있다. 기억에 없지만 기억에 있을 것 같은 자료를 앉아서 보았다.

-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

가보지 못한 곳을 간 곳처럼 너무나 깊이 이해하는 경우, 어떤 면에서 빠리에 사는 사람들보다 아키비스트는 빠리를 깊이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키비스트는 그곳들에 별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에서 비로소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아카이브’는 사건을 겪지 못한 인물들에게 “모르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억에 없지만 기억에 있을 것 같은” 어떤 것으로 묘사된다. 박솔뫼의 소설에서 이 아카이브를 대하는 인물들은 오쿠이 엔위저가 말한 ‘투쟁’적 성격을 띠지 않지만, 할 포스터가 말한 ‘리비도적 투여’를 이루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냥 “무언가를 착각하면서 그 착각 속에 한동안 있다는 것을 느끼며” 나란히 아카이브를 통과해간다. 상문과 영우가 각기 서명운 감독에 대한 특집 원고와 이두현 감독에 대한 논문을 쓰고자 광주에 방문하지만, 상문이 광주에 방문하기 이전에 이미 그에 관한 글을 길게 길게 써냈고 영우가 결국 이두현 감독이 아닌 영화투자자 조구택에 관한 논문을 쓰게 될 때 그들은 아우스터리츠가 빠졌던(빠질 수밖에 없었던) 아카이브의 함정, 그것의 ‘유령적’ 성격을 무심하게도 극복해낸다. 

그러므로 나는 박솔뫼가 소설에서 수행하는 아카이빙이 그 어떤 ‘근원’을 추구하지 않으며 그 어떤 ‘유령’의 목소리도 따라가지 않는다고, 그가 광주와 부산,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곳들에서 먹고 걸으며 “우리가 잡고 던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써내려가는 일은 ‘아카이브의 여부(餘部)’로서의 소설을 이룬다고 말하고 싶다. 박솔뫼가 ‘광주’를 다루는 역전된 방식 아래에서 우리는 역사로서 재현된 ‘광주’가 아니라 비가 내리고 새 건물이 오르는 지금-여기의 광주를 앓으며, 비로소 각자의 자리에서 “영원하지 않지만 때때로 놀랄 정도로 반복되는 일”로서의 광주를 보게 된다. 이 반복은 독자로 하여금 장막에 가로막힌 80년 5월 광주 앞에서 멈춰 탄식하게 만드는 대신, 광주 안으로 성큼 들어가 ‘광주’와 평행하게 시간을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그 노래’를 ‘들어야 한다’와 ‘듣고 싶지 않다’는 대립 사이로 ‘그럼 무얼 부르지?’라는 질문이 빠져나와 나아가는 한, 그 평행성은 심지어 ‘떡과 죽과 국수’를 ‘광주’와 전혀 무관하게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참고문헌

1) 구연정, 「은유로서의 현기증과 제발트의 기억 시학」, 『카프카연구』 25집, 2011.

2) 김주선, 「증언의 아카이브」, 『문학과사회』 통권 110호, 2015.

3) 김홍중, 「탈존주의의 극장 – 박솔뫼 소설의 문학사회학」, 『문학동네』 통권 79호, 2014.

4) 박솔뫼, 『겨울의 눈빛』, 문학과지성사, 2017.

5) 박솔뫼, 「그럼 무얼 부르지」, 『그럼 무얼 부르지』, 자음과모음, 2014.

6) 박솔뫼,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 『창작과비평』 통권 185호, 2019.

7) 심진경, 「극장적 세계와 탈정념 주체의 탄생」, 『창작과비평』 통권 166호, 2014.

8) 이경래, 「아카이브 아트의 동시대 기록학적 함의 연구」, NRF KRM, 2017.

9) 조선령, 「아카이브와 죽음충동 : 데리다와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미학예술학연구』 49집, 2016.

10) 황동령, 「문화·아카이브의 효율적 운영방안」, 『기록인』 18호, 2012.

11) 노태훈, 「아카이빙 픽션」, 웹진 〈과자당〉 2호, 2019, 〈https://www.gwajadang.com/blank-26〉.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