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대학신문』 만화의 역사

만화는 글, 삽화, 사진과 함께 『대학신문』에서 빠뜨릴 수 없는 요소다. ‘대학만평’과 ‘4컷만화’는 학내외 현실을 위트 있는 작은 그림에 고스란히 녹여내 왔다. 만화는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마주한 당시 구성원의 반응이 꾸밈없이 나타나 있는 기록이기도 하다. 지령 2000호를 맞아, 첫 작품부터 현재까지 『대학신문』 만화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 만화에서 어떤 역사를 읽어낼 수 있을지 살펴봤다.

1955년 5월 23일

4컷만화는 1955년 5월 23일 자 신문에서 ‘Mr.부엉이’ 시리즈로 처음 등장했고, 한 컷에 풍자를 담아내는 대학만평은 1956년 4월 7일 자 신문에서 시작됐다. ‘Mr.부엉이’와 대학만평은 주로 학내외 무거운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으나, 가볍게 읽으면서 즐길 만한 일상적인 소재를 다루기도 했다. 만평은 지금까지 대학만평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Mr. 부엉이’로 시작한 4컷만화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얼간이’ ‘어처군’ ‘샤大실록’ 등의 시리즈를 거쳐 현재 ‘전지적 오리 시점’에 이르렀다.

 

 

 

 

 

 

 

 

 

 

 

1960년 5월 2일

1960년 5월 2일 자 신문의 4컷만화 ‘어처군’에서는 장기 집권하던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이 다뤄졌다. 1컷에서 이승만 정권의 총이 발사되고, 2컷에서는 그 총알이 ‘민주주의를 찾자’라는 현수막을 꿰뚫는다. 3컷에서 지구를 한 바퀴 돈 총알은 4컷에서 다시 이승만 정권의 총을 부수며 만화가 끝난다. 이승만 정권이 민주주의를 요구한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려던 일이 자충수가 돼 정권이 무너졌음을 풍자한 만화다.

 

 

 

 

 

 

 

 

 

 

 

1961년 4월 17일

1961년 4월 17일 자 신문에서 4컷만화 ‘어처군’은 4·19혁명 1주년 특집으로 다뤄졌다. 만화는 4·19혁명 이후 늘어난 것이 무엇이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뻐스 값” “빵 값”이라는 답으로 이어지다 “총리의 주름살”이라는 말로 끝난다. 4·19혁명 이후 “데모”와 “강력범”이 늘어났다는 만화 내용에서 드러나듯, 당시 민주당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1년 12월 6일

1971년 12월 6일 자 ‘마로니군’은 서울대의 1971년을 결산해 “완전 부실 기업”이라 결론 내린다. 1971년 한 해 동안 제8대 국회의원 선거, 제7대 대통령 선거, 그리고 ‘교련철폐투쟁’ 등으로 대학은 휴교와 휴강을 반복했다. 이런 혼란한 시대의 대학에서 제적과 정학은 “부지기수”였고, 당연하게도 중간고사와 축제도 없었다.

 

 

 

 

 

 

 

 

 

 

1980년 5월 5일

 

유신 체제의 끝은 신군부의 시작으로 이어졌지만, 그 와중에도 서울에 봄은 찾아왔다. 민주주의의 바람이 전국에 불었고, 대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1980년 5월 5일 자 대학만평은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12,000 서울대 학우의 외침을 표현했다.

 

 

 

 

 

 

1980년 9월 15일

대서특필됐던 4·19혁명과는 달리, 1980년 광주 5·18민주화운동은 그해 5월 17일 내려진 대학 휴교령으로 인해 『대학신문』에 실리지 못했다. 휴교령이 풀린 뒤 발행된 9월 15일 자 신문 역시 대학만평에 대학으로 돌아온 학생들의 쓸쓸한 뒷모습만이 그려졌을 뿐, 독재 정권의 검열로 인해 광주의 소식은 신문 그 어디에서도 전할 수 없었다.

 

 

 

 

 

1987년 3월 2일, 1987년 3월 25일

 

 

 

 

 

 

 

 

 

언어학과 학생이었던 박종철 열사가 경찰에 연행된 다음날인 1987년 1월 14일 고문으로 사망했다.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은 거짓으로 사인을 해명했지만, 며칠 후 그의 죽음에 가혹행위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이후 진행된 6월 민주항쟁의 불씨가 됐다. 같은 해 3월 2일과 5월 25일 자 신문의 대학만평에는 각각 그를 추모하고 정부의 거짓말을 비판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1997년 12월 8일

민주화 이후 10년이 지난 1997년에는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특히 그해 11월 21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국가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침체에 빠졌다. 1997년 12월 8일 자 신문의 대학만평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제적 무능을 비꼬는 글귀와 함께 그림 없이 발행함으로써 당시 IMF 금융위기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그대로 담아냈다.

 

 

 

 

2007년 5월 21일

2000년대에 들어 자간이 커지고 크기와 위치가 고정된 코너가 늘어나는 등 레이아웃이 지금에 가깝게 바뀌었다. 만화에서 다루는 주제 중 학내 사건의 비중도 크게 늘어, 2007년 5월 21일 자 신문의 4컷만화 ‘와플즈’에는 등굣길에 등산객이 많아 불편하다는 내용이 담기기도 했다. 학내 사안은 주로 ‘샤大실록’ ‘와플즈’ 등의 4컷만화에, 학외 사안은 ‘대학만평’에 실리는 기조가 확립됐다.

 

 

 

 

 

 

 

 

 

 

 

2016년 11월 7일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2016년 11월 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문 중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라는 발언은 국민의 분노를 더욱 키웠다. 2016년 11월 7일 자 신문의 대학만평은 촛불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을 외면하고 진정성 없는 사과문을 발표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뒷모습을 그림으로써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보여 줬다.

 

 

 

2019년 3월 4일

2019년 3월 4일 자의 대학만평에서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북·미 2차 정상회담’이 다뤄졌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회담으로 ‘합의와 평화’에 대한 기대의 분위기가 고조됐던 만큼, 2월 29일 예정됐던 하노이 선언식의 결렬은 짙은 실망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삽화: 송채은 기자 panma200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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